서울 소격동 국제갤러리에 전시된 장 미셸 오토니엘의 ‘천국으로 가는 계단’. 국제갤러리 제공
서울 소격동 국제갤러리에 전시된 장 미셸 오토니엘의 ‘천국으로 가는 계단’. 국제갤러리 제공
파란색, 검은색의 벽돌이 층층이 쌓여 있다. 이 벽돌들은 일반 벽돌과 달리 투명해서 주변에 있는 사물을 이리저리 비춘다. 관람객이 서 있는 위치, 각도에 따라 벽돌의 색깔과 반사되는 빛의 정도도 달리 보인다. 투명하고 아름다운 벽돌로 만든 계단을 하나씩 오르다 보면 언젠가 찬란한 길이 펼쳐질 것만 같다. 프랑스 현대미술가 장 미셸 오토니엘(56)의 ‘천국으로 가는 계단(Stairs to Paradise·2020)’이다. 오토니엘은 유리를 이용해 벽돌을 만들고 쌓아 지상낙원에 도달하고자 하는 마음을 담았다.

유리벽돌·구슬로 쌓아올린 '유토피아의 꿈'
오토니엘의 개인전 ‘NEW WORKS’가 서울 소격동 국제갤러리 K1(1전시장)에서 열리고 있다. 오토니엘 전시는 2016년 이후 4년 만이다. 이번 전시에는 그의 유리조각 작품과 드로잉, 회화 등 총 37점을 선보이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세상과 단절된 채 제작한 신작들을 만나볼 수 있다. 국제적 재난에도 유토피아를 꿈꾸는 강렬한 열망이 작품 곳곳에 숨어 있다.

그는 변형하기 쉬운 유리, 황, 왁스 등을 활용해 작품 세계를 확장하고 있다. 재료를 불로 녹이는 등 인위적인 힘을 가하고, 재료의 형태가 바뀌는 순간 다양한 예술 실험을 한다. ‘천국으로 가는 계단’이 놓인 첫 번째 전시장의 벽 사방은 그의 유리벽돌 연작으로 둘러싸여 있다. 연작의 이름은 ‘고귀한 석벽(Precious Stonewall·2020)’. 유리벽돌을 이용해 직육면체를 만들었다. 노랑, 초록, 파랑 등 서로 다른 색깔의 유리벽돌이 서로 기대고 의지하듯 맞닿아 있다. 그 빛이 반사돼 관객과 벽을 불꽃처럼 비추기도 한다.

오토니엘은 2010년 인도 피로자바드 여행에서 집을 짓기 전 땅에 벽돌 더미를 수북이 쌓아 두는 현지인의 관습을 눈여겨봤다. 벽돌은 인류 역사에서 오랫동안 건물을 짓는 데 사용되면서 거주(住)를 상징하는 재료로 자리잡았다. 그는 일반 벽돌보다 값비싼 유리를 활용해 벽돌보다 더 높은 가치를 지닌 인간의 꿈과 염원을 담아냈다. 동시에 벽돌의 강인함과 유리의 연약함을 대비하는 효과도 낸다.

연작 ‘루브르의 장미’
연작 ‘루브르의 장미’
두 번째 전시장엔 연작 ‘루브르의 장미(Rose of the Louvre·2020)’의 조각과 회화가 설치돼 있다. 그는 유리구슬을 하나씩 꿰어 화려한 장미로 재탄생시켰다. 먼저 전시장에 들어서면 빨강과 분홍, 은색 빛깔의 유리구슬로 제작한 커다란 장미 조각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동일한 크기와 모양이지만 전혀 다른 느낌을 주는 작품도 전시돼 있다. 스테인리스 구슬에 검은색 파우더를 코팅해 장미를 만들었다. 이 작품은 빛을 반사하지 않아 육중한 느낌을 준다. 붉은 장미 공예와 대조되며 이색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전시장 벽 사방엔 장미 회화들이 걸려 있다. 금박을 칠한 캔버스에 검정 잉크로 장미를 표현했다. 회화 속 장미 또한 유리구슬처럼 둥근 형태로 그려져 있다. 이 회화는 프랑스 루브르박물관에 걸린 17세기 바로크 화가 페테르 파울 루벤스의 ‘마리 드 메디치와 앙리 4세의 대리인에 의한 결혼식’에 나온 장미에 영감을 받아 제작했다. 국제갤러리 관계자는 “오토니엘 작품의 중요한 원천은 변형과 변신”이라며 “이를 유리벽돌과 유리구슬 등 다양한 매체를 활용해 어떻게 표현해왔는지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시는 1월 31일까지.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