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의 예배 대상인 전통 탱화가 생활 속의 불교 장식화로 탈바꿈했다. 무형문화재 탱화부문 이수자인 고영을씨가 금가루(金泥)를 묻힌 세필로 그린 탱화 기법의 금니선화(金泥禪畵) 1백여점을 출품한 전시회를 열고 있다. 불교신문사 주최로 서울 견지동 조계사 문화교육관에서 20일 개막된 '고영을 삼라만상전'이다. 고씨는 전남대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뒤 탱화장 구봉 스님(1910∼1998년) 문하에서 탱화를 배워 20년 이상 탱화에 매달려온 작가. 화려한 채색과 꼼꼼한 선묘를 특징으로 하는 전통 탱화는 붓끝에 기(氣)를 모아 흐트러짐 없이 그리는 작법 자체가 고행이고 수행이다. 고씨의 경우 밑그림인 초본과 선긋기를 익히는 데만 10년 이상 걸렸을 정도다. 고씨의 금니선화는 감필법으로 사물의 본바탕만 간결하게 그려내는 여느 선화와는 또다른 선의 세계를 보여준다. 양화의 캔버스와 비슷한 질감의 모시에 쪽물이나 무지개빛 바탕색을 염색한 위에 가는 붓으로 금니를 찍어 섬세하고 치밀하게 그려낸다. 감필법의 선화가 깨달음의 경지를 직관적으로 표현한 것이라면 고씨의 금니선화는 붓질 하나 하나에 선수행 같은 공이 깃들여 있다. 이번 전시회에 내놓은 작품은 지난해 초부터 최근까지 불교신문에 연재한 것들로 가로 50㎝ 세로 40㎝ 안팎의 작은 액자에 담은 소품이 대부분이다. 관음보살도 같은 불화는 물론 연꽃 하늘 바람 산 물 해와 달 등의 자연을 폭넓게 소재로 삼았다. '세상 속으로'는 수행을 통해 깨달음을 이룬 부처들이 중생 구제를 위해 세상 속으로 들어가는 느낌을 준다. 또 '둥실 떴다 달님아''물소리 봄이 오는 소리''바람소리' 등은 삼라만상에서 불성(佛性)을 발견하게 한다. 역사 및 민족의식을 담은 그림도 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은 백두산 천지와 한라산 백록담이 합수(合水)되는 모양을 통해 통일의 염원을 담았고 '극락으로'는 5월 영령들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작품.관음보살과 성모상을 나란히 배치한 '극락을 방문한 성모님',지장보살과 예수를 함께 그린 '지옥에서 극락으로' 같은 작품도 눈에 띈다. 이번 전시는 고씨의 여덟번째 개인전.미술평론가 이태호 교수(전남대)는 "치밀한 선묘와 함께 선적인 화두에 걸맞게 여백을 두는 한편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면서 현재의 삶과 현실을 잘 담아내고 있다"고 평가했다. 전시는 오는 26일까지.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