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경제와 경제민주화 차원에서 수년간 추진된 '전속고발권 폐지'는 결국 없던 일로 돌아갔다.

공정거래법에 따르면 공정경제 관련 불공정행위는 공정위만 고발할 수 있고 공정위의 고발이 있어야만 검찰이 수사에 나서 기업을 기소할 수 있다.

1980년 제정된 공정거래법의 전속고발권 조항에는 기업 고발이 지나치게 늘면 경제가 위축된다는 고도성장기의 논리가 깔려있다.

그러나 공정위가 고발하지 않으면 검찰이 위법행위를 확인할 기회가 사라진다는 지적에 사회적 피해가 큰 가격·입찰 담합(경성담합)에 한해서는 전속고발권을 폐지하자는 내용의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나왔다.

공정위가 지난 2016년 8월 가습기 살균제 표시광고법 위반 사건에 대해 기업들을 고발하지 않고 무혐의 결론을 내리는 등 소극적으로 임해 피해를 키운 점도 전속고발권 폐지 움직임에 영향을 미쳤다.

공정위는 김상조 전 위원장 시기부터 공정거래법 전부 개정을 추진했고 법안이 20대 국회 문턱을 넘어서지 못하자 올해 같은 내용의 개정안을 다시 발의했다.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은 공정거래위원장 시절 "고도성장기에 제정한 공정거래법 규제 틀로는 변화한 경제여건과 공정경제·혁신성장 등 시대적 요구를 반영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조성욱 위원장도 공정거래법 전면개편을 두고 "여러 번 의지를 천명했었다"며 "공정거래법 개정은 궁극적으로 한국 경제를 건전하게 만들고 기업가치를 향상하는 법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공정경제 시대적 요구'라던 전속고발권 폐지, 결국 없던일로
공정위는 공정거래법 전면 개정 필요성을 두고 "공정하고 혁신적인 시장경제 시스템을 구현하기 위한 시대적 요구"라고 설명한 바 있다.

법안이 나온 이후에는 경제계를 중심으로 반대의 목소리가 거셌다.

공정위와 검찰의 중복 조사(수사)에 기업 부담이 커진다는 우려에 두 기관은 지난해 1월 어느 기관이 어떤 사건을 먼저 다룰지에 관한 사건처리기준을 합의했다.

검찰은 자진신고 사건 중 입찰담합과 공소시효가 1년 미만 남은 사건을 우선 수사하고 나머지는 모두 공정위가 우선권을 가진다는 내용이다.

다만 악의적이거나 음해 목적을 가진 고소·고발에 검찰 수사가 시작될 수 있고 이는 기업들에 악영향을 미치며 그 부담은 소송 대응 능력이 적은 중소기업일수록 크게 느껴진다는 우려는 식지 않았다.

같은 논리로 중소기업중앙회는 최근 공정위 관계자를 만나 전속고발권 폐지에 관한 우려를 전달하기도 했다.

정부와 여당이 '검찰개혁'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는 상황에서 검찰의 영향력 확대를 저지하기 위한 목적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참여연대는 논평을 내고 "국민에 공개 약속한 전속고발권 폐지를 철회한 것은 정권 핵심 인사들과 긴장 관계에 있는 검찰을 견제하려는 셈법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마저 제기된다"고 주장했다.

40년 만에 통과한 공정거래법 전부 개정에서 전속고발권 폐지는 빠졌지만 기업에 대한 형사처벌을 더 늘리지 않는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인 평가도 나온다.

김진방 인하대 경제학과 교수는 "담합 등은 이해관계자들에게 미치는 효과 등을 전문적으로 파악해야 하는 만큼 공정위에 맡기는 게 합당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