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역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대응하기 위해 막대한 돈을 풀었다. 미국 내에서 코로나19 환자가 처음 발생한 지난 2월 하순 이후 지금까지 미 행정부와 중앙은행(Fed)이 경기부양을 위해 쏟아붓기로 한 돈만 8조7000억달러에 달한다.
미 행정부와 의회는 3월에 1차 83억달러, 2차 1000억달러, 3차 2조2000억달러의 부양책을 통과시킨 데 이어 4월엔 4840억달러의 추가 부양책을 내놨다. 1~4차 부양책 규모는 약 2조8000억달러로, 지난해 미국 국내총생산(GDP) 20조5000억달러의 13.7%에 달한다. Fed도 금리를 제로(0) 수준으로 낮춘 데 이어 자산매입, 긴급 대출 등 양적완화를 통해 5조9000억달러의 유동성을 시중에 공급하기로 했다.
이 같은 경기부양 행보는 2008~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와 비교할 때 규모 면에서 훨씬 클 뿐 아니라 속도 측면에서도 압도적으로 빠른 것이다. 미 행정부와 의회는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2008년 2월부터 2009년 2월까지 1년간 네 차례에 걸쳐 1조9550억달러의 부양책을 내놨다. 금융위기를 촉발한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대출) 위기가 처음 수면 위로 부각된 2007년 8월 이후 거의 1년반이 지나서야 2조달러 규모의 부양책이 마련됐다.
금융위기 때 Fed가 양적완화에 들어간 것도 2008년 12월부터였다. Fed는 이후 2010년 3월까지 양적완화를 통해 1조6500억달러의 유동성을 공급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2008년 금융위기와 2020년 코로나 팬데믹(대유행)은 비슷한 점이 많지만 큰 차이가 있다”며 “바로 (경기부양) 스피드”라고 분석했다.
금융위기 땐 금융권의 부실 처리에 집중했기 때문에 부양자금이 주로 금융권을 맴돈 반면 코로나19 위기에선 상당한 현금이 실물경제로 흘러든 것도 차이점이다. 미 정부와 의회가 코로나19에 따른 셧다운(봉쇄) 충격을 줄이기 위해 개인에 대한 현금 지원, 중소기업 급여 지원 등을 대폭 늘린 결과다.
하지만 코로나19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상황이 이어지면서 개인과 기업들의 ‘현금 확보’ 심리가 확산되고 있다. 미 CNBC는 지난 1월 코로나19가 미국에 처음 닥친 후 지난달까지 미국 은행의 예금 계정에 2조달러에 달하는 기록적인 현금이 유입됐다고 연방예금보험공사(FDIC) 집계를 인용해 보도했다. 특히 4월 한 달에만 예금액이 8650억달러나 늘었으며 이는 지난해 1년간의 예금 증가액보다 많은 수준이라고 전했다.
문제는 은행들도 경기침체를 맞아 선뜻 대출에 나서기 힘들다는 것이다. CNBC는 “은행들이 현금 홍수에 빠져 있지만 당장 보유한 현금을 갖고 할 일이 많지 않다”고 전했다.
유럽 각국과 미국 정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후 도입한 고용 지원 정책의 유지 여부를 놓고 고민에 빠졌다. 재정 부담이 눈덩이처럼 불고 있지만 지원책을 중단하면 수백만 명의 실직자가 쏟아질 수 있어서다. 정부 지원 없이 유지되기 어려운 ‘좀비 일자리’가 양산되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파이낸셜타임스(FT)는 22일 독일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스페인 등 5개국에서 정부의 고용 보호 프로그램을 적용받는 근로자가 4500만 명에 달한다며 이같이 보도했다. 전체 근로자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인원이다.이들 정부는 고용을 유지하는 조건으로 기업에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 독일 정부는 근로자를 해고하는 대신 근로시간을 단축한 기업에 임금 삭감분의 60% 이상을 보조금으로 지원 중이다. 프랑스 정부도 고용을 유지하는 기업에 3개월 한도로 통상임금의 84%를 지급하고 있다. 영국은 80%, 스페인은 70%를 지원한다. 이런 정책 덕분에 유럽 국가들은 실업대란을 방지할 수 있었다. 지난달 유로존의 추정 실업률은 8.2%로, 코로나19가 확산하기 시작한 3월(7.4%)보다 0.8%포인트 증가하는 데 그쳤다. 같은 기간 미국 실업률은 4.4%에서 13.3%로 8.9%포인트 급증했다. FT는 “유럽 각국에서 고용 지원 정책을 연장할지 논의 중”이라며 “유럽 내 노동조합과 기업들은 지원책 확대를 요구하고 있다”고 전했다.경제 전문가들은 고용 지원 정책이 정부의 재정 부담을 키우는 데다 실효성도 떨어진다고 지적한다. 독일 금융사 알리안츠는 정부 지원을 받는 유럽 내 일자리의 20%(약 900만 개)가 코로나19 사태 후에도 침체를 겪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일종의 좀비 일자리인 관광, 여행, 소매, 오락 산업이 여기 해당한다는 것이다. 카타리나 우테뫼르 알리안츠 이코노미스트는 “정부 지원을 연장하는 것은 단순히 문제 해결을 미루는 것”이라며 “지원금을 투입하기보다 근로자들이 더 좋은 일자리로 이직할 수 있도록 돕는 게 낫다”고 말했다.미국 사정도 다르지 않다. 미 연방정부와 주정부는 실직자에게 주당 최대 1395달러를 실업수당으로 지급하고 있다. 실업수당이 일해서 버는 돈보다 많아지자 ‘자발적 실업자’가 급속히 불어났다는 지적이다. 미국에서 지난 13주간 신청된 신규 실업수당 청구 건수는 4500만 건에 달했다. 연방정부가 주는 주당 600달러의 추가 실업수당 지원책은 일단 다음달 31일 만료된다. 미국에선 ‘실업수당을 주당 400달러로 확 줄여야 한다’ ‘일터에 복귀하는 근로자에게 보너스를 주는 정책으로 대체해 재정 부담을 줄여야 한다’ 등의 주장이 나온다.박상용 기자 yourpencil@hankyung.com
상장사들의 총차입금이 올 1분기에만 20조원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항공, 조선 등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기업들이 앞다퉈 빚을 늘린 결과다. 코로나19의 피해가 본격화한 2분기엔 재무구조가 더 악화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한국경제연구원은 유가증권시장 상장 623개사의 별도 재무제표를 분석한 결과 이들 회사의 총차입금이 올해 1분기 386조7000억원으로 작년 말에 비해 20조원가량 증가한 것으로 조사됐다고 22일 밝혔다. 지난해 분기당 차입금 증가액이 5조원 안팎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큰 폭으로 늘었다. 같은 기간 차입금 의존도는 21.6%에서 22.5%로 올랐다.자금 조달 방식도 금융회사를 통한 차입금 증가액이 14조9000억원으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회사채를 통한 자금 조달 증가액은 5조3000억원이었다. 한경연 관계자는 “회사채 시장이 냉각되면서 기업들이 은행 대출을 늘린 것”이라며 “기업의 자금사정이 그만큼 어렵다는 얘기”라고 설명했다.지난 1분기에 빚이 가장 많이 늘어난 업종은 항공이었다. 지난해 말보다 차입금 의존도가 5.3%포인트 높아졌다. 조선(2.3%포인트), 관광레저(1.4%포인트), 대형유통(1.1%포인트), 섬유의복(0.8%포인트) 등의 업종도 상승 폭이 가팔랐다. 기업들이 영업현금흐름이 나빠지면서 차입금을 늘리고 자산을 매각하는 방법으로 현금을 확보해 위기를 견딘 것으로 보인다고 한경연은 분석했다.영업현금흐름은 5개 업종이 모두 나빠졌다. 항공, 대형유통, 관광·레저, 조선업은 올해 1분기 영업현금흐름이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영업활동으로 번 현금보다 빠져나간 현금이 더 많았다는 의미다. 상장사 전체로 봐도 영업을 통한 현금 유입이 줄었다.송형석 기자 click@hankyung.com
정부와 한국은행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을 위해 최근 넉 달 동안 120조원이 넘는 자금을 시중에 공급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보다 훨씬 빠른 속도다. 규모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보다 1.7배 이상 크다. 덕분에 주식시장과 부동산시장은 글로벌 금융위기 때보다 빠른 속도로 이전 수준을 회복했다. 문제는 실물 부문이다. 코로나19가 언제 끝날지 알 수 없기 때문에 기업들은 투자를 줄이고 있다. 자산시장은 부풀고 있는데 실물은 위축되는 양극화 현상이 커질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정부·한은 얼마나 돈 풀었나정부와 한은이 지난 3월부터 지금까지 푼 돈은 121조원으로 집계됐다. 한은이 공급한 자금은 64조6000억원 규모다. 한·미 통화스와프 자금 198억7200만달러(약 23조8400억원)를 금융회사에 풀었고, 40조7600억원을 시중에 공급했다. 정부가 공급한 자금은 56조4000억원 정도다. 코로나19 위기 대응을 위해 풀기로 한 돈 250조원 중 일부다. 여기에 한은이 기준금리를 사상 최저인 연 0.5%로 낮추면서 시중 유동성은 더 늘어났다.늘어난 유동성은 어디로 갔을까. 전문가들은 투자와 소비로 들어간 돈은 극히 일부일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오히려 기업과 가계의 대차대조표상 수치만 커진 것으로 보고 있다.한은이 발표하는 수치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기업 대출은 올 들어 지난달 말까지 76조3000억원 늘었다. 같은 기간 가계 대출 역시 32조5000억원 증가했다. 하지만 이 기간 늘어난 은행 예금만 90조1000억원이었다. 기업과 가계에서 늘어난 대출이 108조8000억원이란 점을 감안하면 80% 이상이 다시 은행으로 돌아온 것이다.늘어난 유동성 중 상당액이 금융권에 잠겨 있다 보니 통화유통속도는 빠르게 떨어지고 있다. 지난 1분기 통화유통속도는 0.64 수준으로 파악됐다. 1분기 명목 국내총생산(GDP)의 연간 환산액을 광의통화(M2)로 나눈 수치다. 통화유통속도는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에도 0.8 수준을 나타냈다.주가·집값만 들썩기업·가계 금고에 쌓인 현금은 주식·부동산시장으로 흘러들고 있다. 코스피지수는 22일 2126.73에 마감하며 연중 최저점을 기록한 지난 3월 19일(1457.64)과 비교해 45.9% 뛰는 등 코로나19 직전 수준을 거의 회복했다. 지난달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지수는 코로나19가 확산하기 직전인 1월과 비교해 1.4% 상승했다.최근 자산 가격 흐름은 글로벌 금융위기 때와 비교해 회복세가 빠르다.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코스피지수는 리먼브러더스 파산 직전인 9월 12일(1477.92) 수준을 회복하는 데 무려 10개월(2009년 7월 20일·코스피지수 1478.51)이 걸렸다. 서울 아파트 가격은 매매가격지수 기준으로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인 2008년 8월(매매가격지수 82.582) 수준을 회복하는 데 1년4개월(2010년 2월·82.676) 소요됐다. 전국은 3년이 걸렸다.반면 실물경제 회복을 기대하긴 아직 이르다. 기업들이 투자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 공시에 따르면 올 들어 이날까지 시설투자 등을 공시한 기업은 LG이노텍 현대엘리베이터 SK에어가스 등 51곳으로 투자금액은 4조4281억원이다. 작년(6조2715억원)에 비해 29.3% 줄어든 규모다.코로나19로 대내외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기업 심리가 급격하게 얼어붙은 탓이다. 체감경기를 나타내는 제조업 업황 기업경기실사지수(BSI)는 5월 49를 기록해 기준치인 100을 크게 밑돈 것은 물론 2009년 2월(43) 후 가장 낮았다. 소비심리도 얼어붙으면서 한은이 전망한 올해 민간소비 증가율은 -1.4%로 집계됐다. 이 같은 수치가 현실화하면 1998년(-11.9%) 후 최저치다.시중에 풀린 유동성이 실물경제 진작보다는 자산시장 거품만 키우고 있다는 인식도 확산되고 있다. 이인호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한국경제학회장)는 “넘치는 유동성이 실물시장을 우회해 자산시장으로만 흘러가는 형국”이라며 “실물경제 진작을 위해 정부가 규제를 개혁하고 시장이 잘 작동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김익환/강진규/박종서 기자 lov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