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탐구

조직 간 벽 허무는 '소통의 리더'로 거듭나다
일러스트=조영남 기자  jopen@hankyung.com

일러스트=조영남 기자 jopen@hankyung.com

“그의 머릿속에는 0(불량품)과 1(정상품)밖에 없다.”

정철동 LG이노텍 사장이 최고경영자(CEO)가 되기 전 직원들로부터 주로 듣던 얘기다. 이력을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1984년 LG반도체에 입사한 그는 2004년 LG필립스LCD(현 LG디스플레이)로 자리를 옮긴 뒤 이곳에서 생산기술담당(상무), 생산기술센터장(전무), 최고생산책임자(CPO·부사장)를 지내며 생산 쪽에서만 한 우물을 팠다. 생산의 세계에서는 10% 정상품, 90% 정상품은 없다. 10%든 90%든 같은 불량품일 뿐이다. 직원들이 “이 정도면 됐다”고 말할 때면 불호령을 내리곤 했다. 단 1개의 불량품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지위가 달라지면 경영철학도 바뀌기 마련이다. 리더가 되면서 그의 성격이 달라졌다. 세상에는 ‘0’과 ‘1’로 설명되지 않는 것도 많다는 점을 깨달았다. CPO 시절에는 단순히 수율을 올리는 데서 벗어나 시야를 넓혔다. 사업조직과 생산조직 사이의 거대한 장벽을 낮추기 위해 ‘소통왕’을 자처했다. 사업조직의 결정 사항을 생산조직이 바로 전달받아 대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생산 시스템도 사업조직과 실시간 소통이 가능한 구조로 개편했다.

과감한 사업 구조 재편

LG이노텍 사장이 되고 나서도 경영의 원칙은 ‘소통의 원활함’에 맞췄다. 한 달에 두 번 사업장을 찾아다니며 직급과 상관없이 소규모 식사 간담회를 열었다. 단순히 얘기를 듣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취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연구원들과 식사하는 과정에서 그는 직원들의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자신이 추진하는 사업에 대한 뜨거운 애정을 확인했다. 소재부품회사인 LG이노텍은 △광학솔루션(카메라 모듈) △기판 소재 △전장부품 사업 등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 사업부 안으로 들어가면 주력인 카메라 모듈부터 반도체 기판까지 다양한 부품을 제조하고 있었다. 그만큼 광범위한 분야에 에너지를 쏟고 있다는 의미였다.

그는 직원들의 열정을 보고 역설적으로 사업 구조조정을 생각했다. 가능성이 높지 않은 사업에 직원들이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 안타까웠기 때문이다. 정 사장은 임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중요한 사업이어서 하는 게 아니라, 사업성이 있어서 하는 겁니다.”

당시 LG이노텍에는 자신에게 주어진 일이라는 이유에서 그저 열심히 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었다. 정 사장은 당장 될 사업과 안 될 사업을 구분하기 시작했다. 담당 부서의 반발도 나왔다. 그는 이렇게 설득했다. “못 하는 사업에 자원을 투입해 잘하게 하는 것과 잘하는 사업을 더 잘하게 만드는 것, 어떤 게 맞다고 봅니까. 저는 후자라고 생각합니다.” 직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부가가치가 낮거나 소비자에게 감동을 주지 못하는 사업은 정리합시다.”

대표적인 사업이 스마트폰용 메인기판(HDI) 사업이다. LG이노텍은 2000년대 초반 HDI를 생산하기 시작해 한때 이 사업에서 연간 3000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렸다. 하지만 중국산 저가 스마트폰이 무섭게 점유율을 늘리면서 중국 기판업체들도 급성장했다. 중국 기판업체들은 가격 경쟁력을 무기로 시장을 잠식했다. 정 사장은 ‘원가 싸움으로는 승산이 없다’고 판단했다. 충북 청주 공장을 정리하고 관련 인력과 설비를 반도체 기판 사업을 하는 경북 구미 공장으로 전환 배치했다. LG이노텍만 바라보고 있는 협력사도 마음에 걸렸다. 협력사에 충분히 설명하고, 보상을 통해 큰 잡음 없이 사업을 정리했다. 전자가격표시기(ESL) 사업도 매각을 추진 중이다. 정 사장은 이외에도 본업과 시너지가 나지 않는 사업은 정리해나갈 계획이다.

CEO 역할은 ‘미래 준비’

사업을 과감하게 정리하고 주력 제품에 인력과 자원을 집중했다. 광학솔루션사업부가 대표적이다. 스마트폰업체들이 너도나도 카메라모듈 장착량을 늘리면서 실적이 빠르게 성장하는 분야다. 디자인을 중시하는 애플까지도 아이폰11프로 후면에 카메라 3개를 달았다. 증권사 실적 추정치 평균(컨센서스)에 따르면 LG이노텍은 지난해 매출 8조778억원, 영업이익 3609억원으로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정 사장은 여기서 만족하지 않았다. 지금은 돈을 벌고 있지만, 미래에도 돈을 벌게 해줄지 확신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속가능한 회사’를 만들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를 고민했다. 1999년 자신이 몸담고 있던 LG반도체가 현대반도체에 통합되는 것을 보고 그는 “우리가 1등이었다면 살아남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이후 LG디스플레이 LG화학 LG이노텍 등 여러 회사를 거칠 때마다 영원히 생존할 수 있는 기업의 구조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그가 ‘미래 먹거리’로 삼고 있는 것은 센서 사업이다. 5세대(5G) 이동통신, 사물인터넷(IoT) 시대로 접어들면서 센서 사업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어서다. LG이노텍은 3차원(3D) 센싱 모듈을 생산하고 있다. 부품업체가 경쟁력을 키울 방안도 고민하고 있다. 예를 들어 지금은 스마트폰(세트)에 인공지능(AI) 칩이 들어가지만, 기술이 발전하면 LG이노텍이 제조하는 카메라 모듈에 AI 칩을 넣어 스마트폰업체에 공급하는 방식으로 회사의 존재감을 키울 수 있다.

“사람들은 위험을 두려워해 도전을 주저하지만, 역설적으로 기업은 계속 도전해야 안전해진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그래서 직원들에게도 “자신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수준보다 훨씬 더 높은 목표를 세우자”고 강조한다. 그래야 일하는 재미가 생긴다는 게 정 사장의 설명이다.

정 사장은 팀장들에게 더 높은 목표를 설정하고 팀원들이 창의적인 방법으로 이를 달성할 수 있도록 이끌 것을 강조한다. 직원 스스로 목표 달성에 대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성공 경험’을 만들어주라는 것이다.

그는 도전을 중요하게 여기는 만큼 웬만해선 ‘부정적인 전망’은 내놓지 않는다. 정 사장이 가장 싫어하는 말이 “올해 고생했지만, 내년에는 올해보다 훨씬 더 어렵고 힘들 것”이라는 말이다. 대신 그는 직원들에게 “올해도 좋았고, 내년에는 더 좋아질 것”이라고 강조한다. 미·중 무역분쟁과 같은 대외 악재는 CEO의 힘으로 막을 수 있는 게 아닌 만큼 직원들과는 ‘긍정의 소통’을 하고 싶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 정철동 LG이노텍 사장 프로필

△1961년 출생
△1980년 대구 대륜고 졸업
△1984년 경북대 전자공학과 졸업
△1984년 LG반도체 입사
△2004년 LG디스플레이 생산기술담당 상무
△2007년 LG디스플레이 생산기술센터장(전무)
△2013년 LG디스플레이 CPO(부사장)
△2017년 LG화학 정보전자소재사업본부장(사장)
△2019년~ LG이노텍 대표이사 사장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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