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희진 어도어 대표 /사진=연합뉴스
민희진 어도어 대표 /사진=연합뉴스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하이브 사태’. 아이돌 그룹과 엔터테인먼트 회사의 진실 공방 와중에 대중의 관심을 폭발적으로 불러일으킨 건 여태 한 번도 보지 못한 기자회견 때문이었다. 수많은 미디어에 도배된 파란 야구모자를 쓴 한 사람의 얼굴. 이게 무슨 난리인가 싶어 경제·정치 뉴스에 관심이 없는 필자도 사건의 전모를 파헤치게 됐다. 기자회견이라는 말을 듣고 처음 든 생각은 ‘아니 기자회견에 웬 야구모자?’였다. 진중한 표정과 함께 마땅히 품위를 갖춘 정장일 거라는 기대가 산산조각 났다. 이 반전의 이미지 덕에 수많은 이의 궁금증이 폭발했다.

시끌벅적한 해프닝을 틈타 중증 옷 환자인 필자는 야구모자를 언급할 기회를 포착했다. 오랫동안 묵혀뒀던 자료를 하나씩 꺼내며 야구모자에 대한 이야기를, 기자회견의 주인공이 야구모자를 눌러쓴 이유를 흥미진진하게 파헤쳐 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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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일 인문학’에 어울리게 야구모자의 역사를 살짝 다뤄볼까 한다. 미국의 국모(국가모자)라 불릴 만한 지위를 일찌감치 획득한 야구모자가 미국의 대표적인 스포츠 야구에서 기인한 것은 어쩌면 너무나도 당연하다. 1800년 즈음 시작돼 민간에서 점점 인기를 얻으며 1876년 드디어 내셔널리그가 설립될 때까지 야구 선수들은 규정된 유니폼이 없이 시합을 펼쳤다. 넓은 운동장에서 강렬한 태양을 피하고 높이 뜬 공을 안정적으로 잡아내기 위해 모자에 대한 필요는 간절했지만 특별한 규정이 없으니 그저 아무 모자나 눌러 쓸 수밖에 없었다. 보통은 당시 다른 스포츠에서 사용되던 챙이 넓은 밀짚모자를 쓰기도 했는데, 1888년 한 회사에서 발간한 야구 관련 가이드북에서는 다양한 모자가 선수들 사이에서 자유롭게 사용됐다.

광고판이 된 야구모자

우리가 지금 쓰고 있는 야구모자로의 형태적 완성은 세기가 바뀌면서 점진적으로 정착됐다. 특히 1854년 창단된 브루클린 엑셀시어즈의 공이 크다. 1860년 전설적인 연승 행진으로 야구의 인기를 전 미국 땅에 퍼뜨린 브루클린 엑셀시어즈는 고향 땅을 떠나 다른 팀들과의 원정 경기에서 19승 2패라는 당시로서의 대기록을 남기며 큰 인기를 얻었다. 지금의 야구보자보다는 조금 챙이 길고 헐렁한 형태지만 모자 꼭대기에 버튼이 박힌 오늘날의 야구모자와 매우 비슷한 형태의 모자를 선수들이 착용하면서 팀의 인기와 함께 소위 ‘브루클린 스타일’이라는 특별한 별칭을 얻었다. 1940년대까지 야구모자의 전형을 이뤘다.

야구모자에 커다란 알파벳 이니셜이 처음 등장한 것도 이즈음이다. 1894년 보스턴 야구클럽이 이를 처음 도입했고 다음 시즌에 몇몇 팀이 이를 따라 했다. 한편 1901년 디트로이트 타이거스는 검정 바탕에 붉은색 호랑이 문양을 마스코트로 모자에 각인한 첫 메이저리그 팀이었는데 수년 뒤 다시 디트로이트의 ‘D’로 바뀌긴 했지만, 야구모자 앞면을 광고용 공간으로 적극 활용하는 방식은 이때부터 시작됐다. 소재의 발전으로 라텍스 고무가 모자챙의 내부 형태를 잡는 용도로 활용되면서 1940년 전후 드디어 현재의 야구모자와 거의 비한 형태가 완성된다.

정치적이고 상징적인 아이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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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에서 민희진 그녀가 야구모자를 쓴 이유를 추측해 보자. 첫 번째 추론은 ‘자신의 논리를 펼치기 위한 안정감 확보’다. 1940년대 비로소 현대의 야구모자 형태를 갖추기 이전까지 대부분 야구모자는 사이클 모자처럼 짧은 챙을 지닌 다소 귀여운 형태를 이루고 있었다. 이는 야구 선수들에게 기능적으로 충분하지 못했는데 주간 경기시 강렬한 태양을 막아주기에도, 야간 경기의 강력한 조명을 막아줄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충분히 긴 모자의 챙은 높이 뜬 공을 잡을 때 눈에 그림자를 드리워 수비수가 공을 명확하게 인지하고 능력을 최대치로 발휘할 수 있는 기능적 역할을 수행했다. 수많은 기자의 날카로운 질문으로부터 효과적인 대응을 해야 하는 그녀에게 야구모자는 심리적 안정감을 제공하지 않았을까? 자신이 준비된 논리를 펼치는 동안 야구모자는 늑대 같은 강렬한 시선과 의심의 눈초리로부터 착용자를 보호해 줬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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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추론은 비논리적인 가십성이지만 상당히 재미난 추론이다. ‘충분히 긴 시간 많은 얘기를 늘어놓겠다는 암시’였다는 것. 예상보다 두 배 이상 길어진 기자회견에서 그녀가 택한 모자는 공교롭게도 LA 다저스의 모자였다. 자료 사진들에 의하면 평소 다른 야구모자도 즐겨썼던 그녀가 기자회견 당일 유독 푸른색 다저스 모자를 고른 것은 ‘투머치 토커’(말을 너무 많이 하는 사람’라는 별명을 일찌감치 얻은 국민 야구 영웅 박찬호 선수의 모자를 염두에 둔 것이라는 추리다. 그의 별명에 기대어 엄청나게 많은 내용을 전달할 심리적 장치로서 이 푸른색 다저스 모자가 사용됐다는 것. 물론 누리꾼들의 우스갯소리에서 유래했지만 야구모자 이니셜의 상징성을 생각하면 충분히 설득력 있다. 야구모자를 활용한 홍보의 효과성은 수많은 미국 정치인이 이 모자를 통해 정치적 입지를 다지고 자신의 공약을 강조하는 데 매우 유효했다는 사실도 역사적으로 증명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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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에라에서 닥터 드레까지

야구모자의 역사를 논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기업은 뉴에라라는 미국 모자 회사다. 1934년부터 메이저리그 선수들에게 모자를 공급해 왔다. 선수들의 요구에 맞춰 맞춤 모자를 공급하면서 큰 인기를 얻어 1950년대에는 대부분의 메이저리그 팀이 이 회사의 모자를 사용한다. 뉴에라사는 1954년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59Fifty’라는 제품을 탄생시키는데 공기구멍이 하나씩 뚫린 6개의 조각이 머리통을 감싸는, 커다란 챙이 달린 디자인을 완성했고 선수들의 큰 사랑을 받았다. 팬들도 이 모자를 쓰고 응원하며 사 모았다.

야구모자가 야구뿐 아니라 일상에서도 널리 활용되는데는 연예인들의 영향이 컸다. 수많은 야구 역사가가 한결같이 입을 모으는 야구모자의 인기는 하와이를 배경으로 한 1980년대 미국 범죄 드라마 매그넘 P.I의 주인공 톰 셀렉 덕분이다. 1980년대 힙합 음악의 대세였던 레퍼들 닥터 드레, 척 디, 그리고 비스티 보이즈가 사랑한 야구모자는 고스란히 팬들의 일상에 파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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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민희진이 야구모자를 쓰기로 결심한 세 번째 이유도 이런 이미지 메이킹과 관련이 있을 테다. 기자회견에서의 메시지처럼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뉴진스에 평소 자신이 즐기던 야구모자와 헐렁한 티셔츠의 편안한 스타일을 심어 넣었다’는 것, 그 헌신과 애정을 모두가 주목하는 기자회견에서 야구모자로 드러내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민희진 그녀가 야구모자를 쓴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 그녀 본인 말고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역사를 통해 입증된 야구모자의 가치와 효용을 그녀도 십분 활용했으리라는 추리할 뿐이다. 200년 가까운 역사를 지닌 야구모자를 알고 쓰게 되는 계기를 제공해준 이번 사태가 문득 고맙게 느껴진다. 얼굴이 커서 야구모자를 잘 안 쓰던 필자도 오늘만큼은 쓱 한번 야구모자를 걸쳐볼까 한다.

한국신사 이헌 패션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