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첫 상업 해상풍력단지 '탐라해상풍력'…반대했던 주민들 이젠 '늘려달라'
해상풍력, 탐색기 넘어 대형 상업화 단계로 빠른 성장 예고
[르포] '제주의 바람', 한국 해상풍력의 가능성을 열다
"제주 날씨가 이렇게 비바람 치는 날이 많습니다.

이런 날은 발전이 잘 돼서 수익이 많이 나니 여기 제주에 온 후로는 비바람이 있는 날이 기분 좋은 날입니다.

"
지난 28일 제주 서부 한경면 바닷가의 탐라해상풍력발전단지 운영 상황실에서 만난 이성호 본부장은 창밖으로 보이는 풍력 발전기의 날개들이 돌아가는 모습을 가리키면서 이렇게 말했다.

해수면 위로는 10기의 해상풍력 발전기가 해안선과 평행하게 한 줄로 늘어서 있었다.

우산이 뒤집힐 정도로 거세게 이는 바람을 안고 발전기들은 지름이 90m에 달하는 거대한 바람개비, '블레이드'를 부지런히 돌리고 있었다.

블레이드가 돌아 생긴 회전 에너지는 풍력발전기 꼭대기에 달린 네모난 상자 속 터빈을 돌려 전기를 만든다.

10기의 발전기가 각각 두산에너빌리티의 3메가와트(㎿) 설비용량 터빈을 달았다.

전기 생산에 가장 효율적인 초속 12.5m의 바람을 맞으면 10대를 합쳐 시간당 최대 30메가와트시(MWh)의 전력을 생산할 수 있다.

1천650억원의 사업비가 투입돼 2017년 준공된 이 단지가 최근까지 실제 만든 전기의 양은 총 50만MWh. 제주 전체 31만가구가 약 반년 동안 쓸 수 있는 정도의 양을 오롯이 '제주의 바람'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르포] '제주의 바람', 한국 해상풍력의 가능성을 열다
한전 자회사인 한국남동발전이 특수목적법인을 통해 운영 중인 탐라해상풍력발전단지는 국내 첫 상업용 해상풍력 시설이라는 점에서 상징성이 있는 곳이다.

이 본부장은 "첫 상업용 풍력단지의 건설로 대한민국이 해상풍력 발전 시대를 개막했다"며 "설계, 제작, 설치까지 100% 국산 기술을 적용해 해상풍력 산업화의 초석을 마련했다"고 자평했다.

전에 없던 '바다 위 발전소'를 처음으로 짓는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후보지인 한경면 두모리와 금등리의 해녀와 어부 등 바다에 삶을 기대 사는 주민들이 생태계 훼손으로 인한 경제적 피해를 걱정해 반대 목소리를 높였다.

사업에 초기부터 참여한 남동발전 이효우 풍력운영부장은 "최초다 보니 주민들의 걱정이 많았고 저희가 아무리 설명해도 선뜻 믿어주지 않았다"며 "자주 찾아뵙고 신뢰 관계를 쌓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준공 후 약 7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주민 상당수가 해상풍력 발전소가 지역 발전에 도움이 된다는 쪽으로 생각이 바뀌었다고 한다.

수면 아래 해저에 단단히 박아 풍력발전기의 기둥을 떠받치는 받침대인 '자켓 구조물'이 인공 암초 역할을 하면서 우려했던 어족 자원이 줄어드는 현상이 나타나지 않았고, 발전단지 측으로부터 보상금 형태의 경제적 보상도 일부 받아 마을 공동 발전에 쓸 수 있기 때문이다.

[르포] '제주의 바람', 한국 해상풍력의 가능성을 열다
환경단체는 풍력 발전기의 저주파 소음이 제주 일대 바다에서 서식하는 남방 돌고래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고 우려하기도 했다.

하지만 발전소가 들어온 뒤에도 남방 돌고래 무리가 주변 바다에서 자주 목격되고 있다.

최근 풍력 발전단지가 있는 곳이 '풍차마을'로 관광 자원화되면서 상권 활성화 등 지역 경제에 보탬이 되기도 한다.

금등리 이장인 고춘희 씨는 "처음엔 풍력 발전을 처음 접해봐서 의심되는 점이 많았지만 설치 후 5년쯤 지나가면서부터는 주민에게 실제 아무런 피해도 없고 경제적 보상도 기대를 할 수 있어 이제는 확장 공사를 더했으면 한다"며 "지금은 찬성이 90% 정도로 반대하는 분들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법에 따라 의무적으로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율을 일정하게 채워야 하는 남동발전은 현재 탐라해상풍력 단지 설비용량의 배가 넘는 총 72㎿ 규모의 풍력 발전기를 추가로 채우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바람의 고장'이라는 표지석이 놓인 이곳 제주 한경면에서 시작된 해상풍력발전 단지 건설은 이제 제주는 물론 수도권, 전남, 경북 등 바다가 있는 여러 곳으로 확대되고 있다.

[르포] '제주의 바람', 한국 해상풍력의 가능성을 열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에서 상업 운전 중인 해상풍력발전단지는 아직 제주 탐라(30㎿)와 서남권(60㎿), 영광(34.5㎿) 3곳에 불과하고 총 누적 설비용량도 124.5㎿에 그친다.

하지만 현재 발전 사업을 하겠다고 허가를 받은 곳은 83개 단지로 설비용량만 27기가와트(GW, 1GW=1천㎿)에 달한다.

이 중에는 단일 사업으로만 총사업비가 수조원대에 달하는 초대형 단지도 다수 포함되어 있다.

이 중 실제로 4개 사업은 발전 사업 허가 이후 환경영향평가 등 인허가를 모두 마치고 실제 공사에 착수했다.

지역적으로도 해상풍력 발전이 추진되는 지역은 수도권인 인천에서부터 전남, 전북, 동남권, 제주 등 전국으로 넓어졌다.

탄소중립으로의 전환 과정에서 현재 10%에 못 미치는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2030년 21.6%, 2036년 30.6%까지 단계적으로 높여나가야 하는 정부도 2030년까지 정책 노력을 집중해 해상풍력 설비용량을 14.3GW까지 높이겠다는 목표를 잡은 상태다.

서울과학기술대 유승훈 교수(창의융합대학장)는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풍부한 해상풍력 자원을 갖고 있다"며 "협의 대상자가 많은 태양광과 달리 해상풍력은 대규모 건설을 할 수 있어 삼성전자 같은 대기업들이 RE100(재생에너지 100%) 참여를 용이하게 하는 측면도 있다"고 밝혔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