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H-민간 공공주택사업 경쟁체제 최초 도입
분양가 낮게 제시하는 민간사업자에 공공택지 우선공급
사업성 악화에 몸 사리는 건설사들…공공주택사업 참여 유인 있나
공공주택사업 시행권 민간에 연다…민간 '메기'로 들여 LH 혁신
정부가 12일 발표한 '한국토지주택공사(LH) 혁신방안'의 핵심은 공공주택사업의 전격적인 민간 개방이다.

공공주택 공급을 사실상 LH가 독점한 상황에서 LH에 과도한 역할과 권한이 부여되면서 인천 검단신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 붕괴, 철근 누락 사태가 이어졌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정부는 LH의 공공주택사업 시행 기능을 최초로 민간에 열어 경쟁 체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 LH 공공주택 공급 72% 차지…연간 10조원 발주
그간 공공주택사업은 확실한 LH의 영역이었다.

공공주택특별법은 LH 같은 공공만 공공주택사업자가 될 수 있도록 했다.

LH는 공공주택 공급량의 72%를 차지하며, 나머지를 서울주택도시공사(SH), 경기주택도시공사(GH) 등 지방공사가 공급한다.

설계·시공·감리 등 LH의 발주 규모는 연간 10조원에 달한다.

이런 상황에서 LH 부여된 공공주택 공급 규모가 갈수록 커지면서 건설 과정에 대한 관리 소홀, 부실 감리와 품질 저하의 악순환이 나타났다는 게 정부 진단이다.

LH가 공급한 공공주택 물량은 2013∼2017년 26만4천가구, 2018∼2022년은 28만4천가구다.

'5년간 270만가구' 공급 계획을 내놓은 현 정부도 상당 부분을 LH에 기대고 있다.

LH의 대규모 발주를 따내려고 전관을 채용하는 사례가 늘어나면서 공고해진 '전관 카르텔'의 실상은 철근 누락 사태로 여실히 드러났다.

2018∼2022년 5년간 LH 설계·감리용역 수주 규모 상위 10개사 중 1개사를 빼고는 모두 LH 전직 직원이 취업한 전관 업체였다.

과거 주택공사(LH의 전신)가 지은 주공아파트는 '저렴하지만 튼튼하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이마저도 사라졌다.

인구 구조와 생활 환경이 빠르게 변하는 상황에서 소비자 선호가 반영되지 않는 아파트, 그렇다고 해서 튼튼하게 지었다고 안심할 수도 없는 아파트를 찍어낸다는 비판이 갈수록 커졌다.

LH 입장에선 품질 좋은 공공주택을 짓고 싶어도 사업비가 한정돼 있고, 중소기업 제품 직접 구매 의무로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자재를 적용하기 어렵다는 점, 신기술을 활용한 제품 사용이 제한된다는 점 등 여러 제약이 있는 게 현실이다.
공공주택사업 시행권 민간에 연다…민간 '메기'로 들여 LH 혁신
◇ LH-민간 중 잘하는 쪽에 공공주택사업 몰아준다
정부는 'LH 독점'이 공공주택의 품질 저하를 불렀다고 보고 공공주택 사업권을 민간에도 열기로 했다.

이를 위해선 공공주택법 개정이 필요하다.

지금은 LH가 시행하는 아파트의 공사만 민간 건설사가 맡거나 공동으로 시행할 수 있는데, 앞으로는 민간 건설사가 단독 시행할 수 있도록 한다.

시행권을 놓고 LH와 민간 건설사를 경쟁시켜 우수한 사업자가 더 많은 공공주택을 공급하도록 구조를 바꾸겠다는 것이다.

분양가와 하자 빈도, 입주민 만족도 등을 평가해 택지별 지구단위계획 수립 때 공공주택사업을 LH가 할지 민간이 할지 정하는 방식이다.

김오진 국토부 1차관은 "지금껏 독점적 지위에 있던 LH가 품질과 가격 경쟁에서 국민의 선택을 받지 못할 경우에는 시장에서 자연스럽게 도태되도록 해 자체 혁신을 끌어내겠다"고 말했다.

2021년 3월 LH 직원 땅 투기 사태 이후 두 차례 혁신안을 추진했지만, 근본적 문제는 해소되지 않은 만큼 이번엔 외부의 힘을 빌려 LH를 바꾸겠다는 것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LH 조직을 떼었다 붙이는 식의 혁신은 더는 효과가 없을 것으로 봤다"고 말했다.
공공주택사업 시행권 민간에 연다…민간 '메기'로 들여 LH 혁신
◇ 민간 공공주택에도 분상제·공급규칙 똑같이 적용
새로 도입하는 '공공주택 민간시행' 방식은 민간이 LH에서 택지를 분양받아 힐스테이트, 래미안, 자이 같은 자체 브랜드를 달아 공공분양하는 것이다.

LH 시행 공공주택과 똑같이 분양가 상한제를 적용하고, 정부에서 정한 공공주택 공급 기준에 맞춰 주택을 공급해야 한다.

다만, 민간은 공공이 시행자로 참여할 때 적용받는 제약에서 자유롭다.

마감재 등 자재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정부는 분양가를 낮게 제시하는 민간 사업자에 공공택지를 우선 공급한다는 방침이다.

이를 통해 민간 시행 공공주택의 분양가를 낮출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관건은 민간 사업자가 얼마나 적극적으로 공공주택 사업에 뛰어들 것인지다.

치솟는 원자잿값과 인건비, 고금리로 수익성이 악화하고 있어 주요 건설사들은 서울 '알짜' 재정비 사업에도 입찰하지 않는 등 잔뜩 몸을 사리고 있다.

A건설사 관계자는 "원가 맞추는 게 어려워 공사가 제대로 안 되고, 새로 나오는 입찰에도 들어가지 않는 상황"이라며 "주택 품질을 어느 정도 갖추면서도 싼값에 공급하라는 정부 요구가 있을 텐데, 중소·중견 건설사는 몰라도 대형 건설사가 조건에 맞춰 참여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B건설사 관계자는 "분양가를 낮추느라 시공 마진(이윤)이 빠지더라도 시행 마진이 보전된다면 참여 유인이 있다고 본다"며 "공공택지를 불하받을 기회가 늘어난다면 특히 중소·중견 건설사들이 시행에 참여하려 할 것"이라고 했다.

정부는 공공주택사업을 시행하는 민간사업자에게 LH가 감정가 이하로 땅을 매각할 수 있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감정가 이하로 택지를 매각하고, 주택기금을 통해 저리 융자를 해주면 민간 사업자의 사업성이 보완될 수 있을 것"이라며 "지방 공공택지에서 미분양이 나면 LH가 환매 확약을 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공공주택사업 시행권 민간에 연다…민간 '메기'로 들여 LH 혁신
◇ 민간 건설사에 새 먹거리 될까…"인센티브 부여"
정부는 공공주택 시행권 개방으로 민간에 새 먹거리를 열어둔다는 점에도 의미를 두고 있다.

김오진 차관은 "최근 침체된 시장 여건 속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민간 건설업계가 주택기금 지원 등 인센티브를 통해 안정적인 사업 추진이 가능한 공공주택 사업을 추진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건설시장 안정을 도모하는 부수적인 효과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민간의 공공주택 참여 비중은 정해두지 않기로 했다.

'잘하는 쪽을 밀어주겠다'는 방침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민간 건설사들이 단순히 LH의 도급으로 들어왔던 공공주택 시장을 스스로 기획하고 이윤을 남길 수 있는 하나의 시장으로 만들어 나가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공공택지 조성 시작 단계에서 민간이 어디에 단독 시행으로 참여할지 계획을 짜고 국토부가 승인하려면 5∼6년이 걸린다.

윤석열 정부에서 결실을 보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이에 따라 국토부는 법이 개정되면 LH가 사업계획을 승인받은 공공주택건설사업의 사업시행자를 변경해 민간 시행의 물꼬를 튼다는 계획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