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경제를 강하게 떠받치던 노동시장이 냉각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 같은 추세가 이어지면 내년 미국 경제의 성장 둔화 속도가 더 빨라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넘쳐나는 일자리와 구인난에 따른 고임금이 인플레이션을 자극하는 이른바 ‘임금-물가 스파이럴(나선소용돌이)’이 드디어 끊어졌다는 평가다. 미국 중앙은행(Fed)이 12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 금리를 동결하고 내년 상반기에 금리를 인하할 것이라는 기대도 커지고 있다.

○2021년 3월 이후 최저치

美고용 냉각…"고임금-인플레 악순환 끝났다"
미국 노동부가 5일(현지시간) 발표한 10월 구인·이직보고서(JOLTS)에 따르면 10월 구인 건수는 전월보다 61만7000건 감소한 870만 건을 기록했다. 2021년 3월 이후 가장 낮은 수치이며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집계한 시장 전망치 940만 건에도 크게 못 미쳤다. 사상 최고치를 찍었던 2022년 3월 1200만 건의 3분의 2 수준에 그쳤다.

노동부는 미국 전역 1만6400개 사업장을 포함한 민간 부문과 연방 주정부 및 지방정부 등을 조사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구인·이직 보고서를 발표한다. 10월엔 주요 업종별로 보건의료 및 사회복지 부문에서 23만6000건이 줄었고, 금융·보험에서 16만8건이 감소했다.

노동시장이 얼마나 뜨거운지 가늠할 수 있는 지표인 이직률은 2.3%로 전월과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다. 이직률은 2022년 4월 3%를 찍은 이후 하락하는 추세다. 이직률이 낮다는 것은 더 높은 연봉을 제시하는 일자리가 그만큼 줄었다는 뜻이다.

○물가 상승 둔화 속도 빨라질 듯

미국 노동시장은 고금리 상황에서도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 이전을 훨씬 웃도는 일자리를 창출하면서 소비를 진작했다. 외신에선 임금과 물가가 나선소용돌이를 만들며 인플레이션을 자극한다는 표현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일자리 증가세가 둔화하면서 물가도 함께 잡히는 모습이다.

미국의 구인 건수뿐 아니라 고용으로 이어진 비농업 부문 신규 일자리도 점차 감소하고 있다. 9월 비농업 신규 일자리는 전월 대비 33만6000개 늘었다. 이는 시장 전망치(17만 개 증가)의 두 배에 육박하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10월 비농업 신규 일자리는 15만 건을 기록해 시장 예상치를 크게 밑돌았다. 9월 수치인 33만6000개도 29만7000개로 하향 조정됐다.

6일 고용정보업체 ADP가 발표한 11월 미국 비농업 신규 일자리 역시 전달보다 3000개 줄어든 10만3000개로 집계됐다. 월가 전망치인 13만 개를 밑도는 수치다.

일자리 증가 속도가 둔화하면서 물가 상승률은 점차 내려가는 모습이다. 10월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동월 대비 3.2% 상승했다. 전월 상승률(3.7%)보다 낮은 것은 물론이고, 블룸버그가 집계한 전문가 예상치(3.3%)보다도 0.1%포인트 낮은 것이다.

○10년 만기 美 국채 금리 하락

미국 노동시장의 구인 건수가 대폭 줄었다는 소식에 Fed가 내년에 기준금리 인하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확산하면서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연 4.2% 아래로 떨어졌다. 이날 미 국채 10년 만기 금리는 0.08%포인트 하락한 연 4.17%를 기록했다.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10월 Fed가 고금리를 예상보다 오래 지속할 것이란 관측이 퍼지면서 연 5%를 넘어서기도 했지만 11월 이후 줄곧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신중론도 만만치 않다. 무함마드 엘 에리언 알리안츠그룹 수석경제고문은 이날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시장이 Fed의 행보를 낙관적으로 해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Fed가 곧 금리 인상을 종료할 가능성은 크지만, 이것이 즉각적인 금리 인하로 이어질 것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고 강조했다. 또 “현재 Fed와 시장 사이에 심각한 소통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뉴욕=박신영 특파원/오현우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