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드 vs 펀드] 국내 증시 어디로 튈지 모르니…글로벌 자산배분 펀드에 돈 몰린다
지난해 국내 주식형펀드의 수익률 부진으로 어려움을 겪은 투자자들의 시선이 글로벌 자산배분 펀드로 옮겨가고 있다. 투자 대상이 한 국가나 자산에 집중되면 펀드매니저의 능력과 관계없이 시장 상황에 따라 손실이 날 확률이 높다는 판단에서다. 자산배분 펀드는 박스권에 갇힌 국내 주식시장을 벗어나 미국 유럽 일본 등 해외 시장에 투자하는 상품을 말한다.

펀드의 성격도 달라지고 있다. 기존 주식·채권에서 상장지수펀드(ETF)로 펀드가 편입하는 자산이 바뀌고 있는 분위기다. 일부 상품은 사람 펀드매니저 대신 로보어드바이저(로봇+투자자문가)가 종목을 선정한다. 투자나 고객 연령에 따라 자산을 배분하는 ‘타깃데이트펀드(TDF)’도 늘어나는 추세다.

돈 몰리는 자산배분 펀드

9일 펀드평가사 제로인에 따르면 국내에서 판매 중인 48개 해외 자산배분 펀드엔 최근 3개월 동안 264억원(지난 5일 기준)의 자금이 들어왔다. 같은 기간 국내에서 판매되는 모든 액티브(펀드매니저가 종목을 분석해 투자) 펀드에서 자금이 빠져나간 것과 대조적인 흐름이다. 국내 시장에 투자하는 액티브펀드엔 최근 3개월 동안 1조4456억원이 빠져나갔고, 해외 주식형펀드에서도 6547억원이 인출됐다.

전문가들은 국내 주식형펀드 시장에서 지난해 큰 실패를 경험한 투자자들의 자산 운용 전략이 한층 더 조심스러워졌다고 평가한다. 수익률보다 변동성에 초점을 맞추고 여러 자산에 고루 투자하려는 경향이 뚜렷해졌다는 설명이다. 특히 올해는 여느 해보다도 변동성 관리가 중요하다는 진단이다. 미국 중앙은행(Fed)의 기준금리 인상, 도널드 트럼프 당선자의 미국 대통령 취임,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한반도 배치 등으로 국내 증시의 불확실성이 한층 더 높아졌기 때문이다.

장기적으로 봤을때 자산 배분 펀드의 수익률이 좋았다는 점도 자금이 몰리는 요인으로 꼽힌다. 해외 자산배분 펀드의 지난 5년간 수익률은 30.83%로 국내 액티브 주식형 펀드(3.60%)보다 27.23%포인트 높다. 국내 채권형(16.91%) 펀드와 비교해도 월등한 성적을 냈다.

자산배분 신상품 줄이어

국내 자산운용사들도 자산배분 부문 강화를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신한BNP파리바자산운용은 합작사인 프랑스 BNP파리바의 자산배분 전담 조직인 멀티에셋솔루션(MAS)의 임마누엘 벨레가드 포트폴리오 매니저를 멀티솔루션본부 부본부장으로 영입했다. 벨레가드 부본부장은 지난 20년 동안 BNP파리바에서 글로벌 자산배분 전략을 짜고 이를 상품으로 만드는 업무를 담당했다. 신한BNP파리바자산운용 관계자는 “벨레가드 부본부장의 선진 시장 경험을 바탕으로 그동안 국내 시장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개념의 자산배분 펀드를 출시할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자산 배분 상품도 속속 나오고 있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은 이달 중순 AI를 활용한 자산 배분 상품을 내놓을 계획이다. 이 회사는 이를 위해 지난해 고려대 복잡데이터연구실과 ‘AI 금융연구센터’를 설립했다. 고객의 투자 성향에 따라 위험도 다르게 가져가되 스마트베타 ETF와 시장대표지수 등 안전 자산에 투자할 예정이다.

키움증권은 하이자산운용과 손잡고 자체 개발한 ‘하이 로키(ROKI)1 글로벌 로보어드바이저 펀드’를 지난달 7일 출시했다. 이 펀드는 국내 및 해외 ETF 종목에 투자한다. 전 세계 국가별 금융지표와 투자자산을 모니터링하고 이를 통해 최적의 글로벌 자산배분 포트폴리오를 구성한다.

자산운용업계 1위인 삼성자산운용도 고객 성향에 맞게 위험을 조절해 글로벌 ETF에 투자하는 자산배분 펀드를 출시할 방침이다. ‘ETF 1세대’로 불리는 배재규 삼성자산운용 패시브담당 전무를 중심으로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KB자산운용 역시 계량분석과 정보기술(IT) 역량을 결합해 ‘패밀리 오피스’ 수준의 자산배분을 해주는 솔루션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한국투자신탁자산운용은 이르면 다음달에 업계에서 두 번째로 TDF 상품을 내놓을 예정이다.

김우섭 기자 dut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