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에 사는 맞벌이 주부 김모씨(35)는 매주 목요일 퇴근길마다 기대감에 부푼다. 제철 먹거리 ‘꾸러미’가 배송되는 날이기 때문이다. ‘이번엔 뭐가 들었을까’ 궁금해 하며 포장을 뜯으면 얼갈이배추와 시금치, 취나물 등 신선한 먹거리가 나온다. 모두 전북 완주 농가에서 당일 새벽에 딴 것들이다. 그는 “마트에 가지 않고도 신선하고 믿을 수 있는 먹거리를 구할 수 있다”며 “농가에서 요리법을 적은 편지와 함께 고추순이나 고들빼기 같은 것을 보내올 때면 더욱 정이 느껴진다”고 귀띔했다.

소규모 생산자와 대도시 소비자를 직접 연결하는 공동체 지원 농업(CSA·community supported agriculture)의 사례다. 영세 소농들에겐 소중한 유통 활로다. 농림수산식품부가 내년 농정 개혁의 화두로 CSA를 선택한 이유다.

◆조금 특이한 직거래

김씨는 완주군 ‘건강밥상 꾸러미’ 사업 회원이다. 완주군이 2010년 시작한 이 사업은 국내 첫 CSA 모델로 꼽힌다. 소비자들이 정기적으로 회비를 내면 지역 농가들이 1~2주에 한 번씩 제철 먹거리를 배송해주는 사업이다. 소비자-생산자 직거래라는 점에서 생활협동조합과 비슷하다. 하지만 소비자가 직접 제품을 고르는 게 아니라 농가 스스로 작황이나 계절에 따라 제품을 구성한다는 점이 다르다.

하나의 꾸러미에는 4인 가구가 1주일 동안 먹을 수 있는 11가지 제철 식품이 들어간다. 새벽에 개별 농가에서 딴 채소와 과일, 지역 작목반에서 만든 두부, 반찬 등을 집하장에서 직접 수거한 뒤 수도권이나 가까운 전주시 소비자들에게 배송한다. 수확 후 5~6시간 안에 소비자에게 전달돼 신선할 뿐 아니라 중간 유통단계를 생략해 가격도 저렴하다.

나영삼 완주군 로컬푸드팀장은 “꾸러미당 2만5000원인데 일반 시중 가격보다 5000원 정도 싸게 공급하는 것이 원칙”이라며 “농가가 요리법과 재배 사연 등을 편지로 보내고, 생산지 팸투어 등을 진행하는 등 ‘신뢰’로 맺어지는 유통구조”라고 설명했다.

◆새로운 틈새 유통구조

CSA에는 주로 소농이 참여한다. 고령농이나 텃밭을 가꾸는 겸업농, 여러 작목을 실험 중인 귀농 초기 농가들이다. 이들은 여러 작목을 소규모로 재배하다 보니 대형 유통업체와 도매상에 납품하기 어렵다. 이때 도시민들이 정기적으로 구매해주면 소농들이 농업을 유지할 수 있다.

이 점에 착안해 농식품부가 내년부터 100억원의 예산을 들여 CSA 사업 지원에 나서기로 했다. 서해동 농식품부 유통정책과장은 “농촌 고령화와 영세농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틈새 유통구조가 필요하다”며 “미국 일본 등 선진국에서는 이미 CSA가 중요한 유통구조로 정착했다”고 설명했다.

아직은 완주군과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등 일부 민간에서 CSA 사업이 싹을 틔운 상황이다. 완주군의 경우 현재 꾸러미 사업에 참여하는 소비자는 3500가구, 생산자는 150가구에 이른다. 지난 4월에는 완주군에서 당일 생산한 농산물을 판매하는 1일 유통 직매장을 전주 인근에 개설하는 등 외연을 넓혀가고 있다. 나 팀장은 “겸업농이 많고 서울과 인접한 경기도 등에서 CSA 사업의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며 “정부 지원에 의지하기보다는 장기 계획을 세워 자활 능력을 키우는 게 관건”이라고 말했다.

김유미 기자 warmfron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