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는 혼자 살아가지만 사자는 집단을 이뤄 생활합니다. 이는 진화하는 과정에서 각자의 생존에 유리한 방식을 찾은 것입니다. 사람은 집단을 이루는 대표적인 동물입니다. 사람들이 모여 집단을 이루는 가장 큰 인센티브는 생존 가능성을 높이는 상호이익 구조입니다. 이는 문명도와 상관없이 적용되는 보편적 원칙입니다. 민족과 국가,기업을 비롯한 모든 형태의 조직체는 구성원 간의 상호이익이 전제돼 있습니다. 한쪽이 일방적으로 이익을 보고 다른 한쪽은 손해만 보는 집단은 내부 분열과 갈등이 불가피해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없습니다. '천년제국' 로마의 상호이익 조직 구조를 통해 기업경영의 지혜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정복과 패권의 차이

라틴 단일 민족의 촌락으로 출범한 로마는 정복사업으로 권역이 확장되면서 다민족,다문화,다언어,다종교 국가로 변모했습니다. 하지만 전쟁으로 인해 로마의 지배하에 들어온 민족들이 처음부터 로마를 순순히 인정했던 것은 아닙니다. 자주(自主)를 내세우며 민족의식을 자극해 독립을 부추기는 세력도 존재했으며,일부는 로마의 지배에 항거해 반란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이렇듯 군사적 정복이 곧 패권 확보를 의미하지는 않았습니다. 정복은 강한 군사력만 있으면 가능하지만,패권은 정복지역에 새로운 질서를 수립하고 유지시키는 능력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로마의 상호이익 공존 구조

로마가 단순한 정복에 그치지 않고 패권 확립으로 인한 장기간의 안정 유지가 가능했던 것은 피지배 민족들과 상호이익을 공유하는 구조를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그 핵심은 군사력이라는 하드파워보다 지방자치,가도(街道),법률과 같은 소프트파워에 있었습니다. 민족 각각의 특성을 인정한 자치를 허용했으며,로마가도 건설로 경제를 발전시키고,법률을 통한 공정한 질서를 수립해 권역 내 거주민들에게 실질적인 이익을 준 것입니다.

로마는 정복지역을 그 지역의 특성에 맞게 유연하게 통치했습니다. 마케도니아,카르타고,시리아,그리스처럼 기존 국가의 질서가 유지되고 있던 곳은 독립적인 동맹국으로 인정했습니다. 갈리아나,에스파니아처럼 통일된 국가가 존재하지 않고 불안정한 지역은 속주로 편입해 중앙정부에서 총독을 파견했습니다.

로마는 속주민들에게 안전보장 명목의 속주세 10%를 부과하는 것 외에는 로마시민과 차별을 두지 않았으며,로마의 문화를 강요하지도 않았습니다. 속주민들은 고유의 언어와 풍습,종교를 지키면서 선거든 세습이든 그들의 방식대로 지도자를 선출해 전통을 이어나갔습니다.

#로마의 핵심 인프라 '로마가도'

지방자치제도가 정치적 안정이라면 가도 건설은 경제 활성화라는 이익을 가져왔습니다. 본래 군사 목적으로 건설되기 시작한 로마가도는 로마의 패권 확대에 따라 제국 전역으로 확장됐습니다. 로마가도는 돌로 포장된 간선도로만 375개에 총 길이는 자그마치 8만㎞에 달했습니다. 일체의 통행료 없이 무료 개방된 '전천후 포장도로' 로마가도는 시간이 흐르면서 제국 각지를 연결하고 사람과 물자의 이동을 촉진시켜 경제를 활성화하는 핵심 인프라 역할을 했습니다.

물류의 발달은 제국의 경제 통합과 거주민의 삶을 향상시켰습니다. 로마제국에 편입된다는 것은 가도망이라는 글로벌 물류 네트워크 접속과 동시에 거대 경제권의 일원이 된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로마인은 가도뿐만 아니라 항구,상 · 하수도,공중목욕탕,원형경기장과 같이 넓은 범위의 사회간접자본을 제국 전역에 걸쳐 건설했습니다. 자체적으로는 이런 사회간접자본을 건설할 자금과 기술이 없었던 민족들에 로마는 새로운 경제적 가능성을 열어준 것입니다.

#기업은 거대 네트워크의 중심

로마제국의 본질적인 성격은 다양한 국가와 민족을 상호이익 구조에서 포용하는 플랫폼이었습니다. 이런 점이 오늘날의 기업,특히 규모가 큰 기업이 배워야 할 대목입니다. 외부와 고립돼 존재하는 기업은 없습니다. 조직은 자원을 조달해 생산하고 고객에게 판매하는 전 과정에서 외부와 관련을 맺어야만 합니다. 기업이 외부와 맺는 관계의 성격을 우리 식으로 단순하게 표현하면 결국 '갑(甲)' 또는 '을(乙)'입니다.

산업별로 특성은 다르지만 자동차와 조선,가전과 같은 조립업체나 프랜차이즈사업의 본사는 거대 네트워크의 중심으로 '갑'의 입장입니다. 이런 것이 로마제국과 비슷한 점입니다. 이들의 경쟁력은 기업이 주도하는 전체 네트워크의 핵심입니다. 자동차회사의 경쟁력은 부품회사의 경쟁력과 불가분의 관계이고,프랜차이즈본사의 경쟁력은 점포 하나하나의 경쟁력과 무관할 수 없습니다.

상호이익 구조를 만들어가지 못하고 힘으로 찍어 누르는 일방적 착취 구조가 형성되면 기업의 경쟁력은 도태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익이라는 인센티브 없이 상위 기업에 봉사하는 하위 업체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갈수록 조밀해지는 기업생태계에서 상호이익 구조를 바탕으로 신뢰관계를 형성해나가야 진정한 글로벌 일류 기업으로 발전할 것입니다.

정리=이주영 한경가치혁신연구소 연구원

opei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