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만났을 때,

저녁 하늘 맑게 개었었지요.

붉게 타는 자동화 꽃나무 아래,사람들 오가는 월왕대 앞에서,

살며시 바라보며 그윽한 사랑의 눈길 보냈었죠.

일부러 비취 비녀 살짝 떨어뜨리고,

코끼리 타고 등 돌려 먼저 물을 건넜지요.

-이순(李珣)의 '당신을 만났을 때' 전문


아하,첫눈에 반했군요. 저녁 노을과 붉은 꽃잎,홍조 띤 볼….사랑의 눈길이 그윽하면서도 도발적입니다. '추파(秋波)'란 가을날 맑고 잔잔한 물결처럼 아름다운 눈짓이 아니던가요. 잠자리에서만 빼놓는 비취 비녀를 살짝 떨어뜨린 뒤 등을 돌리는 반전.참으로 거대한 유혹입니다. '먼저 물을 건넜다'는 것은 운명을 건 결단의 상징이자 실행의 또다른 비유이겠지요.

고두현 문화부장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