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 시절, 일본에 유학을 갔을 때, 다른 세상에 온 것 같았어요. 국내에는 훈련을 할 수 있는 곳이 동대문 아이스링크 하나밖에 없었지만 일본에는 정말 좋은 링크가 많았어요. 또한, 피겨를 즐기는 사람들도 많았죠"

현재, 피겨 국가대표 곽민정(16, 군포수리고)과 이동원(14, 과천중)을 지도하고 있는 신혜숙(54) 코치는 선수시절, 일본으로 유학을 갔을 때의 기억을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피겨 여왕' 김연아(20, 고려대)의 등장 이후, 비로소 대중들에게 알려진 국내 피겨에 비해 일본 피겨의 저변은 오래전부터 진행돼 왔다. 선수층과 지도자 층, 그리고 훈련을 할 수 있는 아이스링크의 수와 지원 등은 비교가 되지 않는다.

일본 피겨의 대표적인 메카는 단연 나고야시다. 아이치현에 위치한 나고야는 인구 2백 30만 규모의 중소 도시로서 중공업 산업이 발전된 도시다. 유독 이곳에서 피겨 선수가 많이 배출되는 원인은 중공업 도시에 거주하는 중산층의 재정적인 여유와 이 지역에 밀집돼 있는 아시스링크 때문이다.

주니치 신문사의 나카야 히데키 스포츠 담당 기자는 "일본 피겨 선수의 상당수는 나고야와 아이치현에서 배출된다. 나고야에는 아사다 마오의 훈련장인 일본 츄코대 아이스링크가 있고 스즈키 아키코(25)와 안도 미키(23)가 활동했던 링크도 있다. 또한, 여자 싱글 선수로서 최초로 트리플 악셀을 구사한 이토 미도리(1992년 알베르빌 동계올림픽 은메달)도 나고야 출신이다"고 밝혔다.

일본의 피겨 전용 아이스링크는 사설 단체를 통해 운영되고 있다는 경우도 많다고 대답한 나카야 기자는 "링크를 운영하는 단체의 경영이 좋을 땐, 아이스링크 운영에 큰 문제가 없지만 이 단체들이 재정난을 겪게 되면 아이스링크가 문을 닫아 피겨를 배우던 학생들이 갑자기 훈련지를 잃게 되는 문제점도 지니고 있다"고 덧붙었다.

일본의 피겨 저변과 선수층은 한국과 비교되지 않는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일본 피겨 계는 뛰어난 유망주를 발굴해 집중적으로 훈련을 시키는 '얼음 폭풍' 프로젝트를 추진해 왔다. 이 시스템을 통해 배출된 최고의 선수라고 자평한 아사다 마오는 일본의 자존심이었고 이 스케이터 한명에게 투자된 금액은 상상을 초월했다.

그러나 '일본의 자존심'은 김연아에게 무려 23점차로 패배했다. 이러한 사실에 일본은 큰 충격을 받았고 일분 언론은 여전히 이러한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그리고 많은 일본 매체는 벌써부터 2014년 소치 올림픽을 전망하고 있다. 이번의 패배에 대한 자신들의 자존심을 소치에서 만회하려고 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 피겨도 소치 올림픽에서 선전이 예고되는 유망주들이 속속히 등장하고 있다. 이번 올림픽에 출전한 일본 스케이터들은 아사다 마오를 제외하면 노장들이 많았다. 20대 중반인 스즈키 아키코는 이번 올림픽이 마지막이었으며 안도 미키는 4년 후에 20대 후반으로 들어선다.

그러나 곽민정(16, 군포수리고)은 불과 16세의 어린 나이에 자신의 기술을 모두 깨끗하게 성공시키며 13위에 올랐다. 이번 올림픽에 출전한 선수들 중, 가장 어린 선수에 속했던 곽민정은 국제 심판들에게도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또한, 올초에 열린 전국종합선수권대회에서 곽민정을 큰 점수 차이로 누르고 국내 피겨 챔피언에 등극한 김해진(13, 관문초)도 버티고 있다.

만 12세에 트리플 점프 5가지를 모두 완성한 김해진의 등장에 많은 피겨 전문가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고성희 대한빙상경기연맹 심판 이사는 "김해진은 점프가 정확하고 매우 안정적이다. 어린 나이에 이 정도로 다양한 점프를 구사한다는 점은 실로 대단한 일"이라고 평가했다.

일본도 '제 2의 아사다 마오'로 추켜세우고 있는 무라카미 카나코(16)에게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지난해 12월에 열린 '전일본선수권대회'에 출전한 무라카미는 무려 176.61점의 점수를 받아 종합 5위에 올랐다.

국가와 사설 단체의 지원과 풍부한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는 일본은 척박한 환경 속에서 나온 김연아에 대한 패배에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그러나 김연아의 뒤를 잇고자 하는 재능 넘치는 한국 선수들은 꾸준하게 배출되고 있다.

여전히 전용링크가 하나도 없는 국내에서 이러한 유망주들이 계속 등장하고 있는 사실은 '기적'에 가깝다.

이 선수들의 재능을 더욱 키워나가려면 국내에도 선수의 훈련에 대한 기본적인 시스템 구축이 가장 필요하고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 전용링크 건설이 가장 시급하다.

뉴스팀 newsinf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