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투기 수법이라고 하면 으레 전매 금지된 아파트 분양권을 불법 매매하는 '복등기'나 '처분금지 가처분'을 떠올리기 쉽다. 단독주택을 다세대로 전환해 분양권을 늘리는 '지분 쪼개기'나 개발 예정 지역의 땅을 조금 사놓고 개발을 방해한 뒤 거액을 받고 넘기는 '알박기'도 많이 알려진 수법이다. 그러나 요즘은 새로운 부동산투기 수법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국세청은 8일 부동산 거래를 하면서 편법 · 불법적인 방법을 동원해 소득을 탈루하는 수법이 갈수록 교묘해지고 있다며 올 들어 세무조사 과정에서 새로 적발된 투기 수법을 공개했다.

우선 사업 개발 정보를 입수해 토지를 취득한 후 단기 양도하면서 매수자 및 은행직원과 결탁해 다운계약서와 차명계좌로 양도소득세를 탈루하는 수법이 덜미를 잡혔다. 투기꾼 박모씨는 사업 개발 정보를 사전에 입수해 해당 지역의 토지를 25억원에 취득한 후 50억원에 매각하는 과정에서 양도세를 덜 내기 위해 양도가액 30억원으로 다운계약서를 작성했다. 박씨는 은행직원과 결탁해 차명계좌로 차액 20억원을 송금받았지만 국세청에 적발돼 양도세 10억원을 추징당했다.


세금을 낼 능력이 없는 무능력자를 중간에 개입시켜 소유권이전 등기를 함으로써 양도세를 내지 않는 사례도 있었다. 김모씨는 개발 예정지를 8억원에 취득한 후 고액의 양도차익이 예상되자 양도세를 포탈할 의도로 무능력자 이모씨에게 9억원에 허위로 소유권을 이전했다. 이씨는 김씨가 짠 각본대로 이 땅을 20억원에 되팔았는데 실제 재산이 없어 양도세는 한푼도 내지 않았다. 그러나 국세청은 땅의 실제 주인이 김씨인 것을 밝혀내 6억원을 추징하고 고발 조치했다.

신도시 개발 지역의 이주자 택지를 미등기전매자로부터 매수해 자녀에게 증여하면서 이 사실을 숨기기 위해 자금세탁을 한 사례도 있었다. 신도시 개발지역 원주민 최모씨는 분양계약 전에 4억원을 받고 이주자 택지 취득권을 전문투기꾼 김모씨에게 양도했다. 김씨는 다시 송모씨에게 이 취득권을 5억원에 넘겼다. 그러나 송씨는 증여를 위해 최씨가 자신의 자녀에게 1억1500만원에 양도한 것으로 꾸몄다가 세무조사를 당했다. 결국 최씨와 김씨는 양도세 3억원을,최종 취득자인 송씨의 자녀는 증여세 1억원을 각각 추징당했다.

특허법률사무업을 하는 사업자가 해외 고객에게서 받은 수입을 신고하지 않고,그 자금으로 서울 강남 및 개발 예상 그린벨트 내 고액 부동산을 사들인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부동산 취득 금액에 비해 소득신고 금액이 너무 적다는 것을 의심한 국세청의 세무조사에 걸려들어 수억원의 종합소득세를 내야 했다.

법인 명의로 취득이 불가능한 농지를 현지 농민의 명의로 취득한 기획부동산도 있었다. 이 기획부동산은 허위 매매계약서로 취득가액을 부풀리는 방법으로 법인세까지 포탈했다. 농민 명의로 46억원에 사들인 임야를 95억원에 산 것처럼 매매계약서를 썼다가 법인세 등 65억원을 추징당하고 고발됐다.

원정희 국세청 재산세국장은 "지난 5월부터 강남 재건축을 중심으로 상승세를 보이던 부동산 가격이 최근 하향 안정세로 돌아서고 있지만 투기 수법은 더욱 교묘해졌다"면서 "부동산 투기는 끝까지 추적해 세금을 추징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욱진 기자 ventu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