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뉴욕타임스는 신지애(21 · 미래에셋)가 미국LPGA투어 ADT챔피언십에서 우승한 뒤 "LPGA가 걸출한 스타 소렌스탐을 잃었지만 신지애라는 새 스타를 얻었다"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1년 뒤 그 내용은 현실로 다가왔다. '루키' 신지애가 '올해의 선수상'은 아쉽게 놓쳤지만 역대 최연소 신인상과 상금왕,다승왕(공동 3승)을 거머쥔 것 자체가 '준비된 골프여제'라는 사실을 잘 증명해준다.

신지애는 24일(한국시간)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의 휴스터니안GC(파72)에서 열린 올 시즌 마지막 대회인 LPGA투어챔피언십 최종 라운드에서 1오버파 73타를 쳐 최종 합계 6언더파 210타로 공동 8위를 기록했다. 우승컵은 최종 합계 13언더파 203타를 적어낸 안나 노르드크비스트(스웨덴)에게 돌아갔다.

신지애는 단독 2위(11언더파 205타)에 오른 로레나 오초아(멕시코)에게 올해의 선수상부문에서 역전을 허용했다. 신지애에게 8점이나 뒤져 있던 오초아는 이날 12점을 추가,총 160점으로 신지애(159점)를 1점차로 제쳤다. 이미 신인왕과 상금왕을 거머쥔 신지애는 1978년 낸시 로페스(미국) 이후 31년 만에 올해의 선수상과 신인상,상금왕 동시 석권을 노렸으나 마지막 고비를 넘지 못했다. 16번 홀(파5)까지 공동 5위를 달리던 신지애는 17번홀(파3) 티샷이 벙커에 빠져 통한의 보기를 범해 공동 8위로 밀린 게 아쉬움을 남겼다.

하지만 올 시즌 신지애가 펼친 활약은 대회가 끝난 뒤 미국 골프채널 리포터가 "축하합니다(congratulations)!"라고 첫 말을 던질 정도로 엄청난 성취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목사인 아버지 신재섭씨(49)의 권유로 처음 골프채를 잡았던 신지애는 중3 때인 2003년 11월 뜻하지 않은 교통사고로 어머니를 잃는 시련을 맞는다. 당시 두 동생도 크게 다쳐 1년 넘게 병실 한 귀퉁이에 간이 침대를 마련,병간호에 나섰다. 이때도 골프채를 손에서 놓지 않았고 웃음을 잃지 않았다. 이달 초 일본에서 열린 미LPGA투어 미즈노클래식 때 어머니 기일을 맞아 흑백의 의상을 입은 것도 지극한 효심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신지애는 "가족이라는 사랑의 울타리가 있었기에 힘든 과정을 이겨낼 수 있었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신지애는 국가대표로 선발돼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 출전을 눈앞에 뒀지만 돈을 벌기 위해 프로행을 택했다. 지난해 KLPGA(한국여자프로골프) 투어 3개 메이저대회 석권을 포함한 7승,시즌 상금 사상 첫 7억원 돌파,3년 연속 상금왕 및 대상 수상 등 각종 기록을 갈아치웠다. 미LPGA투어 정규 멤버가 아니면서도 메이저대회인 브리티시여자오픈 우승 등 3승을 거두는 전인미답의 기록도 세웠다.

하지만 미국 무대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시즌 개막전인 SBS오픈 2라운드에서 9오버파 81타의 스코어를 기록,어이없게 커트 통과에 실패했다. 프로 데뷔 이후 커트 탈락은 물론 80대 타수를 적어낸 것도 처음이었다. 그의 표현대로 '쓰디 쓴 보약'을 제대로 먹은 셈이다. 하지만 퍼트감이 되살아나면서 시련 앞에서 강해지는 '신지애표 뒷심'이 효력을 발휘했다. 상반기가 끝나기 전 HSBC위먼스챔피언스와 웨그먼스LPGA대회에서 2승을 챙기며 상금랭킹 선두로 뛰어 올랐다.

장거리 이동 등 강행군 속에 하반기에는 체력 문제가 불거졌다. 드라이버샷 거리는 연초보다 20야드가량 짧아졌고 7번 아이언도 한클럽반 줄었다. 이번에는 정신력이 돋보였다. 신지애의 코치 스티브 맥라이(호주)는 "신지애의 멘털과 자신감은 타이거 우즈에 못지 않다"고 평가한다. 항상 자신있게 스윙을 하고 끝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는 게 그의 특기다. 올시즌 드라이버샷 거리는 246야드로 98위에 그쳤지만 페어웨이 안착률과 그린 적중률은 각각 82.4%(1위),71.4%(15위)를 기록했다.

'앙팡테리블(무서운 아이)'신지애가 일군 'LPGA 1년 성적표'는 기대 이상이다. 올 시즌 여러 예방 주사(?)를 맞은 신지애가 '골프여제'라는 수식어를 달 날도 머지않아 보인다.

김진수 기자 tru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