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원경으로 사방을 둘러봐도 경쟁자가 없다. "

지난달 28일 중국 저장대 경제학원 강의실.양샤오제 알리바바그룹 매니저는 "경쟁사는 어떤 회사들이냐?"는 질문에 회사 창업자인 마윈 회장(45)이 최근 직원들과 모인 자리에서 이같이 답했다고 전했다. 알리바바를 창업 10년 만에 전 세계 온라인 기업 간(B2B) 거래의 90%를 차지하는 거대한 '인터넷 장터'로 성장시킨 자신감이 강하게 묻어나왔다.

항저우의 평범한 대학 영어강사였던 마 회장이 50만위안(약 1억원)을 투자해 설립한 알리바바는 지난 10년간 눈부신 성장을 해왔다. 지난해 말 기준 알리바바닷컴 회원은 220여개국,3800만명이며 2008년 순이익은 12억위안(약 2400억원)에 달한다. 또 개인 간 거래를 담당하는 자회사인 타오바오닷컴은 문을 연 지 6년 만에 전 세계 방문자 순위 37위에 올랐고 1억2000만명의 등록 판매자를 보유하고 있으며 중국 전체 개인 간 온라인 거래의 97%를 담당한다.

저장성에는 알리바바와 같이 급성장한 기업이 수두룩하다. 1978년 중국이 개혁개방을 시작했을 당시 128억위안에 불과했던 저장성의 총생산(GDP)은 지난해 2조1487억위안을 기록했다. 중국 500대 민영기업 중 185개 기업이 저장성 기업으로 중국 31개 성 중 가장 많으며 개인 기업 수만 52만개로 중국 내 그 어떤 성보다 앞서는 성과를 냈다.

이 지역 상인들은 절강상인(浙江商人)으로 불리며 중국의 시장경제를 상징하는 하나의 브랜드로 자리잡았고 이들의 특징을 모아 '절상정신'을 배우자는 바람이 국제적으로 불고 있다. 알리바바 외에도 중국의 10대 자동차 기업 중 하나인 지리자동차,중국 최대 음료회사인 와하하그룹이 대표적인 기업이다.

한경아카데미와 마음인재경영연구소는 지난달 26일 신명진 구로디지털단지 기업인연합회장 등 국내 중소기업인 15명으로 구성된 '제1기 절강상인정신 탐방단'을 조직해 중국 500대 기업 81개가 몰려 있는 항저우로 향했다. 면적이 중국의 성 중 네 번째로 작은 척박한 환경에서 규모가 큰 다른 성을 압도하는 성과를 낸 절강상인들을 직접 만나 그들의 성공 비결을 듣기 위해서다.

권영설 한경아카데미 원장은 "최근의 경제위기 상황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예전 '한강의 기적'을 일궈낸 창업 1세대들의 정신을 되찾는 것"이라며 "개혁개방 이후 열린 중국의 부의 재편 시대에 기회를 잡아 20여년 만에 신흥 세력으로 떠오른 절강상인들에게서 그 실마리를 찾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절강상인들이 단기간 내에 중국을 대표하는 최고의 상인으로 떠오를 수 있었던 비결은 뭘까. 양이천 절강상인 연구회장은 저장성이 다른 성에 비해 면적이 좁고 부존 자원도 적어 가만히 농사만 지으면 먹고 살기가 힘든 곳이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즉 절강상인들이 생존의 차원에서 절박하게 어떻게든 자신들이 생산한 물건을 다른 지역에 팔기 위해 노력하면서 상인의 기질이 형성됐다는 것이다.

실제로 대표적인 기업 창업자들은 대부분 가난한 농민 출신이다. 매년 11억위안의 매출을 올리는 케이블 제조업체인 아샹그룹의 판아샹 회장이 대표적인 예다. 그는 현재 64세지만 아직까지 글자를 모른다. 각 성의 시장이 와서 명함을 주면 엄지손가락 모양의 그림을 표시하고 공안 관련 인물들의 명함에는 권총 표시를 한다고 한다.

양 회장은 "판 회장은 그 어떤 교육도 받지 못했지만 매년 11억위안의 매출을 올리는 기업을 만들어냈다"며 "어렵고 힘들더라도 생존을 위해 장사에 나서는 것이 절상정신"이라고 말했다.

또 절강상인들은 그 누구보다 끈기가 있다. 중칭허우 와하하그룹 회장은 42세에 창업한 뒤 음료 판매 시장을 확보하기 위해 1년에 200일을 객지로 돌았다. 12일 만에 중국의 절반을 돈 적도 있을 정도.전기기계 부품 생산회사인 더리시 그룹의 후청중 회장은 전기 스위치를 만들기 위한 부품을 구하고자 주변 일대 80여군데의 시장을 찾아다녔다는 일화가 있다.

3박4일간 절상정신의 본류를 현장에서 생생하게 체험한 경영자들은 무엇보다 창업 초기의 각오를 다시 다질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입을 모았다.

김순식 마이스터텔레콤 사장은 "처음 창업했을 때 '하루에 거래선을 3명 이상 만나자'라는 '일삼원칙'을 세웠었는데 어느 정도 먹고 살 만해지니 이것을 잊고 살았다"며 "절강상인들의 급성장을 현지에서 보니 다시 한번 열심히 뛰고자 하는 의욕이 생겼다"고 말했다.

차광선 진명하이테크 사장은 "절강상인들의 창업정신은 1950~60년대 한국의 창업 1세대인 정주영,이병철 회장 등의 창업정신과 비슷하다"며 "'헝그리정신'으로 끝없이 도전했던 그분들이 가졌던 정신을 생생하게 다시 체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고 강조했다.

항저우(중국)=박민제 기자 pmj5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