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별좌담 - 기술융합을 통한 혁신창출 >

"독특한 개성을 지닌 재료들이 한데 모여 새로운 맛을 창출하는 한국의 비빔밥처럼 대학은 각 기술개발 분야 전문가들의 시너지를 극대화해 훌륭한 연구 결과를 이끌어 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기술 융합의 매개체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백성기 포스텍 총장)

"대학의 경쟁력도 세계 어디에서나 일할 수 있는 인재를 얼마나 배출할 수 있느냐에 따라 좌우될 것이다. 한국도 세계 노동시장에서 요구하는 인재를 길러 낼 수 있는 기반을 확충하도록 서둘러야 한다. "(요 리첸 네덜란드 마스트리히트대 총장)

지난 6일 '기술 융합을 통한 혁신 창출과 대학 역할의 중요성'이란 주제로 열린 글로벌 인재포럼 특별 좌담회에서 참석자들은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우수 인재 교육을 위한 대학의 역할과 정책 방향을 이같이 제시했다.

좌담회는 홍창선 KAIST 석좌교수가 사회를 맡았으며 요 리첸 네덜란드 마스트리히트대 총장,루돌프 티펠트 독일 뮌헨대 교수,백성기 포스텍 총장이 토론자로 참여했다.


△홍창선 KAIST 석좌교수(사회)=한국은 지난 30년간 급속한 경제 성장을 이뤘지만 최근 사회·문화·경제 패러다임 변화에 따른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 있다. 이런 때일수록 창의력과 도전정신을 가진 인력을 양성하는 대학의 중요성이 더 높아질 수밖에 없다. 글로벌화된 산업 현장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인재를 키워 내기 위한 대학과 산업계의 바람직한 관계 정립이 필요한 시기다. 우수 인재를 육성하기 위한 대학의 미래 정책 방향은 어떻게 변해야 한다고 보는지.

△요 리첸 네덜란드 마스트리히트대 총장=과거 대학의 목표가 '국가 건설(nation building)'을 위한 인재 발굴이었다면 앞으로는 '세계 건설(world building)'에 기여할 수 있는 인재를 육성하는 것이어야 한다. 대학의 경쟁력은 세계 어디에서나 일할 수 있는 인재를 얼마나 배출할 수 있느냐에 따라 좌우될 전망이다. 세계화되고 있는 노동시장은 대학에도 거센 도전 과제를 안겨 주고 있다. 세계 건설에 기여한다는 비전에 맞춰 교과 과정을 개편하고 재정을 확충하는 대학만이 살아 남게 될 것으로 본다.

△백성기 포스텍 총장=기존의 산학협력 관계도 변해야 한다. 그동안 기업은 대학을 단순히 고학력 인력의 공급처 역할로만 생각했다. 이제는 대학을 장기적인 핵심 기술 개발 파트너로 인식해야 한다. 단기간의 개별 연구 성과를 대학에 요구하는 방식 대신 오랜 기간 기술개발 노하우를 축적하고 공유하는 동반자적 관계로 거듭나야 한다. 이 같은 관계는 결국 기업이 원하는 경쟁력 있는 우수 인재를 육성하는 밑거름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루돌프 티펠트 독일 뮌헨대 교수=산업과 괴리된 대학은 이제 상상할 수 없다. 앞으로 산학 협력의 초점은 각 기업이 요구하는 맞춤형 인재 육성에 맞춰져야 한다. 실제 독일 지멘스는 독일 내 기업은 물론 유럽 아시아 등 전 세계 대학들과의 인턴십 프로그램 운영을 통해 그때 그때 각 사업 분야에서 필요로 하는 인재들을 뽑고 있다.

△홍 교수=대학 내부의 문제를 한 번 들여다보자.우수 인력을 키워 내는 인재 인큐베이터 역할을 하기 위해선 그동안 상아탑에 머물러 왔던 대학도 변화를 위한 자체 혁신이 필요하다고 보는데.

△리첸 총장=그렇다. 가장 중요한 것은 각 대학이 이제 외부,즉 국내가 아닌 세계로 눈을 돌려야 한다는 점이다. 세계적으로 연간 250만명의 학생들이 대이동에 나서고 있다. 5년 후엔 모국을 떠나 공부하는 대학생 수가 현재의 2배인 500만명에 이를 전망이다. 이렇듯 교육시장이 세계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대학 역시 세계로 영역을 넓혀 가야 한다. 마스트리히트대는 이미 사우디아라비아 터키 인도 등 5개국에 분교를 설립하고 각국 우수 인재 교육에 힘쓰고 있다.

△티펠트 교수=대학 혁신은 말만큼이나 어렵고 힘든 과정이다. 민주화와 사회적 유연성이 높은 유럽연합(EU) 국가에서조차 정치적인 고려에 의해 대학 총장이 선출되는 경우를 심심찮게 목격할 수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외부가 아닌 대학 내부적인 힘에 의한 혁신을 기대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외부 대학 및 사회와의 긴밀한 협조를 통해 혁신과 변화의 물결을 대학 내부로 끌어들이는 것이 대학 혁신을 위한 지름길이 될 수 있다.

△홍 교수=대학 내 각 분야에서 이뤄지는 다양한 기술개발 결과나 지식을 어떻게 유기적으로 통합하느냐도 중요한 문제다. 효과적인 지식 통합을 위해 대학은 무엇을 해야 하나.

△백 총장=한국의 비빔밥을 아는가. 비빔밥은 밥,야채,고기,양념장 등 다양한 재료를 섞어 하나의 새로운 맛을 창출한다. 각각의 비빔밥 재료는 자신만의 독특한 개성과 역할을 가지고 있다. 결국 그런 역할 분담이 훌륭한 결과를 낳게 된다. 이처럼 대학은 각 분야의 제너럴리스트보다는 스페셜리스트 육성에 힘써야 한다. 특정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시너지를 낼 수 있도록 이들이 서로 의사를 전달하고 상호 작용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는 데 노력해야 한다.

△리첸 총장=효과적인 지식 통합을 위해선 우선 학생들에게 서로가 자유롭게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는 기술과 능력을 키워 줘야 한다. 한 쪽에서 쓸모없이 버려지는 지식이나 연구 결과가 다른 쪽에선 훌륭한 기술 아이디어로 활용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개인이나 연구팀끼리의 교류를 가로막는 장애 요인을 먼저 없애는 것이야말로 지식 통합을 위한 지름길이라고 할 수 있다.

△티펠트 교수=서로 다른 문화를 경험하는 것은 학생들에게 창의력과 의사전달 능력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뮌헨대의 경우 전체 학생의 25%가 외국인이다. 이러다 보니 서로의 문화 가치에 대한 존중과 이해는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토대로 작용하게 된다.

이정호/민지혜 기자 dolp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