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원회가 13일 보험사나 금융투자회사(증권) 등 비은행 지주회사에 대한 규제 완화 방안을 내놨지만 당장 대기업의 지배구조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삼성생명 등 일부 보험사들이 제조업체 지분을 갖고 있어 지주사 전환의 걸림돌이 돼왔지만 여전히 보험사가 제조업체를 직접 소유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보험업계는 "바람직한 규제 완화 방안"이라고 평가하면서도 당장 지주사로 전환하는 기업들은 등장하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 삼성, 보험지주사로 가나

보험지주사에 대한 규제 완화는 금산분리 완화와 함께 국내 최대 기업그룹인 삼성의 지배구조와 관련돼 있어 관심을 끌어왔다.

삼성생명이 삼성전자 지분 7.21%를 가진 최대주주로, 삼성그룹의 지배구조가 삼성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카드→삼성에버랜드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형태로 이뤄져 있기 때문이다.

삼성이 삼성자동차 부채 문제를 단박에 풀 수 있는 삼성생명의 상장을 미뤄온 것도 이런 지배구조와 관련이 깊다.

현행 제도에서는 삼성생명을 상장하면 주식이 시세로 평가되면서 에버랜드가 가진 삼성생명 주식이 자산 총액의 50%를 넘게 되고 이에 따라 에버랜드가 자동적으로 금융지주사가 된다.

그러나 금산분리 원칙에 따라 금융지주회사는 제조업 자회사의 지분을 5% 이상 보유하지 못하고 의결권도 제한을 받는다.

결국 삼성전자 지분 일부를 팔아야 하는데 이 경우 이건희 회장 일가의 경영권 유지가 어려워질 수 있고 다른 계열사가 매입하더라도 막대한 자금이 소요된다.

이번에 금융위가 내놓은 방안은 보험지주사에 제조업 자회사는 허용하면서도 자회사인 보험사가 그 밑에 제조업체를 둘 수 없게 했다.

삼성생명이 지주회사 체제로 간다면 삼성전자 지분을 팔아야 한다는 얘기다.

금융위 관계자는 "보험사가 제조업체를 직접 거느릴 수 있도록 할 경우 보험 계약자에게 받은 자산으로 비금융회사에 대한 지배력을 확장해 금융 소비자와 이해가 충돌하게 된다"고 말했다.

삼성생명 관계자는 "비금융 지주회사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차원에서 진일보된 규제 완화 조치"라면서도 "다만 삼성생명의 경우 순환출자 해소 과정에서 삼성전자 지분을 정리해야 하는데 그 비용이 막대하기 때문에 당분간 지주사 전환은 어려울 것 같다"고 밝혔다.

금융위가 지주사 전환 계획을 제출하는 기업집단에 대해 제조업 자회사 지배 금지나 순환출자 금지 등의 규제를 최장 7년간 유예해 주기로 한 것은 삼성그룹과 같은 기업들의 현실적인 어려움을 반영한 것으로, 기업들이 이 유예기간을 활용해 지주사 전환에 적극 나설 가능성이 있다.

◇ 다른 지주사 후보군은

보험사 가운데 유일하게 지주회사 전환을 공식화한 메리츠화재는 이번 발표 내용과 크게 상관이 없다.

제조업 자회사는 물론 상호출자나 순환출자의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메리츠화재가 메리츠증권와 메리츠종금의 지분을 각각 27.0%, 5.5% 보유하고 있고 메리츠증권은 메리츠종금 지분 57.1%를 갖고 있다.

자본금 100억원 규모의 메리츠자산운용(가칭)도 메리츠화재의 100% 자회사로 곧 신설된다.

메리츠화재 관계자는 "일단 보험지주사 설립을 활성화한다는 방향은 환영할 만한 일"이라고 말했다.

보험지주사 전환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는 동부화재는 "장기적으로 지주사 체제로 갈 계획"이라며 "다만 당장은 전환이 어렵고 여건을 봐가며 구체적인 실행 계획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동부화재는 동부생명과 동부증권 지분을 31.29%, 14.99%씩 갖고 있으며 동부건설과 동부제철 등 제조업체의 지분도 각각 13.73%, 6.41% 보유하고 있다.

한화그룹 계열사인 대한생명은 한화손해보험의 지분을 약 60% 갖고 있으며 올해 중 한화투신운용의 지분을 100% 인수할 계획이다.

지분 관계는 없지만 한화증권도 그룹 계열사여서 대한생명을 중심으로 하는 보험지주사로 전환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한화는 대한생명 인수 적법성을 둘러싼 예금보험공사와의 분쟁도 최근 정리됐지만 대우조선해양 인수에 필요한 `실탄'을 확보하기 위해서 대한생명의 지분 매각과 상장에 우선 순위를 두고 있다.

흥국생명과 현대해상, LIG손해보험 등도 지주사 전환 후보군에 올라있다.

(서울연합뉴스) 정성호 기자 sisyph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