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에 협조한다고 야당 정체성 없어지지 않아"
"대북문제 야당이 나설 수도.."


이명박 대통령과 여야 원내대표단 및 정책위의장간 2일 청와대 만찬 회동은 진지한 분위기 속에서 1시간45분간 진행됐으며 중간중간 신경전이 연출됐다.

특히 민주당 원혜영 원내대표는 정 대표가 단독회담에서 야성(野性)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의식한 듯 종합부동산세 완화, 신공안정국 및 언론장악 논란 등에 대해 강하게 지적했다.

상춘재 앞마당에서 시작된 이날 회동은 이 대통령의 러시아 방문과 김영삼 전 대통령 부친 별세 소식을 소재로 가볍게 시작됐다.

청와대측이 국빈들을 초청하는 장소인 상춘재에서 만찬을 연데 대해 민주당 박병석 정책위의장이 "상춘재라고 하길래 잘못 들은줄 알았다"고 하자 이 대통령은 "특별히 고생하시는 분들이라 그렇게 모셨다"며 예우를 갖췄다.

그러자 박 의장은 "대통령께서 고생을 좀 덜하게 해달라"고 했고 이 대통령은 "혼자 하는 게 아니고 도와줘야지"라고 응수했다.

또 한나라당 홍준표 원내대표가 `강성'으로 꼽히는 민주당 서갑원 원내 수석부대표에 대해 "별명이 `서결렬'"이라고 소개하자 이 대통령은 "결렬하더라도 결과만 좋으면 됐지"라고 웃으며 답했다.

본론으로 들어가서는 이 대통령과 민주당간에 팽팽한 긴장감이 돌았다.

원 원내대표는 공개 발언에서부터 "국민에게 새로운 희망을 줄 수 있는 계기가 있기를 기대하는데 그럴러면 국정쇄신이 있어야 한다.

국정쇄신은 곧 인사쇄신"이라면서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어청수 경찰청장에 대한 인적청산을 주문했다.

또 "종부세 폐지 내지 완화는 일부 계층에게만 돌아가는 것이지만 민주당이 주장하는 부가세 30% 완화는 모든 국민에게 돌아가고 480만명의 영세사업자에 대해 감면혜택을 주는 것"이라며 대통령의 결단을 촉구했다.

발언 순서를 놓고 홍 원내대표가 "원래 우리부터 하는 게 순서 아닌가"라고 농반진반으로 운을 떼자 원 원내대표가 "정부 여당이 (사실상 하나의) 대표니까.

."라고 되받는 등 여야 원내대표간에 가벼운 설전이 오갔다.

선진과 창조의 모임 권선택 원내대표는 여.야.정 대책회의 및 식품안전대책에 대한 통합기구 구성을 제안했다.

이어 1시간20분 가량 진행된 비공개 만찬에서도 이 대통령과 민주당 지도부간에 신경전이 전개됐다.

원 원내대표가 기 소르망 청와대 국제자문단 고문의 최근 인터뷰 내용을 거론, "기 소르망도 `더 많은 시간을 국민과의 협상과 설득에 투입해야 하며 한국에서는 대통령이 너무 강해 국회가 소통의 장이 되기 어렵다'는 얘기를 했다"고 하자 이 대통령은 "한국 정치가 너무 격돌하고 있는데 야당 정치에 너무 휘둘리지 말고 국민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취지로 이해했다"고 `시각차'를 드러냈다.

원 원내대표가 7월말 여야 원구성 협상이 청와대의 거부로 결렬된 사례를 들어 "대통령이 국회를 존중했으면 좋겠다"며 유감을 표했다.

특히 `유모차 부대' 수사에 대해 그는 "21세기 대한민국 정부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지적하자 이 대통령은 "유모차에 아이들을 태우고 나오는 것은 절대 안된다.

이는 아동보호법 위반"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에 원 원내대표는 "유모차는 평화의 상징"이라며 맞섰다.

이 대통령은 종부세 완화와 민주당의 부가가치세 인하 추진, 인적쇄신 문제에 대해서는 특별한 언급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민주당과 시각차가 있는 대목에서는 "다 알고 있는데 그런 것을 논의하는 자리가 아니잖느냐"라고 선을 그었다는 것.
이에 원 원내대표도 "밥만 먹는 자리여서는 안되고 생산적 자리가 됐으면 좋겠다"고 맞섰다.

이 대통령은 "야당이 여당에 협조하면 정체성이 없어진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 같은데, 세상이 변했고 국민이 변했다"며 "여야 관계도 바뀌었으면 좋겠다.

국익을 위해 뭉칠 때에는 화끈하게 뭉쳐달라"고 상생을 거듭 주문한 뒤 "소통을 위해 이런 모임을 자주 할테니 국정이 잘 굴러가도록 도와달라"고 당부했다.

이어 "여당이 됐으면 책임지고 해야 하는 것"이라며 "야당이 모두 일대일로 하자고 하면 되겠느냐"고도 했다.

그러면서 "경제 문제가 어려운 것은 사실이지만 국가통치자가 어려운 것을 강조하고 자꾸 드러내면 국민이 불안해 하지 않겠느냐"며 "CEO를 해보니 CEO는 회사가 어렵고 기우뚱기우뚱 해도 당당한 모습을 유지해야 직원들이 불안해 하지 않더라. 국가 지도자로서 그러한 담담한 모습을 보이고 싶은데 안일한 태도라고 꼬집더라"고 심경을 토로했다.

이 대통령은 또 대북 문제와 관련, "여야가 국익을 위해 초당적으로 협력해야 한다"며 "대북 접촉에 있어서 야당이 용이하다고 한다면 야당이 나서기도 하고.."라고 협력을 요청했다.

홍 원내대표는 건배사에서 "정쟁하지 말자. 야당이 안하면 여당도 안하겠다"고 제안했다.

또 "정기국회에 행정부 수반으로서 여야 지도부를 초청한 것은 적절치 않지만 국가원수의 지위로서 초청한 것"이라며 "정책국감을 하자"고 했다.

만찬에서는 소폭 3∼4순배가 돌았으며 농담도 오갔다.

이 대통령은 원 원내대표에게 "내가 서울시장 될 때 잘 도와주시더니 정치인 된 다음 달라진 것 같다"고 농을 건넸다.

또 누군가 "더운데 옷벗어도 되느냐"고 하자 이 대통령은 "(여성인) 선진당 박선영 대변인한테 물어봐요"라고 했다.

선진당은 국군포로,납북자 대책을 촉구한 뒤 서해안 기름유출 사고에 따른 환경오염 문제를 "내년 봄 대통령 취임 1주년을 기념, 전국토 청소 프로젝트를 하자"고 했고 이 대통령도 "좋은 구상"이라고 답했다.

만찬의 평가를 놓고는 온도차를 드러냈다.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은 "대통령과 여야 의회 지도자들이 허심탄회하게 얘기하고 소통했다"고 했으나 민주당 조정식 원내 대변인은 "야당을 국정운영의 파트너로 존중하지 않았다는 아쉬움이 있다"고 지적했다.

(서울연합뉴스) 심인성 송수경 김범현 기자 hankson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