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상사중재위원회의 대한생명 매각 적법 판정으로 한화는 오랫동안 발목을 잡혀온 '대생(大生) 족쇄'에서 벗어나게 됐다. 대한생명 인수로 한화는 그룹외연을 확장하는데 성공했지만,예보와의 법적 갈등을 풀지 못해 그룹 경영에 적잖은 타격을 받아왔다.

한화는 중재위에서의 승소를 계기로 대한생명 상장에 착수하는 한편 대우조선 인수에 박차를 가하는 등 공격경영의 강도를 높여나간다는 방침이다.

반면 패소한 예금보험공사는 2년 가까이 소송을 끌면서 기업 경영을 오랫동안 압박해왔다는 지적을 면키 어렵게 됐다. 한화그룹은 예보의 중재신청으로 대한생명 경영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했고,수백억원대의 변호사 비용을 지불해야 했다며 구상권 청구를 시사하고 있다.

한화, 대외 신인도 회복 박차

예보와의 갈등으로 대한생명을 '반쪽 인수'하는데 그치면서 한화는 대외 신인도 추락은 물론 그룹 경영에 적지않은 제약을 받아왔다. 새로운 도약 의지를 다지며 연내로 예정된 대우조선해양 인수전에 뛰어들었지만 이번 재판에서 패소했다면 인수전 참여 자체가 무산될 공산이 컸다.
'大生 리스크' 벗은 한화…'공격경영' 재점화한다
그러나 이번 소송에서 승소함에 따라 한화그룹은 대생 상장을 본격 추진할 수 있게 됐고 상장을 통해 충분한 자금을 확보,공격 경영의 고삐를 죌 수 있게 됐다.

장일형 한화그룹 경영기획실 부사장은 "대한생명 상장 등을 통해 대우조선 인수를 위한 '실탄'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증권업계에서는 대한생명의 상장가치를 6조8000억원으로 예상,한화측이 보유 지분을 20~30% 매각할 경우 1조3000억~2조원 수준의 자금을 조달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설령 상장이 늦춰지더라도 교환사채(EB) 등 발행을 통해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지적이다.

"예보 소송이 기업경영 발목" 비판도

예금보험공사는 무리한 소송으로 기업경영의 발목을 잡고 예산을 낭비했다는 비난을 면할 수 없게 됐다. 한화그룹은 대생 인수를 위해 컨소시엄을 구성했던 호주 맥쿼리생명으로부터 대생 지분 3.5%를 565억원(주당 2275원)에 재매입,이면거래 의혹을 받았고 2005년에는 검찰로부터 조사를 받은 데 이어 기소까지 됐다.

그러나 2005년 7월과 11월 1,2심 재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데 이어 예보의 소송 직전인 2006년 6월 대법원 판결에서 역시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런 상황에서 예보가 국제상사중재위원회에까지 중재 소송을 제기한 것은 향후 대생 매각과 관련한 책임회피용이라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예보는 이날 국제상사중재위 결정에 대해 "아쉽지만 수긍하겠다"고 밝혔다. 콜옵션 이행 역시 받아들일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는 분위기다.

예보는 오히려 이번 결정으로 상사분쟁 신청 자체가 무리한 판단이었다는 비판과 함께 자칫 책임문제가 제기될 가능성에 긴장하고 있다. 이종구 한나라당 의원은 이날 "예보가 매각 당시부터 잘 판단했어야 했다"며 "국회에서 책임소재를 따질 것"이라며 예보를 겨냥했다.

금융권에서도 콜옵션 행사에 따른 한화측 이익만 최대 1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는 상황에서 예보가 애초의 협상 부실을 뒤늦은 중재신청으로 면피하려 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손성태/이심기 기자 mrhan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