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고 일부승소.."군은 출입통제에 주의해야"

북한 초병에 의한 금강산 관광객의 총격 피살 사건으로 나라 전체가 충격에 빠진 가운데 "민간인이 간첩으로 오인돼 총을 맞을 수 있는 지역이라면 군이 출입통제를 위해 고도의 주의를 기울였어야 한다"는 취지의 국내 판결이 있어 주목을 끈다.

15일 대법원에 따르면 지난 1997년 7월2일 오후 9시40분께 육군 소속 신모 중사 등 5명은 매복진지로 이동하던 중 부산 기장읍 죽성리 신앙촌 앞 해안가에서 민간인 민모씨를 발견하고 간첩으로 오인해 총을 쏴 민씨가 그 자리에서 숨졌다.

대법원이 소개한 당시 사연은 이러했다.

민씨는 일행들과 함께 배를 빌려 낚시를 하다가 파도가 높아지자 신앙촌 앞 해안에 배를 접안시킨 뒤 근처 바위에서 낚시를 계속 했는데 사고가 발생할 때까지 군인들로부터 어떤 제지도 받지 않았다.

3시간 동안 낚시를 하고나서 박모씨 등 4명이 먼저 배에 올라탄 뒤 민씨 등 2명에게 "그만 돌아가자"고 소리를 지르며 손전등을 비췄는데 마침 이를 본 군인들이 암구호를 외쳤지만 대답이 없자 1차례 위협사격 후 10여발의 실탄을 발사해 민씨가 3∼4발의 총탄을 맞았던 것이다.

해당 지역은 과거 3차례에 걸쳐 간첩이 침투했고, 1차례의 조선족 밀입국 사건이 발생했던 곳이며, 부근에는 `군사보호구역이므로 민간인의 출입을 금함'이라는 표지판과 `낚시금지' 표지판이 설치돼 있었다.

하지만 불의의 사고로 남편과 아버지를 잃은 민씨의 아내와 두 자녀는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고 1ㆍ2심 재판부는 국가의 책임을 60%로 판단해 유족에게 1억500여만원을 지급하라고 원고일부 승소 판결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민간인이 혹시 잘못해 간첩으로 오인돼 사살될 수 있는 극단적인 위험지역이라면 군은 그에 상응하는 고도의 경고성 내용을 담은 위험표지판을 설치하거나 그 밖의 홍보방법을 동원하든지 또는 철조망을 설치해 물리적으로 출입을 막는 등 만전을 기하여야 할 주의 의무가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낚시금지'와 같은 위험표지만으로는 주의 의무를 다했다고 볼 수 없는데다 초병들이 `손들어, 움직이면 쏜다'고 했다지만 민씨에게 확실히 들릴 정도는 아니었던 것으로 보이는 점과 위협사격과 조준사격 사이의 시간적 간격 등을 고려했을 때 군인들의 대처에 있어서도 주의 의무를 다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다만 민씨를 비롯한 일행들이 기장읍에서 살고, 낚시가게 주인도 포함돼 있는 점 등에 비춰 사고지역이 낚시 금지구역이고 군작전 지역으로 민간인의 출입이 통제돼 있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고 보고 사망자 본인 과실을 40%로 정했다.

이에 국가는 1.2심 재판이 부당하다고 보고 상고했으나 대법원은 2000년 12월12일 "원심판단은 정당하다"며 기각했다.

(서울연합뉴스) 성혜미 기자 noano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