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2년 5월 서울 경복궁에서 열린 국제산업박람회장.광신화학공업(1967년 모나미로 상호 변경) 상무였던 송삼석씨(모나미 창업주.회장.80)는 거래처인 일본 문구류 무역업체 우치다 요코사의 직원이 하얀색 몸통의 필기구로 보고서를 쓰는 것을 눈여겨보고 있었다.

송 회장은 "필기구라면 펜이나 붓밖에 모르던 시절에 그런 물건은 처음 봤다"며 "더 신기한 것은 국제산업박람회에 출품되지 않을 만큼 일본에서는 이미 대단한 제품이 아니라는 것이었다"고 회고했다.

누구나 한 개씩 갖고 있을 볼펜의 대명사이자 45년간 약 33억개가 만들어졌고,이를 일렬로 줄을 세우면 지구둘레 열 바퀴를 넘는 모나미 153볼펜의 역사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국내 첫 볼펜 '내 친구(MonAmi)153 '내놔

송 회장은 우치다 요코사 직원으로부터 얻은 볼펜 한 자루를 직원들과 뜯어봤다.

그는 볼펜이 플라스틱 관에 들어 있는 잉크를 흘러나오게 하는 단순한 구조임을 알아냈다.

플라스틱 관에 농축 잉크를 채워 넣는 기술과 잉크를 조금씩 흘러나오게 하는 팁(볼펜 끝에 볼이 달려 있는 부분) 제작 기술만 확보하면 볼펜을 만들 수 있다고 판단했다.



송 회장은 우치다 요코사 직원이 가져온 카시오 전자계산기 10대를 팔아주고 일본의 볼펜 제조사인 오토볼펜을 소개받았다.

오토볼펜은 자신들의 팁을 사다 쓰는 조건으로 농축 잉크 기술만 가르쳐줬다.

할 수 없이 농축 잉크는 자체적으로 개발,1963년 5월 자체 기술로 만든 볼펜 '모나미 153'을 출시했다.

모나미라는 이름은 '내 친구'라는 뜻을 가진 프랑스어.송 회장은 "이름을 어찌 지을까 직원회의에서 고민하던 중 프랑스어에 관심이 많은 한 직원이 제안한 이름"이라며 "브랜드에 크게 관심이 없던 시절이라 어감이 좋아서 사용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송 회장은 그냥 모나미 볼펜이라고 하기에는 아쉬워 색다른 이름을 찾던 중 한 직원이 153을 제안했다.

송 회장은 "그 직원이 153을 더하면 가보(노름판에서 화투 끗수를 합쳐 9가 되는 것을 일컬음)라는 대답을 하는 거야"라며 "어이가 없어 웃고 넘어가려 했는데 153이라는 숫자를 어디서 본 듯한 생각이 나서 성경을 펴보니 요한복음에 베드로가 물고기를 153마리 잡았다는 대목이 써 있더라"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이처럼 많은 성과를 기대하는 의미가 담긴 모나미 153이었지만 시작은 순탄치 않았다.

1964년 볼펜 국산화를 목표로 스위스에서 팁 생산장비를 들여와 가동하던 중 불이 나 공장이 모두 잿더미가 됐다.

사고를 겨우 수습한 다음에는 사람들의 편견과 펜촉 및 잉크를 만드는 회사들의 악선전에 시달렸다.

송 회장은 "누구나 한번쯤 들어봤겠지만 '볼펜으로 글씨 쓰면 악필이 된다'는 이야기가 당연하게 여겨졌다"고 말했다.

이를 없애기 위해 은행이나 관공서에 공짜로 볼펜을 나눠주며 써보라고 권유하기도 했다.

송 회장은 "펜을 쓰는 직원들의 펜을 빼앗아 싸움이 난 적도 있다"고 말했다.

이런 노력 끝에 모나미는 153 볼펜으로 1968년 국내 문구류 중에서 최초로 KS마크를 획득하고 1970년대에는 왕자파스,1980년대에는 지금도 많이 쓰이는 플러스펜 등을 잇달아 내놓으며 국내 문구제조업의 최강자로 자리잡았다.

특히 모나미 153의 인기에 힘입어 광신화학은 1967년 볼펜 이름인 모나미로 사명을 변경하는 시대를 앞선 브랜드 전략을 펼쳤다.

이때 송 회장은 동업을 청산하고 초대 모나미 대표로 취임했다.

◆CI 교체하고 변신하는 모나미

송하경 대표는 대학 졸업 후 평사원으로 1986년 모나미에 입사했다.

3형제 중 맏아들이다.

송 대표는 "회장님은 제게 사업을 맡으라고 한마디도 하신 적이 없다"며 "다른 누구도 강요한 적이 없지만 어렸을 때부터 당연히 사업을 이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술회했다.

그는 "사업에 필요할 것이라 판단해 대학에서 통계학을 전공으로 택할 정도로 다른 일은 생각해 본 적도 없다"고 밝혔다.

송 대표는 과장,차장을 거쳐 이사로 경영 수업을 받던 중 발생한 노사분규를 해결하면서 부친의 신임을 얻었다.

송 대표는 "무려 1년간 공장에서 먹고 자며 조합원들을 설득했다"고 말했다.

회사는 최근 CI(이미지 통합)를 교체하고 신사옥에 입주하는 등 외형상으로도 혁신을 꾀하고 있다.

송 대표는 "45년을 이어온 내 친구(MonAmi)가 100년 친구가 될 수 있도록 계속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임기훈 기자 shagg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