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차기 유엔 사무총장이 14일(현지시각) 취임선서를 함으로써 '세계 최고외교관'이 되기 위한 10개월 간의 대장정을 모두 마무리하고 한국인 사무총장 시대를 열었다.

취임선서는 회원국들을 상대로 한 취임 전 마지막 공식행사. 그러나 이날 이임식을 가진 코피 아난 시대를 마무리하고 반기문 사무총장 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첫 행사였다는 점에서 한국인 사무총장 시대가 사실상 시작됐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한국인 사무총장 시대의 개막은 북한과 함께 유엔에 가입한 지 불과 15년 만에 한국 외교가 이뤄낸 쾌거이다.

또한 해방 이후 전쟁과 가난, 남북갈등의 역사 속에서 국제외교의 변방으로 밀려날 수 밖에 없었던 과거를 뒤로 하고 유엔이라는 국제무대에서 한국의 부상을 알리는 것이기도 하다.

반 차기총장이 후보와 당선자로 보낸 지난 10개월은 유엔의 수혜국에서 주도국가로 성장한 한국의 위상을 확인한 시간이었다.

반 차기총장은 지난 2월 14일 후보 출마 공식 발표를 전후해 현직 외무장관이란 장점을 최대로 살려 아프리카를 8번이나 방문할 정도로 부지런히 유엔 회원국들을 찾아다녔으며 이런 노력은 지난 7월24일에 열린 1차 예비투표 1위로 이어졌다.

9월14일과 28일에 실시된 2차와 3차 예비투표에서 각각 찬성 14표와 찬성 13표라는 압도적인 지지를 받은 그는 10월2일 4차 예비투표에서도 반대 없이 찬성 14표를 획득, 초선 사무총장으로는 드물게 상임이사국 반대 없이 사무총장의 꿈을 실현시켰다.

반 차기총장은 지난 10개월 간 분단국 출신은 유엔의 사무총장이 될 수 없다는 통념을 깨뜨리며 한국 외교사에 새로운 역사를 썼지만 그에게 있어 취임선서는 한국의 외교관이 아닌 세계 최고 외교관으로 새로운 도전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기도 하다.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한 채 비극이 이어지고 있는 있는 다르푸르사태를 비롯한 세계 각지의 분쟁과 빈곤, 선진국과 개도국 간 갈등으로 좌초위기에 놓은 유엔 개혁 논의 등은 그의 앞길이 순탄치만은 않을 것임을 예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록 6자회담이 재개되면서 해결에 대한 기대감이 살아나고는 있지만 북한 핵 문제와 인권문제는 한국인인 반 차기총장이 피할 수 없는 무거운 짐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반 차기총장에 대한 국제사회의 기대는 그 어느 때보다 크다.

선출과정에서 나타난 압도적 지지는 반 차기총장의 능력에 대한 평가로 볼 수 있다.

여기에 세계 유일의 분단국 외교장관 출신이란 반 차기총장의 경력이 이해와 갈등의 조정자이자 유엔 행정의 최고책임자라는 사무총장 직을 수행하는데 큰 자양분이 될 것이란 기대도 있다.

반 차기총장도 지난 한달간 인수인계작업을 통해 그가 결코 우유부단하고 무기력한 사무총장이 되지 않을 것임을 행동으로 보여줬다.

비효율적이란 사무국 개혁을 위해 5분 단위로 시간을 쪼개 쓰는 근면함과 활동력을 몸소 보여줬으며 만찬장에서 직접 개사한 캐럴을 부르는 파격을 통해 개혁에 대한 그의 치밀한 의지를 전달, 이전과는 다른 유엔의 모습을 예고했다.

연말 서울을 찾을 예정인 반 차기총장은 내년 첫 출근에 앞서 이뤄질 사무부총장, 비서실장 등의 인선과 내년 2월 말로 끝나는 사무차장에 대한 인사를 통해 진용을 갖춘 뒤 산적한 현안 해결을 위한 본격적인 행보에 나설 예정이다.

(유엔본부연합뉴스) 김계환 특파원 kp@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