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은값이 단 하루만에 14%나 떨어진 것을 비롯 금 백금 구리 등 최근 초강세를 보이던 원자재 가격이 일제히 하락했다.

은값은 하루 기준으로는 1983년 이후 23년만에 최대폭으로 떨어졌다.

하늘 모르고 치솟던 원자재 값이 천장을 친게 아니냐는 성급한 전망도 나오고 있다.

국제 은값(5월물 기준)은 20일 뉴욕상업거래소에서 온스당 1.997달러 떨어진 12.525달러로 마감됐다.

낙폭이 너무 커지면서 15분간 거래가 중단되기도 했다.

은값은 21일에도 장중 한때 11.60달러까지 밀렸다.

딜러들은 "은값이 심리적 저항선으로 여겨지던 15달러를 돌파하는 데 실패하자 투기 세력들이 대거 실망 매물을 쏟아냈다"고 전했다.

은값이 폭락하면서 다른 금속에 대한 투자 심리도 싸늘하게 식었다.

금값(6월물 기준)은 20일 2% 떨어진 데 이어 21일에도 약세를 보이며 한때 온스당 613.20달러까지 내렸다.

팔라듐이 6.4%,백금이 2% 가까이 떨어졌고 구리도 t당 200달러 넘게 급락했다.

중국이 과열된 경기를 완화할 것이라고 밝힌 데다 미국의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우려가 약화된 점도 금속 가격 하락을 부추겼다.

전문가들은 원자재 가격이 최근 사상 최고치 행진을 거듭하던 중이어서 충격이 더 컸다고 지적했다.

갑작스런 급락세로 인해 원자재 시장이 변곡점에 도달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그동안 낙관론에 가려져 있던 신중론에 조금씩 무게가 실리고 있는 셈이다.

외국계 은행의 한 딜러는 "그간 투기 세력들이 파티를 즐겼으나 파티장의 문이 닫히고 있다"고 말했다.

이진우 농협선물 금융공학실장도 "최근 원자재 시장에서 차익 실현 조짐이 뚜렷하다"며 "원자재 시장이 변곡점을 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은값이 1년 전보다 무려 두 배나 오르며 23년 만의 최고가를 기록한 데다 금값도 최근 25년 만에 최고가를 찍으면서 '일단 팔고 보자'는 심리가 강해졌다는 것이다.

매쿼리 은행의 마이클 위드머 애널리스트는 "은값이 최근 금값보다 더 많이 올랐기 때문에 은이 금보다 더 크게 떨어졌다"며 "투기성 자본 유입으로 은값이 고공 행진을 거듭했는데 최근 이들의 매수세가 빠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원자재 시장의 거품이 꺼지면서 추세가 전환될 것으로 보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분석이 여전히 많다.

외국계 은행 딜러는 "원자재 값이 최근 워낙 강세였기 때문에 낙폭이 커졌을 뿐 전반적인 상승세가 꺾였다고 단정하기에는 이르다"고 말했다.

그는 "달러화 약세가 추세적으로 계속되면서 실물 자산에 대한 선호가 늘어 원자재 가격이 강세를 이어갈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그랜디치 레터'의 피터 그랜디치 편집장도 "금값이 최근 수직 상승에 대한 부담으로 당분간 온스당 580~600달러까지 하락할 수 있다"면서도 "장기적으로 금 시장 자체가 위축될 가능성은 낮다"고 말했다.

다만 은의 경우 다른 귀금속에 비해 상대적으로 워낙 많이 오른 만큼 조정이 길어질 가능성도 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원자재 시장이 냉각될 경우 주식 시장 등 금융 시장도 충격을 받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미국 일본 한국 등 전세계 주요 증시가 최근 웬만한 원자재 못지 않게 급등한만큼 원자재 시장이 하락세로 돌아서면 이들 증시에서도 가격 조정 논리가 부각될 수 있다는 점에서다.

금융정보 제공업체인 와이즈인포넷은 "그동안 지속돼 온 상품 랠리가 막을 내릴 경우 이는 금융 시장의 유동성 랠리에도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또 미국 유럽연합(EU) 일본 등 선진국이 시장의 예상대로 잇따라 금리 인상에 나설 경우 국제 투자자금의 유동성을 위축시켜 주식 시장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주용석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