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서울 역삼동 르네상스호텔에서 열린 한국CRC(기업구조조정전문회사)협회 회원사 조찬 모임.검찰이 현대차 비자금 수사와 관련,5개 CRC에 대해 압수수색을 벌인 다음 날이었다.

모임에 참석한 CRC 업체 실무자들은 "이번에도 또…"라며 수사의 불길이 CRC 업계로 번지는 것을 염려했다.

아니나 다를까 지난 14일에는 또 다른 CRC가 현대차 계열사의 채무탕감 의혹에 연루된 사실이 튀어나왔다.

이에 CRC 업체들은 검찰의 수사가 외환위기 이후 CRC가 개입했던 기업구조조정 전반으로 확대될 가능성을 걱정하며 잔뜩 위축되는 모습이다.

◆ 화려한 출발과 잇단 '대박'

CRC는 채권단으로부터 부실기업을 싸게 매입한 후 경영을 정상화해 재매각하는 것을 주업무로 한다.

국내에는 1999년 처음 도입됐다.

외환위기 과정에서 부실기업이 쏟아지자 이들에 대한 구조조정을 신속히 추진하기 위해 정부가 산업발전법에 근거를 마련한 것이다.

도입 첫해인 1999년 말 16개이던 CRC는 우후죽순처럼 늘어나 2002년 10월 말에는 103개에 달했다.

이 과정에서 일부 CRC들은 단기간에 대박을 터뜨렸다.

팬택앤큐리텔의 경우 KTB네트워크가 2001년 12월 500억원을 투자해 인수한 뒤 2002년 9월 증권거래소에 상장,322%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본계정 기준으로는 182억원을 출자해 586억원을 회수,404억원의 차익을 벌어들였다.

2002년 8월 롯데컨소시엄에 참여해 547억원 규모의 미도파(현 롯데미도파) 주식을 인수한 한국기술투자는 다음 달인 9월 말 미도파의 재상장과 함께 보유 지분을 매각,1320억원을 회수했다.

한 달 새 141%의 수익률을 거둔 셈이다.

이 같은 사례들은 해당 CRC에 큰 수익을 갖다 준 것은 물론이고 국가경제 차원에서도 부실기업의 신속한 정상화라는 순기능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

말 그대로 '구조조정의 첨병' 역할을 한 셈이다.

잇따른 비리 연루

한창 잘 나가던 CRC 업계는 2001년 불거진 '이용호 게이트'로 하향길을 걷게 된다.

그 이전부터 간간이 발생했던 CRC 업체들의 주가조작 등 불법 사례를 주목해온 정부는 이 사건을 계기로 2002년 10월 CRC의 자본금 기준을 30억원에서 70억원으로 높이는 등 등록심사 기준을 강화했다.

그러나 이후에도 CRC들의 불법 행위는 심심할 때마다 한 번씩 터져나와 '게이트의 온상'이라는 오명을 자초했다.

2003년 8월 검찰에 적발된 세우포리머 주가조작 사건에는 구조조정전문회사인 디바이너가 연루됐다.

이 회사 대표 황모씨가 작전 세력과 함께 2002년 2월부터 같은 해 10월까지 차명 증권계좌 109개를 이용,세우포리머 주가를 끌어올린 후 차익을 챙겼다가 꼬리를 잡힌 것.

2004년 2월에는 크레디온CRC 대표 신모씨가 대영포장 주가조작 사건으로 적발됐다.

신씨 등은 대영포장으로터 20억원을 받고 350억원대의 유상증자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이 회사 주가를 조작, 20일 만에 35억여원의 시세 차익을 올린 혐의였다.

일감이 없는 것이 가장 큰 문제


한때 103개에 달했던 CRC업체는 현재 46개로 줄어들었다.

그나마도 순수 CRC 업무만 하고 있는 기업은 가디언파트너스 골든브릿지기술투자 등 23개사뿐이다.

나머지 절반은 KTB네트워크나 네오플럭스처럼 신기술사업자 또는 창업투자회사로 주업무를 보고 있으며 CRC 업무는 겸업으로 하고 있다.

이처럼 CRC 업계가 쪼그라든 것은 '일감 부족'이 가장 큰 요인이다.

외환위기 때 쏟아졌던 부실기업 정리가 마무리돼 가면서 구조조정대상 기업이 줄어든 것이다.

따지고 보면 CRC 업체들이 잇따라 불법행위에 연루되는 데에는 이 같은 시장 상황도 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KTB네트워크 관계자는 "영세한 CRC들의 경우 불건전한 역할을 요구하는 전주들의 유혹을 뿌리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임상택 기자 lim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