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칙적인 상속, 증여, 주식 매집 등을 통한 재벌들의 경영권 편법 승계나 그룹 지배권 강화 행위를 처벌하려는 검찰 수사가 수년째 이어지고 있다. 비자금 사건을 지류(支流)로 취급했던 검찰은 최근 현대차그룹 계열사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한 재무자료를 분석해 정몽구 회장의 아들인 정의선 기아차 사장을 전격 출금 조치하는 등 편법세습 의혹을 정조준하고 있다. 재벌 2세가 경영권 편법승계와 경영권 강화 등의 문제로 검찰 수사망에 걸려든 것은 2003년 2월 최태원 SK㈜ 회장이 처음이고 이후 삼성가의 이재용(삼성전자 상무)씨에 이어 현대차그룹의 정의선 기아차 사장이 3번째이다. 재벌그룹의 경영권 편법승계에는 주식을 싸게 구입해 비싸게 되팔아 차익을 챙기고 비상장사와 상장사 간의 주식을 맞바꾸거나 차명으로 주식을 매집하는 등 온갖 방법이 동원되고 있다. ◇SK㈜ 비상장ㆍ상장사 주식 맞교환 최태원 회장은 2002년 4월 독점거래법상 출자총액 제한제도가 실시되면서 SK그룹 지배권을 잃을 것을 우려한 나머지 비상장사와 상장사 주식을 맞바꾸는 식으로 그룹 지배권 강화를 시도했다. 거래가 되지 않는 비상장주식인 워커힐호텔 주식 1주와 상장주식인 SK㈜ 2주를 맞교환해 716억원의 차익을 얻었다. 당시 워커힐호텔 주식을 자산기준으로 높게 평가하고 SK㈜ 주식은 시가를 기준으로 평가하는 방식이 동원됐다. 최 회장은 또 워커힐 주식 60만주를 고가에 SK글로벌에 떠넘기는 방식으로 차익을 얻어 워커힐 주식과 SK C&C 주식을 맞바꾸면서 발생한 양도소득세 220여억원을 충당했다. 최 회장은 검찰 수사로 법정에 서면서 "주식 맞교환은 경영권 방어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의 결과였다"며 무죄를 주장했으나 법원은 검찰의 손을 들어줬다. 최 회장은 1심에서 징역 3년, 항소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 법원의 유죄 선고는 비상장 주식의 가치평가 방식에 대한 뚜렷한 제도적 장치가 없는 점을 악용해 주식 맞교환 방식으로 막대한 부(富)를 키워온 재벌그룹의 관행에 쐐기를 박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삼성 전환사채(CB) 발행 삼성은 정점인 에버랜드가 삼성생명 지분 19.34%, 삼성생명이 삼성전자 지분 7.23%, 삼성전자가 삼성카드 지분 46.85%, 삼성카드가 에버랜드 지분 25.64%를 갖고 있는 순환출자 구조로 이뤄져 있다. 이재용 상무 등 이건희 회장의 네 자녀가 에버랜드를 장악하고 있는 게 눈에 띄는 대목이다. 에버랜드는 순환출자 구조상 지주회사 한 곳의 대주주로 올라서면 경영권을 승계할 수 있다는 점을 악용해 1996년 10월 100억원대의 CB 125만여주를 발행했다. 하지만 관련 기업들은 주식의 수익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인수를 거절했고 이건희 회장도 자신에게 배당된 13억원의 CB 인수를 포기했다. 에버랜드는 인수 포기가 이어지자 청약일이 채 지나기도 전에 이사회를 열어 실권된 CB를 이재용씨에게 배정해 후계자로 등극할 수 있도록 발판을 마련해 줬고 나중에 검찰은 이를 문제삼았다. 삼성측은 경영진이 경영권 승계에 개입할 여지가 없다며 검찰 논리를 반박했지만 1심 법원은 "적은 자금으로 에버랜드 지배권을 이전하기 위해 에버랜드 창사 이래 한 번도 이용한 적이 없는 CB를 발행했다"며 검찰 손을 들어줬다. 이재용씨 남매에게 저가로 CB를 발행해 회사에 손해를 끼친 혐의로 기소된 에버랜드 허태학 전 사장에게는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박노빈 사장은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이 선고됐다. 삼성이 재판부 판결에 불복해 항소함에 따라 비상장 주식의 가치 산정 문제와 사주 일가의 공모 정황을 둘러싼 검찰과 삼성 간의 법리 논쟁은 한동안 계속될 전망이다. ◇현대차 `종합세트' 현대차 그룹은 경영권 편법승계를 위해 주식 맞교환과 기업 매각ㆍ재인수 등 다양한 방법을 동원한 것으로 검찰은 의심하고 있다. 가장 먼저 드러난 것은 주식 맞교환 방식. 현대차 그룹은 올해 2월 현대오토넷이 본텍을 인수할 당시 본텍의 주식 가치를 주당 정상가인 9만5천원보다 2배나 많은 23만3천여원으로 평가해 자사 주식을 글로비스에 넘겨줬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정 사장에게 현대오토넷 주식을 상당량 넘겨줌으로써 정 사장이 지주회사의 대주주로 등극할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해준 셈이다. 또 공적자금이 투입된 기아차의 옛 계열사 등을 매각했다 헐값에 다시 사들이는 방법으로 비자금을 조성해 정 사장의 경영권 승계에 필요한 주식매집 비용을 충당했을 것으로 검찰은 추정하고 있다. 이외에 계열사 임원들이 그룹 지배사의 주식을 차명으로 매집하는 등 그룹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정 사장의 경영권 승계 과정을 지원했다는 의혹도 불거지고 있다. 회사에 손해를 끼친 혐의가 입증된다면 현대차 계열사 임원들은 특경가법상 배임, 공정거래법상 부당내부거래 등의 혐의로 형사처벌이 불가피하다는 것이 법조계 판단이다. SK㈜의 주식 맞교환, 삼성 에버랜드의 CB 발행에 이어 현대차그룹 경영권 편법승계 의혹을 규명하려는 검찰의 칼과 경영권 승계에 차질을 우려하는 현대차그룹의 방패가 부딪히는 상황이 또다시 재연될 전망이어서 최종 승패가 주목된다. (서울=연합뉴스) 심규석 기자 k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