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남자 쇼트트랙 대표팀이 '92알베르빌대회이후 무려 14년 만에 5,000m 계주에서 빛나는 금메달을 따내면서 토리노동계올림픽 쇼트트랙 '금메달 잔치'에 마침표를 찍었다. 남자 쇼트트랙 대표팀은 26일 오전(한국시간) 토리노 시내 팔라벨라빙상경기장에서 펼쳐진 5,000m 계주에서 안현수(21.한국체대), 이호석(20.경희대), 송석우(23.전북도청), 서호진(23.경희대) 등 4명이 역주를 펼쳐 한국의 여섯 번째 금메달 주인공이 됐다. 또 비록 오세종(24.동두천시청)은 이날 계주 엔트리에서 제외됐지만 예선 참가에 따라 동료와 함께 금메달을 따게 됐다. ◇안현수 지난 13일 1,500m에서 첫 금메달을 선사했던 안현수는 19일 1,000m에서 2관왕에 성공한 뒤 계주 금메달을 보태 3관왕의 영예를 차지했다. 아버지 안기원씨와 어머니 전미정씨의 3남1녀중 장남으로 지난 1985년 서울에서 태어난 안현수는 초등학교때 스케이트를 통해 숨어있는 재능을 발견하고 어린 나이에 선수생활을 시작했다. 172㎝ 63㎏ 작은 체구에 노란색으로 머리카락을 염색한 신세대. 곱상한 얼굴 뒤에 숨어있는 독기로 힘든 쇼트트랙 지상훈련을 참아내며 마침내 올림픽 3관왕의 영광를 차지했다. 11살때 전국 대회를 석권하면서 '가능성'을 보였고, 명지중 시절에는 동계체전 3연속 금메달을 따내면서 무서운 '기대주'로 성장했다. 신목고에 진학해 2002년 1월 세계주니어쇼트트랙선숙권에서 남자부 종합 1위를 차지하면서 올림픽 금메달에 대한 기대감을 무르익게 했다. 마침내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에 나선 안현수는 남자 1,000m 결승 에서 어이없는 충돌사고로 금빛사냥에 실패하면서 좌절을 맛봤다. 하지만 토리노 동계올림픽에 초점을 맞추고 선수촌 입촌거부와 파벌 훈련 등 난관을 뚫고 마침내 3관왕의 영예를 안았다. ◇이호석 처음 출전한 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 1개와 은메달 2개 등 총 3개의 메달을 거둬들인 이호석은 안현수와 함께 무려 7개의 메달사냥에 성공하면서 한국의 톱10 재진입에 혁혁한 공로를 세웠다. 지난 1986년 6월 25일 서울에서 아버지 이유빈(51)씨와 어머니 한명심(46)씨의 2남1녀중 장남. 홍익초등학교와 신목중, 신목고를 거쳐 경희대 1학년에 재학 중이다. 167㎏ 60㎏을 겨우 넘는 야윈 몸집이지만 링크에 들어서면 강한 몸싸움에도 밀리지 않는 탱크같은 우직함이 눈에 띈다. 특히 아웃코스에서 인코스로 치고 드는 날렵한 몸놀림이 일품이라는 평가도 받 고 있는 이호석은 안현수와 지난해부터 태릉선수촌에서 룸메이트를 했던 절친한 선후배 사이다. 신목고 1학년 때였던 2002년 9월 제19회 전국남녀 쇼트트랙선수권대회에서 3,000m 1위를 차지하고, 이듬해 1월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열렸던 200 3 세계주니어쇼트트랙선수권대회에서 개인종합 1위를 차지하면서 두각을 나타냈다. 이후 지난 2004년과 2005 세계주니어쇼트트랙 선수권대회에서도 연속우승을 차지하며 개인통산 3회 연속 종합 1위에 오르는 쾌거를 달성하면서 안현수와 함께 국내 남자 쇼트트랙의 '양대산맥'으로 성장했다. 자신의 첫 올림픽 무대인 토리노에서도 이호석은 은메달 2개를 연속으로 따낸 뒤 계주에서 자신의 생애 첫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걸면서 '생애 최고의 날'을 맞이했다 ◇서호진 지난 23일 펼쳐진 남자 500m 예선에서 안타깝게 실격, 올림픽 금메달 사냥을 마감하는 듯 했던 서호진이 마침내 사흘 만에 남자 계주 5,000m에서 한국의 금메달 획득에 일조하면서 생애 첫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특히 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던 서호진은 이번 금메달로 병역혜택을 받게 돼 문화관광부 소속 공익요원으로 병역을 대신하게 됐다. 지난 1983년 '빙상의 메카' 대구에서 아버지 서만석씨와 어머니 최경순씨의 1남1녀중 둘째로 태어났다. 대구교대 부속초등학교에서 스케이트와 처음 인연을 맺은 뒤 서울로 이사해 양천구 신목중와 경기고를 거쳐 경희대 졸업반이다. 중학교 시절 500m와 3,000m에서 두각을 나타냈던 서호진은 지난 1999년 신목고 1학년때 제16회 전국남녀 쇼트트랙선수권에서 500m 및 1,000m에서 대회 신기록으로 2관왕에 오르면서 대표팀 발탁의 꿈을 키웠다. 지난 2000년 제5차 쇼트트랙월드컵 5,000m 계주에서 첫 국제 대회 1위의 기쁨을 맛봤던 서호진은 2002년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세계 주니어 쇼트트랙선수권에서 개인 종합 2위를 차지하면서 두각을 나타냈다. 2003년 이탈리아 타르비시오 동계유니버시아드 5,000m 계주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뒤 이듬해 2004 쇼트트랙 세계팀선수권에서도 종합 1위를 맛보면서 세계 대회에 대한 자신감을 갖게 됐다. 지난해 2005년 동계유니버시아드 계주에서도 또 한번의 '금맛'을 보면서 올림픽 금메달의 가능성을 타진한 서호진은 마침내 꿈을 현실로 바꿨다. ◇송석우 남자 쇼트트랙 대표팀중 가장 스타트가 좋다. 토리노 금메달은 자신의 생애 첫 올림픽 금메달. 예선에서 빠졌던 송석우는 이날 자신의 특기인 빠른 주력을 앞세워 한국이 스타트 싸움에서 2위를 차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다했다. 지난 1983년 서울에서 아버지 송창영씨와 어머니 이화영씨 사이네 1남1녀중 막내로 태어났다. 언주초등학교와 도곡중을 거쳐 '빙상명문' 광문고를 졸업한 뒤 단국대학교를 마치고 현재 전북도청에 소속돼 있다. 173㎞의 키에 67㎏의 탄탄한 체격을 가진 송석우의 가장 큰 장기는 빠른 스타트 능력을 앞세운 500m다. 하지만 동계올림픽 500m에는 출전하지 못해 마음고생을 했지만 다행히 계주 금메달로 자신의 첫 올림픽 금메달의 꿈을 이뤘다. 중학교 시절부터 500m 종목을 휩쓸었던 송석우는 2000년 첫 태극마크를 달면서 올림픽 메달에 대한 착실한 준비를 해왔다. 2000년 전국남녀 학생종별대회에서는 500m를 시작으로 3종목을 모두 휩쓸면서 종합 1위의 기쁨도 맛봤다. 송석우는 2003년 아오모리동계아시안게임에서 3,000m와 계주에서 2관왕에 오르면서 자신의 역대 최고 성적을 거뒀다. 당시 금메달로 병역혜택을 받아 문화관광부 소속 공익요원으로 복무중이다. 지난 2003년말 쇼트트랙 월드컵 3차 대회에서 종합 1위에 오르면서 전성기를 맞은 송석우는 4차 대회에서도 종합 2위를 차지해 올림픽 금메달의 가능성을 열었다. 비록 주종목 500m에 출전하지 못해 첫 메달의 시기를 늦췄지만 송석우는 계주에서 눈부신 활주로 한국의 금메달에 도움을 줬다. ◇오세종 지난 1999년 2월 태극마크를 처음 단 뒤 계주에서 강점을 보여온 남자 대표팀의 '맏형' 오세종이 마침내 자신의 생애 첫 올림픽 금메달을 결국 계주에서 완성해냈다. 오세종은 이날 레이스에서 빠졌지만 예선에서 한국이 결승에 오르는 데 힘을 보탰다. 끈끈한 선수들 간의 호흡이 중요한 계주에서 큰 형으로서 선수들을 이끌면서 한국이 이번 동계올림픽 6번째 금메달을 따내는 데 밑거름이 됐다. 지난 1982년 서울에서 아버지 오창일씨와 어머니 정승자씨의 독자로 태어난 오세종은 신장 180㎝에 몸무게 70㎏으로 대표선수 중에서 가장 체격이 뛰어나다. 리라초등학교에서 스케이트를 처음 배운 오세종은 고덕중-광문고를 거쳐 단국대 시절인 2001년 2월 동계유니버시아드 남자 계주 5,000m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면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이미 99년 첫 대표팀에 발탁된 뒤 치른 99-2000시즌 쇼트트랙월드컵에서도 2차례 연속 계주에 참가해 1위를 차지하면서 장거리 및 계주 전문 선수로 인정받았다. 이듬해 쇼트트랙월드컵 2차 및 5차 대회에서도 계주 금메달을 목에 걸었던 오세종은 2003년 제5회 아오모리 동계아시안게임 남자 5,000m 계주에 출전해 금메달을 따내면서 병역혜택을 받아 현재 문화관광부 소속 공익근무 요원으로 복무 중이다. 이번 동계올림픽에서 오세종은 자신의 주종목이었던 1,500m와 1,000m를 안현수와 이호석에게 양보하고 계주에만 훈련의 초점을 맞춰 몸을 만들어 왔다. 특히 오세종은 지난해 쇼트트랙월드컵 2-3차 대회에서도 잇따라 계주 금메달을 따내면서 동계올림픽 계주 금메달의 기대감을 높였고, 마침내 꿈을 현실로 바꾸면서 지난 1992년 알베르빌 동계올림픽 이후 14년 만에 찾아온 금메달의 공신이 됐다. (토리노=연합뉴스) horn90@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