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포함해 몇개국 대표단은 말을 행동으로 옮기는 과정으로서 초기단계에 신뢰를 구축할 수 있는 조치를 검토하자고 했다." 송민순(宋旻淳) 외교통상부 차관보가 9일 제5차 6자회담 개막식에서 각국 수석대표들이 내놓은 입장을 브리핑한 내용 가운데 한 대목이다. 이는 9.19 공동성명이 `말 대 말' 내지 `공약 대 공약'의 합의인 만큼 이를 `행동 대 행동'으로 옮기기 위해서는 큰 틀의 계획을 정하고 전문실무그룹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신뢰 구축이 절실하다는 판단에서 나온 제안으로 보인다. 송 차관보가 이번 회담에서 처음 신뢰구축 조치를 언급한 것은 8일 남북간 협의 결과를 설명한 내외신 브리핑에서였다. 그는 "1단계 회담에서 관련국들이 상호 신뢰성을 위한 행동을 상호적으로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남북 간 교감을 바탕으로 다른 참가국의 의사를 사전 타진한 뒤 이날 개막식에서 이런 입장을 제시했다. 특히 우리 대표단만 제안한 게 아니라 다른 국가도 같은 조치의 필요성을 언급하면서 그의 제안이 힘을 얻고 있는 것이다. 미국도 원칙에 대해서는 공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제안은 그동안 뼈저리게 체험한 북미 간 불신을 감안한 것이다. 북핵 위기 발생의 근저에도 북미 간 불신이 깔려 있었고 6자회담이 차수를 거듭해 오는 동안 늘 진전을 가로막았던 장애 역시 신뢰 부족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행동으로 신뢰를 쌓는, 행동과 신뢰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 나갈 필요가 있다는 게 정부 당국자의 설명이다. 초기단계에 취할 수 있는 신뢰구축 조치는 말그대로 `행동 대 행동'이며 공동성명을 처음으로 상호조율된 행동으로 옮긴다는 의미가 있다. 또 행동의 주체는 정황상 미국과 북한이 될 가능성이 높고 상호성과 동시행동의 기반 위에 주고받는 형식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문제는 신뢰구축 조치로 무엇을 정할지에 달려 있다. 정부 당국자는 이와 관련, "조치에 대해서는 앞으로 이야기를 해봐야 하겠지만 서로 신뢰를 조성할 수 있는 조치가 돼야 할 것"이라며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상호적인 것이 될 것"이라고 설명, 조치 내용을 구체화하는 게 문제임을 시사했다. 하지만 과거 북한의 주장을 되짚어 보면 어느 정도 짐작이 가능하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1차 회담과 2차 회담 사이인 2003년 12월 9일 "우리는 최소한 다음번 6자회담에서 `말 대 말' 공약과 함께 첫단계의 행동조치라도 합의하자는 것"이라며 "이렇게 된다면 6자회담이 계속 이어질 수 있는 기초가 마련될 것"이라고 밝히고 그 첫단계 조치를 예시했다. 북한이 핵활동을 동결하는 대신 미국에 의한 `테러지원국명단' 해제, 정치ㆍ경제ㆍ군사적 제재와 봉쇄 철회, 미국과 주변국에 의한 중유, 전력 등 에너지지원 같은 대응조치가 취해져야 한다는 게 북한이 요구한 첫단계 조치였다. 이를 현 상황에 적용하기는 불가능해 보이지만 참조사항은 될 수 있다. 그러나 6자회담에서의 `행동 대 행동'은 군축회담처럼 대상과 규모, 시기를 정해 단계적으로 감축하는 대칭적인 행동과는 달리, 상호 취할 수 있는 행동에 비대칭성이 강하다는 데 더 심각한 난점이 있다. 즉 등가성(等價性) 내지 호환성의 문제가 걸림돌이 되는 것이다. 다른 참가국이 별 게 아니라고 생각하는 조치도 북한에게는 매우 심각하고 중대 결단이 필요한 문제가 될 수 있으며 이 경우 북한은 그런 결정을 전제로 다른 참가국의 생각을 웃도는 수준의 조치를 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을 감안, 가장 쉽게 취할 수 있으면서도 북핵 해결을 위해 어느 정도 상징성을 갖는 조치가 조율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2000년 북미 화해 무드 당시 정부 고위급 인사가 교차 방문한 사례도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그 해 10월 조명록 북한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이 워싱턴에서 빌 클린턴 당시 대통령을 만나 북미 공동코뮈니케를 발표하고 같은 달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이 방북, 김위원장을 면담하면서 북미 사이에 훈풍이 불었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회담을 앞두고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의 방북 가능성이 고개를 들었던 점에 비춰 북미 간 방문외교 가능성은 향후 계속 주시해야 할 움직임 가운데 하나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베이징=연합뉴스) 정준영 기자 princ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