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이 분단 반세기를 훨씬 넘겨 광복 60주년을맞아 처음으로 15일 이산가족 화상상봉 행사를 갖는다. 2000년 김대중(金大中) 당시 대통령과 김정일(金正日) 북한 국방위원장이 6.15 공동선언을 발표한 이후 당시 여당인 민주당 의원들을 중심으로 `이색 아이디어'로 제시했던 이산가족 화상상봉은 약 5년만인 이번에 결실을 보게 된 것이다. 화상상봉은 6월17일 정동영(鄭東泳) 통일부 장관과 김 위원장이 실시에 합의한이후 양측 모두 신속하게 준비해 불과 두달만에 성사되게 됐다. ◇ 화상상봉의 의미 = 비록 시범 행사지만 적지않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우선 대면은 아니지만 이산가족들이 대체로 고령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먼거리를 이동하지 않고도 헤어졌던 가족들을 쉽게 만나볼 수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산 1세대의 경우 대부분 고령으로 해마다 4천∼5천명씩 유명을 달리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비교적 짧은 시간과 동선으로 가족과 상봉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기존의 대면 방식으로는 상봉기회에 한계가 있었지만 화상을 통한 새로운 상봉방식을 도입함으로써 생사확인과 상봉기회가 대폭 확대되는 계기를 마련했다. 비슷한 맥락에서 화상상봉이 확대될 경우, 이미 상봉한 사람들이 재상봉할 기회도 쉽게 가질 수 있다는 장점도 갖는다. 그동안 10차례 직접 상봉행사를 갖는 동안 상봉자들이 가장 아쉬워했던 부분이 사실상 재상봉의 기회가 없다는 것으로, 오히려 `안 만난 것 보다 못했다'는 아쉬움까지 적지않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화상상봉이 이런 아쉬움을 메워줄 수 있는 획기적인 상봉 방식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화상상봉을 위해 7월18일 개성-문산을 연결하는 광통신망이 연결됨으로써 1948년 8월 소련군에 의해 인위적으로 단절됐던 남북간 통신망이 재연결돼 화상상봉 뿐 아니라 개성공단 입주기업과 남북간 통신회선으로도 활용될 수 있다는 의미도 빼놓을 수 없다. 화상상봉이 갖는 의미는 또 있다. 정동영(鄭東泳) 통일부 장관은 12일 화상상봉센터 개소식에서 화상상봉을 "인도주의와 정보통신의 합작품"이라고 평가했다. 이에 앞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6월17일 정 장관을 면담한 자리에서 `정보통신 시대인 만큼 IT를 충분히 이용하자'며 화상상봉 제안을 흔쾌히 수용했다. 화상상봉이 IT 분야의 남북 교류에 물꼬를 틀 수 있음을 시사한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 화상상봉 성사 경위 = 화상상봉은 6.15 공동선언의 직접적인 산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6.15공동선언이 이뤄진 지 약 넉달이 지난 2000년 10월 여당이었던 민주당 의원을 중심으로 남북 이산가족 화상상봉이라는 `이색제안'이 처음 제기됐고 통일부는 곧바로 다음 해 업무보고를 통해 화상상봉 추진 방침을 공식화 했다. 화상상봉 계획은 이후 약간 물밑으로 가라앉았다가 2004년 4월 정동영 당시 열린우리당 의장이 "지금까지 9차례에 걸쳐 6천명 가량의 상봉이 이뤄졌으나 12만명의 이산가족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다. 노무현 대통령 임기내에 나머지 11만여명이 화상상봉이라도 할 수 있도록 남북협력기금 확충을 위한 특별법이 필요하다"고 밝힘으로써 다시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그의 이 같은 발언은 6월17일 김 위원장과의 면담을 통해 결실을 보게 됐다. 정 장관은 이 자리에서 화상상봉을 제안했고 김 위원장의 흔쾌한 승낙을 얻어냈기 때문이다. 이후 화상상봉 준비 작업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남북은 6월29일, 7월5일, 7월27일 3차례의 기술실무접촉과 7월12∼13일 실무접촉을 거쳐 7월18일 군사분계선에서 화상상봉에 사용될 문산-개성간 광케이블을 연결했다. 남북은 7월18일 남북 이산가족 100명씩의 생사확인의뢰서를 각각 전달한 뒤 5일 20명씩의 최종 명단을 교환했다. 7월19일에는 `남북 이산가족 시범화상상봉에 관한 합의서'가 남북간에 체결됐다. 이어 남측은 12일 서울 중구 남산동 대한적십자사 본사에 화상상봉센터 개소식을 연 것을 비롯해 전국 7개 한적 지사에 상봉장을 마련했고 이어 13일에는 북측과 화상상봉 시연 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러 상봉 준비를 완료했다. 남측은 대면상봉이 아닌 화상상봉이 갖는 아쉬움을 다소나마 완화하기 위해 TV급에 근접한 화질을 보장하기 위해 광전용망을 구축했고 50인치급 대형 PDP모니터를 설치했다. 시연행사에 참여했던 한완상 한적 총재는 "평화의 회로"라고,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은 "통일의 발단"이라고 화상상봉을 각각 평가했다. 남측은 한적 서울 본사에 5개 상봉장을 비롯, 인천, 수원, 대전, 광주, 대구, 부산, 춘천 지사에 도합 12개 상봉장을 마련했고 북측은 평양에 10개 이상의 상봉장을 구비한 것으로 알려졌다. 남북은 23∼25일 금강산에서 열리는 제6차 적십자회담에서 국군포로와 납북자 문제 외에 화상상봉 확대 방안도 논의할 예정이다. (서울=연합뉴스) 지일우 기자 ciw@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