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은 50일 간에 걸친 수사 끝에 청와대 관계자들이 개인 사업에 불과한 행담도 개발사업을 국책사업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오판, 부적절하게 개입한 부분에 대해 감사원 감사 결과와 달리 사법처리했다. 그러나 한국도로공사가 싱가포르 투자회사 Econ과 무리한 계약을 체결하는 과정에 이른바 `청와대 3인'이 섣부르게 개입한 배경과 다른 외압의 존재 여부, 대가성 금품 거래 등에 대해서는 감사원 감사에서 진전된 결과를 내놓지 못했다. 무엇보다 김재복 행담도개발㈜ 사장과 두터운 관계였던 캘빈 유 주한 싱가포르 대사에 대한 조사가 `외교 특권' 때문에 원천적으로 불가능했던 게 사건 본질 규명의 결정적인 장애물이 됐다. ◇ 청와대 부적절한 개입 확인, 사법처리 감사원은 정찬용, 문정인, 정태인씨 등 전직 청와대 관계자들이 개입한 정황은 인정되지만 법을 위반한 정도는 아니라는 결론을 내리고 별도로 이들에 대해 수사 의뢰 등의 조치를 취하지는 않았었다. 그러나 검찰은 정태인씨가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감사를 하도록 하겠다"며 도공 직원들에게 불이익을 줄 것처럼 압력을 행사, 도공이 주식 담보 제공에 동의하도록 강요한 부분에 대해 직권남용과 강요미수 혐의를 적용해 기소했다. 정씨는 또 검찰 조사 결과 창립기념일에 쉬고 있는 도공 직원들에게 동북아위 보고용 자료를 만들어 자신에게 보고하도록 한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동북아위가 정부를 대표해 개인기업인 행담도개발㈜을 지원하거나 감독할 근거가 없고, 행담도 개발 사업과 동북아 허브 정책이 아무 연관이 없는데도 김재복씨 부탁을 받고 정부지원의향서를 발급해준 부분에 대해 문정인, 정태인씨에게 허위공문서작성, 행사 혐의를 적용했다. 문책 사유는 되지만 `범죄'는 아니라는 감사원 감사 결과에 대해 명백한 현행법 위반이라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 허울뿐인 외자유치 사업 실체 드러내 검찰 수사 성과 중 하나는 2단계 개발사업에만 총 4천433억원이 들어가는 행담도 개발사업이 실은 외자 한푼없이 국내 자본으로 추진됐다는 점을 밝혀낸 것. 김재복씨는 자금 동원 여력이 없어 국내 금융기관에서 페이퍼컴퍼니(유령회사) 설립에 필요한 돈을 끌어다 썼고, Econ으로부터 행담도개발㈜ 지분을 인수할 때는 개발 시공권을 주는 대가로 120억원을 무이자 차입하는 수완을 발휘했다. 은행과 기업체에서 돈을 끌어다 행담도 개발 사업을 자기 것으로 만든 셈이다. 사업비 4천억원은 해외에서 3억달러 채권을 발행하는 식으로 조달할 계획이었지만 신용이 낮아 실패했고, 이 과정에서 신용도를 높이려고 오점록 전 도공 사장의 도움으로 1억500만달러의 풋백옵션 계약을 성사시킨 것으로 드러났다. 행담도 사업을 정부 지원 사업처럼 포장하는 데 성공한 김씨는 도공의 동의없이 행담도개발㈜ 주식을 담보로 교원공제회와 우정사업본부에 8천300만달러의 채권을 매각, 사업비마저 국내 자본으로 충당했다. ◇ 다른 외압 있었나 없었나 검찰은 청와대 3인이 관련된 이번 사건에 사업 추진 과정이나 채권 매각 때 다른 외압은 없었던 것으로 결론 지었다. 검찰은 노무현 대통령이 정찬용, 문정인씨로부터 행담도 개발 사업이나 김재복씨에 대해 보고를 받지 않았겠느냐는 의혹에 대해 "행담도 개발 사업은 서남해안 개발사업(S프로젝트)과 아무 관련이 없었기 때문에 대통령에게 보고할 사항도 아니고 보고 사실도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 전 수석은 2004년 6월 11일 대통령에게 S프로젝트 외자유치 문제를 한 차례 보고했고, 문 전 위원장도 S프로젝트 관련 내용을 보고한 것으로 확인돼 논란의 소지는 여전히 남아 있다. 우정사업본부와 교원공제회가 EKI B.V. 가 발행한 8천300만달러 회사채를 인수하는 과정도 외압은 없었던 것으로 결론났지만, 채권 신용등급(AAA)에 비해 연이율이 5.72%로 높은 편이어서 위험성을 배제할 수 없었는데도 이들 기관이 채권을 매입한 것은 석연치 않은 대목이다. 오정소 전 안기부 1차장을 비롯해 국정원 관계자들에게 용돈을 주며 `관리'를 해온 김재복씨가 과연 정치권 인사들에게는 별도로 대가성 금품을 제공하지 않았는지도 여전히 의문점이다. ◇ 캘빈 유 의혹 미궁 속으로 캘빈유 대사는 작년 2월 정찬용 수석에게 `김재복씨는 젊고 유능한 사업가이며, 행담도 개발 프로젝트를 싱가포르의 한국 장기 투자의 확고한 상징 중 하나로 본다'는 내용의 서한을 써줄 정도로 김씨와 각별한 관계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행담도 개발 사업을 청와대 3인이 S프로젝트의 시범사업으로 인식, 적극 개입한 정황을 규명하는데 중요한 열쇠를 쥐고 있는 인물로 지목됐지만 신분상 조사 자체가 불가능해 그의 역할은 결국 미궁에 빠지게 됐다. 검찰은 김재복씨 조사를 통해 캘빈 유 대사와 김씨가 2003년께 서울 인사동의 한 술집에서 여러 차례 만난 정황을 포착하고 조사를 벌였지만 대가성을 밝혀내지는 못했다. 검찰로서도 자칫 외교 마찰로 비화할 가능성을 우려, 여러 각도에서 캘빈 유 대사를 조사하는 방안을 고심했지만 실패했다. 그는 비록 개인 자격으로 청와대에 김재복씨를 추천하는 서한을 전달했지만, 우리 정부가 싱가포르 정부의 공식 서한으로 보고 김씨를 적극 신뢰한 배경은 여전히 의혹으로 남아 있다. (서울=연합뉴스) 이광철 기자 minor@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