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선 탈락한 선수라도 보따리 쌀 생각말고 끝까지 전부 지켜보고 돌아가!" 세계무대에서 여전히 들러리 신세를 면하지 못하고 있는 한국육상이 '배워야 산다'는 진리를 터득하기 시작했다. 핀란드 헬싱키에서 열리고 있는 2005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 파견된 한국선수단(선수 10명, 코치 6명)은 대회가 끝나는 오는 15일(이하 한국시간)까지 한명의 예외도 없이 무조건 헬싱키에 남아 '세계화 학습'을 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대회 첫 날과 이틀째 열린 남녀 경보 20㎞ 레이스가 끝났지만 각각 16위와 29위를 차지한 경보팀의 신일용(삼성전자)과 김미정(울산시청)은 오는 12일 김동영(상무)이 출전하는 남자 50㎞ 경보 레이스를 집중적으로 분석하라는 숙제를 떠안았다. 그동안 지난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자신의 종목 레이스가 끝나면 부리나케 짐을 정리해 고국행 항공편에 올랐던 것과는 정반대다. 대한육상연맹 서상택 부장은 "2003년 파리 대회 때만 해도 경기가 끝난 선수들은 곧장 돌아갔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자신의 경기가 끝났더라도 현지에 남아 세계 수준의 레이스를 직접 체득하면서 뭔가 얻을만한 것을 챙겨가라는 뜻"이라고 말했다. 신필렬 육상연맹 회장은 비용이 좀 더 들더라도 흔치않은 기회에 선수들의 '눈을 확 틔어줘야 하겠다'는 뜻에서 이같은 방침을 정했다. 따라서 경기가 끝난 선수들은 답답한 선수촌에 앉아있지 않고 매일 헬싱키 올림픽스타디움을 찾는다. '적을 알고 나를 안다'는 심정으로 세계 최고 수준의 선수들이 어떤 식으로 워임업을 하는 지, 경기장에서 레이스 직전 어떤 움직임을 취하는 지 세밀한 동작 하나하나를 분석해야 한다는 것. 대회 연구위원으로 현지에 파견된 체육과학연구원 성봉주 박사는 "선수들에게 모두 리포트 하나씩을 작성해서 내라고 했다. 보고서가 안되면 감상문이라도 써보라는 얘기"라고 말했다. 다른 선수들의 경기를 지켜보는 것은 마인드 컨트롤과 이미지 트레이닝에도 큰 도움이 된다는 평가다. 한국 선수들이 올림픽과 세계선수권 등 메이저 이벤트에서 자신의 기록에도 훨씬 미치지 못한 채 번번이 주저앉는 것도 직.간접적인 경험 부족에서 오는 '소심증'이 원인이기 때문이다. 남자 마라톤과 일부 필드 종목을 제외하고는 올림픽과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단 한번도 결승의 문턱을 넘어보지 못한 한국육상이 '헬싱키 학습 열풍'으로 세계의 벽에 도전할 디딤돌을 놓을 수 있을 지 주목된다. 한편 주 핀란드대사관(대사 박흥신)은 한국 선수단을 헬싱키 시내 대사관저로 불러 오찬을 함께 하며 선전을 기원했다. 이날 행사에는 박정기 국제육상연맹(IAAF) 집행위원과 유종하 2011 대구세계육상유치위원회 위원장, 윤강로 2014평창동계올림픽유치위원회 국제사무총장 등이 참석했다. (헬싱키=연합뉴스) 옥 철 기자 oakchul@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