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안기부 도청사건의 주역이자 최대 '피해자'인 홍석현 주미대사는 21일(현지시간) "오래된 일이라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홍 대사는 내용이 기억나지 않는 데도 방송금지 가처분 신청을 한 데 대해 "이상한 테이프가 있다는데 그것을 방송하겠다니까…. 그 테이프 내용이 어떻든 사적인 자리의 대화가 공개되는 것을 즐겁게 받아들일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대답했다. 이어 '도청된 자리가 어디인지 기억하나'라는 질문에 "모르겠다. 어디서 녹음했다고 하나"고 되묻고는 '신라호텔'이라는 얘기를 듣고는 "내가 자주 가던 곳이긴 하다"고 말했다. 또 '왜 지금 이 시점에 도청 테이프가 문제가 된다고 보나'라고 묻자 "생각하는 바가 있지만 맞지 않을 수도 있어 말하지 않겠다"고 답해 여운을 남겼다. 청와대는 이날 홍 대사의 거취와 관련,상황 파악이 먼저라며 유보적인 입장을 보였다. 김만수 청와대 대변인은 "사실관계가 먼저 파악되어야 하며,거취 문제가 거론될 단계는 아니다"고 밝혔다. 다만 "임명 과정에서 테이프에 관한 정보는 없었고 몰랐다"고 말했다. 하지만 홍 대사의 최근 유엔 사무총장 의향 발언에 이어 터진 이번 사건으로 더 이상 직무 수행이 불가능한 것 아니냐는 여론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지난 4월 재산공개 과정에서 위장전입 등 불법을 통한 부동산 투기 사실이 밝혀졌고,이에 앞서 1999년에는 1000여개의 차명계좌를 만들어 700억원에 이르는 소득을 탈루하고 262억원의 세금을 포탈한 '전력'까지 겹쳐 있는 점도 정부를 부담스럽게 하고 있다. 허원순·이심기 기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