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정국의 첫머리를 장식하면서 엄청난 파장을 불러올 것으로 예상됐던 `연정(聯政)론'이 정치권 안팎에서 우군을 얻지 못하면서 급격히 힘이 빠지고 있다. 연정론은 지난달 24일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여권 `11인 회의'에서 처음 언급된 것으로 시작으로 `내각제 수준의 권력 이양', 우리당 문희상(文喜相) 의장의 `지역구도 극복 선거제 개편을 전제로 한 총리지명권의 야당 이양' 제안 등으로 이어지면서 일파만파의 후폭풍을 불러왔다. 또 연정구상의 대상과 범위, 배경, 향후 정치 일정, 개헌과의 연관성 등을 놓고 다양한 의견과 관측이 동시다발적으로 터져나오면서 엄청난 `화력'을 과시했다. 그러나 연정론은 우선 그 대상인 한나라당, 민주당, 민주노동당 등 야 3당으로부터 외면당하면서 메아리를 얻지 못했고, 특히 소연정(小聯政)의 1차적인 대상으로여겨지던 민주노동당도 지난 11일부터 2박3일 일정으로 충남 논산에서 가진 의원 워크숍을 통해 연정 거부 방침을 공식 확정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연정 구상에 대해 처음부터 "여권이 정치적 위기를 탈출하기 위해 내놓은 꼼수"라며 일언지하에 거절했고, 민주노동당은 노회찬(魯會燦) 의원 등 일부에서 연정구상의 수용 가능성을 잠시고민하는 듯 했으나 자칫 당의 존립기반과 정체성을 뒤흔들 수 있다며 당 차원에서 거부했다. 연정구상은 또한 여권의 잠재적인 우군(友軍)으로 분류되는 시민단체 진영으로부터도 적극적인 동의를 얻지 못하고 있는 형국이다. 참여연대 운영위원장인 손혁재 성공회대 교수는 12일 열린우리당 싱크탱크인 열린정책연구원 세미나에서 "지역구도 극복에 연정이 효율적이지 않다"며 "선거구제 변화가 필요하다면 국회에서 논의하고 여론을 수렴해야지, `어떻게 하면 뭘 주겠다'는 식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손 교수의 이같은 지적은 여권이 연정 구상의 명분이자 전제조건으로 내세운 지역구도 극복의 논리를 정면으로 비판한 것이다. 한나라당까지를 포함하는 연정 구상에 대해 열린우리당내에서도 정체성의 혼란과 전선의 붕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박병석(朴炳錫) 의원이 위원장을 맡고 있는 당 전략기획협의회는 최근 "대통령의 발언 취지는 이해하지만 시기나 당의 정체성, 실현 가능성 등을 놓고 볼 때 우려할 점이 많다"며 연정 추진이 10월 재.보선 등에서 대 한나라당 전선의 약화를 초래할 수 있다는 요지의 문건을 당 지도부에 전달했다. 정동영(鄭東泳) 통일부장관과 김근태(金槿泰) 보건복지부장관 등 차기주자들을 중심으로 한 당내 양대 계파는 연정론에 대해서 공식적으로는 침묵을 지키고 있지만, 사석에서는 "한나라당과 연정을 하자는 것은 당을 깨자는 것"이라며 비판적인 의견을 피력하는 의원들이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당의 한 관계자는 "연정론에 대해서 할 말은 많지만, 실현 가능성이 별로 높지 않은 문제에 대해 굳이 거론해서 대통령과 각을 세울 필요가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다만 유시민(柳時敏) 상임중앙위원과 이광철(李光喆) 의원 등 참여정치실천연대 소속 의원들과 일부 친노직계 의원들이 "지역주의 청산을 위한 노 대통령의 간곡한 호소에 귀 기울이고 진지한 토론을 해야 한다"며 적극 호응하고 있는 형국이다. 이런 가운데 노 대통령이 꺼내든 지역구도 극복을 위한 선거구제 개편과 연정이라는 화두를 계속 살려나가야 하는 숙제가 여당 지도부에 맡겨져 있다. 이와 관련, 문희상 의장은 12일 금강산에서 연합뉴스 기자와 만나 "한나라당과 민주노동당, 민주당 등 야당과 연정 문제를 협의하기 위한 협력위원회를 오는 18일께 당내에 구성하겠다"고 밝혔으나, 얼마만큼의 동력을 확보할 수 있을 지 미지수다. 우리당 배기선(裵基善) 사무총장은 "(연정 제의를) 바로 받는다는 대답이 나올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성급하다"면서 "민노당, 민주당은 물론 한나라당내에서도 이 문제를 심사숙고해서 풀어가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쪽이 있다고 본다"며 끈을 이어갔다. (서울=연합뉴스) 맹찬형기자 mangel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