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말 우리나라 고령인구(65세 이상) 비중은 8.4%였다. UN 기준에 따르면 '고령화사회(Aging Society)'다.


우리나라가 노인인구 비중이 7%가 넘는 고령화사회가 된 것은 2000년.지금 추세대로라면 2018년에 고령인구 비중이 14%를 넘어 '고령사회(Aged Society)'에 진입한다. 다시 8년 뒤인 2026년엔 고령인구 비중이 20%를 넘는 '초고령사회(Super-aged Society)'가 될 것으로 관측된다.


고령화는 세계적인 현상이다. 문제는 우리나라의 고령화 속도가 유례 없이 빠르다는 데 있다. 우리나라가 '고령화사회'에서 '초고령사회'로 넘어가는 데 걸리는 시간은 26년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 프랑스(156년),영국(92년),미국(86년),일본(36년) 등 선진국에 비해 엄청나게 빠른 속도다.



우리나라의 인구 고령화 속도가 유독 빠른 것은 평균수명이 빠르게 증가하는 반면 출산율은 급속히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평균수명은 2002년 현재 77세로 1971년 62세에 비해 무려 15세가 증가했다.


반면 합계출산율(여자 1명이 가임기간 동안 낳은 평균 출생아 수)은 1.19명으로 세계에서 가장 낮다.


인구 고령화는 근로인력의 평균연령 상승과 노동력 공급 감소에 따라 생산성 하락,성장잠재력 저하 등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


연금보험료를 내는 젊은 세대가 줄어드는 대신 연금을 타는 노인인구가 급증하면서 국민연금 건강보험 등 사회보장시스템의 재정이 악화할 가능성도 크다.


고령화는 특히 저축 행태의 변화를 통해 우리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이른바 '과잉저축' 문제다.


통상 한창 일할 때는 저축률이 높은 경향이 있다.


은퇴 이후의 생계비용을 마련해야 하기 때문이다.


반면 은퇴 후에는 저축률이 떨어지는 게 일반적이다.


버는 것 없이 그동안 모아놓은 재산에 의지하며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고령화가 진전되면 경제 전체의 저축률이 감소하는 게 과거 선진국들의 경험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고령화 속도가 매우 빠른데도 최근 수년간 저축성향이 오히려 높아지고 있다.


이는 무엇보다 경기침체가 3년 이상 이어져 가계소득이 떨어진 데 대해 '허리띠 졸라매기'로 대응한 탓이 크다.


아무리 살림이 어려워져도 내집 마련,자녀교육 등을 위해 붓는 적금은 꼬박꼬박 들어간다.


자연히 불경기일수록 소득 대비 저축 비중,즉 저축성향이 높아지는 경향이 있다.


'과잉저축' 현상은 노후대비용 저축 증가 추세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국민연금은 미덥지 않고,'사오정' '오륙도'의 조기퇴직 관행은 여전하고,부모 모시겠다는 자식은 찾아보기 힘들다 보니 노후불안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일할 수 있을 때 최대한 재산을 모아놓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런데 저축의 증가가 바람직한 현상만은 아니다.


개인 차원에서는 합리적인 행동일 수 있지만 국가 전체적으로는 부작용으로 나타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은행이나 보험사에 적금불입금이나 보험료를 내면,금융회사들은 이것을 모아 기업에 빌려주거나 주식 채권 부동산 등의 자산에 투자한다.


기업이 투자를 늘리지 않는 경우 저축 증가는 자산에 대한 수요를 늘리게 된다.


이 경우 자산 공급이 덩달아 증가하지 않는다면 자산 가격은 상승하게 마련이다.


요즘 우리 경제가 1960~80년대 30여년 동안 고도성장 이후 성장잠재력이 떨어지는 '중진국 병(病)'에 걸려 있는 것 아니냐는 걱정을 하는 사람이 많다.


무엇보다 기업들이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해 벌어들인 돈을 쌓아 놓기만 하고 신규투자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노후대비 목적의 저축 및 자산투자 증가는 자산 인플레이션을 낳을 가능성이 크다.


과잉저축 세대가 은퇴할 때도 문제다.


저축을 많이 하던 사람들이 하나 둘 은퇴하면서 노후 생계를 위해 투자자산을 처분하기 시작하면 자산시장 여건은 수요 초과에서 공급 초과로 바뀌게 된다.


예금 찾고,주식 팔고,부동산 팔아서 노후생활을 유지하려는 사람들이 늘어나게 되면 주가와 부동산 가격은 폭락하고 금리는 급등하게 된다.


게다가 매물이 일시에 늘어난다면 자산가격 하락 압력은 더욱 높아진다.


대응책은 뭘까? 우리 기업들이 새로운 수익원을 발굴해 투자를 늘린다면 늘어나는 저축의 상당 부분을 생산활동의 재원으로 흡수함으로써 자산 인플레이션 우려가 기우에 그칠 수 있다.


또한 출산율이 조만간 빠른 속도로 회복되기 시작한다면 새로 태어난 아이들이 수십 년 뒤 구매력 있는 청·장년층으로 성장해 은퇴세대가 내놓은 주식 채권 부동산 매물을 받아줌으로써 디플레이션 압력을 완화시킬 수도 있다.


노후대비용 투자자산을 좁은 국내시장이 아닌 해외시장에서 찾는 것도 국내 자산시장에 대한 충격을 줄일 수 있는 방안이다.


양희승 연구원 hsyang@lger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