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차는 걸 워낙 좋아했던 '미키마우스' 박지성(24)은 수원 세류초등학교 4학년 때 축구 선수의 길로 들어섰다. 지금도 건장한 체구(175㎝ 70㎏)는 아니지만 안용중을 거쳐 수원공고에 입학할 때까지도 체격은 여전히 작았다. 이학종 수원공고 감독은 "박지성에게 1학년 때까지는 공을 가지고 노는 수준의 가벼운 훈련 정도만 시켰다"고 한다. 심한 훈련이 성장에 장애가 될까봐서였다. 이 감독은 "충분히 쉬고 많이 먹게 하려는 배려 차원에서 집에 자주 보냈더니 박지성의 아버지가 '축구를 그만두게 하려는 게 아니냐'고 걱정스럽게 물어왔을 정도"라며 당시를 회상한다. 이 감독은 박지성에 대해 "지능적이고 발전 속도가 빨랐다. 무엇보다 축구에 대한 열정이나 욕심이 남달랐다"고 말했다. 박지성은 초등학교 6학년 때 한해 동안 가장 빼어난 활약을 보인 선수에게 주는 '차범근 축구상'(5회)을 수상하기도 했지만 고교를 졸업할 때엔 그의 왜소한 체구 때문에 눈길을 주는 대학팀조차 없었다. 하지만 그의 잠재력을 잘 알고 있던 이 감독의 추천으로 명지대에 진학했다. 현재 포천축구센터 총감독을 맡고 있는 김희태 당시 명지대 감독은 "처음에 입학했을 때는 정말 유소년이나 다름없었다"며 "하지만 경기를 치를 수록 발전 가능성이 보이기 시작했다. 지구력이 좋고 상황 판단 능력이 탁월했다"고 전했다. 박지성은 대학 1학년 때인 99년 3월, 당시 허정무 감독이 이끌고 있던 올림픽대표팀에 합류했다. 한달 전 박지성이 올림픽대표팀과의 몇 차례 연습경기에서 좋은 활약을 보였고 김 감독은 허 감독에게 그의 발탁을 권했다. 처음엔 연습생 정도로 테스트를 해 보겠다던 허 감독은 결국 박지성을 정식 멤버로 발탁했다. 체구도 작고 별 특징도 없는 선수를 왜 뽑느냐는 말도 많았지만 크게 될 선수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박지성은 대학 1학년을 마치고 2000년 일본 프로축구 교토 퍼플상가로 진출했다. 박지성의 기량이 꽃을 피우기 시작한 건 지난 2002년 한.일 월드컵 때다. 포르투갈과의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결승골을 터트리는 등 박지성은 축구팬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이어 그해 J2의 교토 퍼플상가를 1부리그로 올려놓은 박지성은 히딩크 감독의 부름을 받고 2003년 초 네덜란드 PSV 에인트호벤에 입단, 빅리그 진출의 발판을 마련했다. 그리고 2년 6개월 만에 한국인 최초의 프리미어리거로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박지성의 어머니는 박지성을 임신했을 때 용 한마리가 자신의 목을 감고 승천하는 태몽을 꿨다고 한다. 박지성이 한국 축구사에 길이 빛날 쾌거를 이룰 것이라 마치 예견이라도 한 듯. (서울=연합뉴스) 배진남기자 hosu1@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