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중 전 대우 회장은 하노이 시내의 한 인터내셔널빌리지에 장기 체류하고 있었다. 하노이 시내 외국인 전용 주택가인 이 마을은 대로변에서 떨어져 있어 한적한 느낌이 들 정도다. 김 회장의 마지막 도피처인 이 곳은 3층으로 지어진 유럽식 주택으로 연건평이 100여평 정도 돼보이고 잔디가 깔린 정원에는 장미 몇 그루와 석재로 만든 의자와 테이블 등이 마련돼 있다. 철제 대문이 2곳에 설치돼 있으며 안전을 감안한 듯 베이지색 건물 외부 곳곳에 폐쇄회로 카메라가 갖춰져 있었다. 집 밖에는 베트남 정보요원들이 김 회장을 에스코트하려는 듯 차량을 대기시켜 놓고 있었다. 베트남 정보요원들은 수시로 건물 주변을 순찰하며 현지에 진을 치고 있는 한국 기자들의 동향을 감시하기도 했다. ○…김 회장과 함께 귀국하기 위해 서울에서 파견된 김&장법률사무소의 조준형 변호사와 아주대병원의 소의영·신준한 교수는 숙소인 멜리나호텔에서 아침 식사를 서둘러 마친 뒤 김 회장이 보낸 것으로 보이는 검은색 매그너스 승용차를 타고 모처로 향했다. 취재팀의 추격전이 시작된 것은 이때부터.의료진을 태운 매그너스 승용차는 호텔에서 20분을 달린 끝에 외국인 전용 주택가인 탕롱인터내셔널빌리지에 도착했다. 한 순간 승용차의 행방을 놓친 취재팀은 40도가 넘는 뙤약볕 속에 가구별 탐문 취재를 시작한 지 1시간여 만에 김 회장이 머물고 있는 3층 주택을 찾아냈다. 이 빌리지에서 2년간 가정부로 일하고 있다는 오와잉씨는 취재팀이 김 회장의 사진 10여장을 노트북을 통해 보여주자 "바로 그 사람이 저 집에 살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집 밖에서 목격된 김 회장은 완전한 백발에 바짝 마른 모습이었으며 검은 뿔테 안경을 끼고 있었다. 저녁 8시40분(현지시간)에는 여행가방을 꾸리는 모습이 목격됐으며 기자들이 몰려들자 2층의 불을 꺼버렸다. 그는 관리인으로 보이는 베트남인 2명과 함께 거주해왔다. 저녁 때는 베트남에서의 마지막 만찬을 준비하기 위해 방문한 여자 요리사의 모습이 보이기도 했다. 인근 쌀국수 집 종업원도 김 회장이 가끔 쌀국수를 먹으러 들르곤 했다고 전했다. 이 집은 한국인이 살지 않는데다 하노이공항과 대우호텔의 중간지점이어서 혼자 칩거생활을 하기에는 제격이라는 게 현지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이날 보도진이 몰려들자 인근 주민들도 "그 노인이 대우 회장이었냐"며 관심을 보였으며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베트남 정보기관 요원들도 현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재계는 공식반응을 자제하면서도 김 전 회장의 귀국 행보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내에서는 김 전 회장이 과오도 있지만 경제발전에 기여한 점은 인정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우세하다. 전경련은 공식 입장을 밝히는 방안도 검토 중이며 오는 16일 열리는 월례 회장단회의에서 김 전 회장 문제를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옛 대우 계열사들은 여론의 역풍을 맞지 않을까 하는 우려 속에 공식 입장 표명을 자제했다. 그러나 김 회장과 대우사태에 대한 공과가 제대로 평가돼야 한다는 희망을 나타냈다. GM대우의 한 임원은 "만감이 교차할 뿐"이라며 "세월이 어느 정도 흘렀고 김 회장과 대우사태가 우리 경제에 미친 영향이 큰 만큼 사법적인 절차를 거치고 국민 여론에 따라 결정될 사안"이라며 말을 아꼈다. 대우자동차판매 관계자는 "옛 대우 임직원들을 위해서라도 세계 경영의 성과가 제 평가를 받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 회장의 대변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백기승 유진그룹 전무는 이날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검찰이나 정치권과의 사전 조율설을 강하게 부인했다. 백 전무는 "귀국과 관련해 정치권 및 정부 고위층과의 사전 조율은 없었다"고 밝혔다. 하노이=조일훈·류시훈 기자,이건호 기자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