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크빛 아파트에서 여성에게 키스할 것처럼 몸을 기울이는 원빈은 사실은 립스틱을 꺼내 그녀의 입술에 발라준다. 앵두나무 가지에 다가선 권상우는 잎과 열매로 관(冠)을 만들어 쓴다. 마치 요정처럼. 한국의 TV에서 방영되고 있는 화장품과 피부관리업소 광고의 장면들이다. 월 스트리트 저널은 한국과 일본 등 아시아지역 선진국들에서 여성의 경제적, 사회적 위치가 강화되면서 '꽃미남'을 동원한 광고가 이처럼 붐을 이루고 있다고 27일 보도했다. 저널은 대담해지고 씀씀이도 커진 여성 고객들을 붙잡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기업체 마케팅 담당자들은 아시아의 '신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부드러운 남성의 이미지라고 지적했다. 옛날처럼 '강인한 남성'의 고정관념을 고집하다가는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평가를 받기 십상이다. 일본의 비달 사순 샴푸는 아름다운 여성에게 상처를 받고 눈물을 흘리거나 여자의 손바닥 위에서 춤을 추는 남자들을 묘사한 광고가 방영된 후 시장점유율이 15%나 올라갔다. 원빈이 등장하는 TV광고를 제작한 미샤화장품의 이혜영 대변인은 "큰 눈과 고운 피부를 가진 예쁜 얼굴에 약간 근육질인 남자가 최근 한국 여성들이 원하는 남성상"이라고 말했다. 저널은 한국에서 사용되고 있는 '꽃미남(Flower Men)'이라는 용어는 `외모에 신경을 쓰는 남성'을 지칭하는 영어단어 '메트로섹슈얼(Metrosexual)'과 같은 부정적인 어감은 담고 있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화여대의 박경도 교수(마케팅)는 "과거 위스키 광고에서 여성들은 남성이 마음대로 선택해 소비하는 존재로 묘사됐지만 지금은 남성 모델들이 비슷한 논리로 광고에 동원된다"면서 "이런 광고에서는 여성들이 남성을 골라잡는 위치에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런 '여성적' 특성을 갖춘 남성들이 동성애자로 인식되는 것은 아니라고 월 스트리트 저널은 지적했다. 제일기획의 조사에 따르면 40세 미만의 남성 가운데 66% 이상, 여성의 57%가 수년전보다 더 이성의 특성에 부합하는 라이프스타일을 갖게 됐다고 밝혔지만 이를 성적 지향성과 연관짓지는 않았다. 저널은 아시아 지역 국가들의 광고에 나타난 남성상의 변화는 여성의 사회, 경제적 지위가 강화되고 있는 시대적 추세를 반영하고 있다고 풀이했다. 또 한국의 외환위기와 일본의 장기 경제침체로 인해 남성들의 권위가 실추된 것도 한 요인으로 들 수 있다고 신문은 지적했다. (뉴욕=연합뉴스) 추왕훈 특파원 cwhyn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