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지주회사 규제위기에 몰렸던 삼성에버랜드가 보유중인 삼성생명 지분의 회계처리방식을 바꿔 규제를 벗어나려 시도한 것을 둘러싼 논란이 다시 일 것으로 보인다. 분기보고서 제출후 잠잠했던 이 문제에 대해 참여연대외에도 회계전문가들로부터 삼성의 회계방식이 회계기준에 어긋나거나 논쟁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당초 "기준 해석이 아닌 사실관계 판단"이라는 견해를 보인 것으로 전해졌던 회계연구원은 참여연대의 질의를 정식 접수하고 답변을 위한 검토에 들어갔다. ◆ "임원선임 영향력 가능여부가 판단기준" = 26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에버랜드는 지난 16일 제출한 1.4분기 보고서에서 자사 보유 삼성생명 지분 19.34%에 대해 그간 적용해 오던 지분법 대신 원가법을 전격 적용했다. 자회사 실적에 따라 지분가치가 늘어나는 지분법 대신 원가법으로 바꾸면 가치가 고정되므로 '총자산중 지분법 적용대상 금융계열사 지분가치 50% 이상'인 금융지주회사 규제기준을 쉽게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에버랜드의 삼성생명 지분율이 지분법 적용기준 20% 미만인데도 에버랜드가 삼성생명의 빌딩관리를 맡고 있는 탓에 지분법을 써왔지만 회계기준이 바뀌어 삼성생명에서 봤을 때 거래비중이 미미한 에버랜드가 삼성생명 지분에 지분법을 적용할 필요가 없어졌다는 게 삼성측 논거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삼성생명 대주주인 에버랜드가 지분구조상 임원 임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느냐가 문제의 초점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기업회계기준이 지분율 20% 미만이라도 하나 이상 해당되면 지분법이 적용되는 다섯 가지 기준을 두고 그중 하나로 '투자회사(에버랜드)가 피투자회사(삼성생명)의 재무, 영업정책에 관한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임원선임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경우'를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 감리위원을 지낸 경희대 김성은 교수(국제경영학부)는 "20% 기준은 가이드라인에 불과하며 영향력을 미치고 있으면 하나의 회사로 보고 지분법을 적용하라는 것이 그 취지"라고 설명하고 "삼성의 회계방식은 가장 기본적 원칙의 근간을 뒤흔든 것이며 스스로 법을 만드는 행위"라고 강도높게 비판했다. 그룹의 삼성생명 지분 절반 이상을 가진 에버랜드 없이 임원임명이 가능하다고 보기 힘든 만큼 이번 보고서는 감리 필요성이 있으며 분기보고서는 수정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다른 서울시내 사립대의 저명 회계학 교수는 익명을 전제로 삼성의 회계처리가 논쟁 소지가 있음을 지적하며 "삼성에버랜드가 삼성생명 임원선임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는지 여부에 대한 사실판단의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또 "지분율 20% 이상이어도 나머지 주주들과 적대관계여서 임원 선임을 할 수 없는 반면, 20%미만이라도 자신의 의지대로 임원을 선임할 수도 있다"며 "주주간 역학관계가 판단의 정황증거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삼성외에 삼성생명의 주요 주주는 신세계(13.57%), CJ(7.99%) 등 '범삼성가'다. 삼성생명 지분 17.6%의 매각을 진행중인 삼성차 채권단의 한 신용분석가도 "회계기준은 지분법을 적용하는 6가지 경우가 아니라도 임원선임 등 중대한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면 지분법을 적용하도록 돼있다"며 지분법 적용 필요성을 지적했다. 한편, 참여연대로부터 에버랜드의 회계처리 적정여부를 질의받은 회계연구원은 실무선에서 "사실관계 판단 문제이므로 질의를 재고해 줄 것"을 참여연대에 요청했다가 다시 질의를 정식 접수한다는 방침을 지난 23일 통보했다. 회계연구원의 답변은 원칙적으로 2주내에 나오게 된다. ◆ "삼성, 회계처리로 문제 못푼다" = 에버랜드가 삼성생명 지분을 원가법 적용대상인 '매도가능 증권'으로 분류한 것은 언제든지 삼성생명을 포기할 수도 있다는 의미를 갖는다. 하지만 삼성이 수년간 재판까지 거쳐가며 이건희 회장의 아들 이재용 삼성전자 상무에게 에버랜드 지분을 넘겨준 것이 결국 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카드→에버랜드로 이어지는 그룹 핵심 지배구조를 물려주기 위한 것이었다는 점에서 '타당성 부족'이라는 딱지를 면하기 어렵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이 때문에 삼성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LG처럼 지배구조를 전면 재편하는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대두되고 있다. 전 금융감독위원회 부위원장 이동걸 박사는 "삼성이 회계처리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하지만 이는 문제를 몇년 미루는 효과밖에 없다"며 "삼성측은 지배구조 개편비용이 막대하다고 주장하나 이는 모든 사업을 다 끌고가려 하기 때문이며 일부 사업 정리 등을 통해 얼마든지 논란 소지없는 구조개편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서울=연합뉴스) 황정우 김종수 최윤정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