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여름 중소제조업 현장의 생산 공백이 우려되고 있는 것은 지난 2003년 9∼11월 합법화 조치를 받은 상당수 외국인근로자들의 체류기간이 오는 6∼8월에 만료되는 반면 이들을 대신할 대체 인력들이 생산 현장에 제대로 공급되고 있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대체 인력 공급에 대한 단기적인 대책을 마련하기 보다는 체류기간이 만료되는 외국인근로자들이 '불법체류자'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이들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는 데 정책의 무게를 두고 있다. 따라서 외국인력을 내보내야 하는 중소업체들이 몸살을 앓고 있다.


◆출국대상 제조인력 8월 말까지 9만명


법무부에 따르면 지난 2003년 8월 이뤄진 합법화 조치로 불법체류에서 벗어난 18만4000여명의 외국인근로자 가운데 현재 한국에 남아 있는 근로자는 약 12만명에 이른다. 이들은 오는 8월 말까지는 한국을 떠나야 한다. 이 가운데 중소제조업체에서 일하는 근로자는 70% 수준인 8만여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합법화 조치 당시 불법체류 중인 외국인근로자 뿐아니라 연수기간이 얼마남지 않은 산업연수생 출신 근로자를 대상으로 체류기간을 연장해주는 특례조치가 취해졌다. 오는 8월 말까지 취업기간이 만료되는 이들 특례 연수생이 7770명에 이른다. 또 같은 기간까지 만기가 돌아오는 산업연수생은 2051명이다. 이에 따라 오는 8월 말까지 중소제조업 현장을 떠나야 하는 외국인근로자는 9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소기업 생산현장 비상


출국 대상 외국인근로자들을 고용하고 있는 중소제조업체들은 이들을 대체할 인력을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특히 외국인근로자의 70% 이상이 근무하고 있는 50인 미만 소기업들은 상황이 심각하다.


대구에 있는 자수업체인 동광섬유의 이동팔 사장은 "11명의 생산직 중 외국인이 5명이고 이 가운데 4명이 2∼3개월 내에 나가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 사장은 "지금도 인력을 구하지 못해 상당수 자수기계를 놀리고 있는 상황에서 숙련공들인 이들마저 나가면 어떻게 공장을 돌려야할지 막막하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대체인력을 신청해도 기존 인력의 출국이 확인된 후 2개월 정도 지나야 받을 수 있다"며 "출국대상자가 근무지를 이탈해 불법체류자가 되면 마냥 기다려야 한다"고 덧붙였다.


미광사의 차정학 사장은 "기존 인력을 내보내고 신규 인력을 받을 때마다 '업무 공백'이 발생하는 게 가장 큰 문제"라며 "이번에는 대체 인원이 많기 때문에 문제가 더 심각하다"고 설명했다. 차 사장은 "주위에 외국인 2∼3명을 고용해 생산하는 영세업체들은 당분간 문을 닫아야할 판"이라며 "신규 인력을 미리 받아 업무를 인수인계하는 기간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책 혼선으로 어려움 가중


서울에서 섬유업체를 운영하는 이모 사장은 최근 기협중앙회에 취업기간이 만료되는 4명의 연수취업자에 대해 대체인력을 신청했으나 "올해 산업연수생 쿼터가 거의 소진됐으니 당분간 기다려야 한다"는 대답을 들었다. 이 사장은 산업연수생 대신 고용허가제로 외국인력을 받기 위해 산업인력공단에 신청하러 갔다가 각서를 요구받았다. 각서의 내용은 고용허가제로 외국인을 고용하면 다시는 산업연수생을 받아서는 안된다는 것이었다.


이 사장은 "한 회사가 두 제도를 다 이용할 수 있도록 바뀌지 않았느냐"고 항의했으나 담당자로부터 "1사2제도안은 아직 법제처에서 검토 중이어서 언제부터 시행될지 알 수 없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는 "10년 동안 써온 산업연수생을 단번에 고용허가제로 돌리기가 부담스러워 좀더 기다려 보기로 했다"며 "고용절차나 신청기관,복지후생 등이 전혀 다른 두 제도 사이에서 인력을 어떻게 충원해야 할지 몰라 어려움을 겪는 사장들이 많다"고 전했다.


정부는 중소제조업의 생산공백보다는 불법체류자 증가를 더 걱정하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불법체류자에 대해 강력한 단속을 펴는 한편 자진 출국자와 이에 협조하는 사업자들에 대해 각종 인센티브를 부여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자진 출국에 협조하는 사업주에 대해 고용허용 인원과 관계 없이 출국시킨 인원만큼 고용할 수 있도록 하고 출국예정 근로자의 체류기간 내에 신규 대체 외국인근로자의 입국이 어려울 경우 해당자의 체류기간을 최장 30일까지 연장해 줄 방침이다.


이에 대해 한 중소기업 사장은 "불법체류자를 줄이기 위한 일시적인 방편일 뿐"이라며 "당장 공장을 돌리기 위해 정부의 단속을 피해가며 불법체류자를 고용하는 업체들도 적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