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구상해온 인사시스템 개선안이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요지는 국회에서 국무위원 전원에 대한 인사청문회 추진이다. 이기준(李基俊)전 교육부총리가 올초 부동산 투기의혹과 아들의 부정입학 논란 등으로 조기 낙마한지 두 달여만에 인사검증 장치의 대안이 마련된 셈이다. 앞으로 당정간, 여야간 협의과정을 남겨두고 있지만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의지와 정치권의 분위기를 감안할 때 성사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국무위원 전원에 대한 국회 청문회가 추진될 경우 우리 헌법의 기본정신에 위배될 소지가 있고, 대통령의 인사권과 국무총리의 각료제청권을 침해할 소지가있는 데다 자칫 인사공백에 따른 장기적인 행정공백이 초래될 개연성도 없지 않다. 따라서 국무위원 인사청문 추진 논의는 4월 임시국회에서 구체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노대통령 지난 1월 인사청문 검토 지시 김만수(金晩洙) 청와대 대변인은 28일 부실검증 논란을 빚어온 인사시스템 문제와 관련, "청와대는 그동안 인사검증시스템 보완을 위해 여러 방안을 강구해왔다"면서 "그 일환으로 전체 국무위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를 도입하는 방안을 추진할것"이라고 말했다.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지난 1월9일 이기준 전 부총리 파문과 관련, 재발방지차원에서 "국무위원의 경우 관련 국회 상임위에서 하루 정도 인사청문을 받는 방안도 검토해 보라"고 지시한 지 처음으로 추진방침을 공식화한 것이다. ◇인사청문 대상 얼마나 늘어나나 현행 인사청문회법에 따라 국회의 인사청문을 거치게 돼있는 행정부 소속 고위공직자는 국무총리와 감사원장을 비롯해 이른바 `빅4'로 통하는 국가정보원장.검찰총장.경찰청장.국세청장 등 모두 6명이다. 청와대 인사수석실이 마련한 이 방안은 총리 1명 뿐인 인사청문 국무위원 대상을 부총리를 포함한 장관 19명 등 총 20명으로 확대하자는 내용이다. 물론 인사청문 확대에 소극적인 열린우리당과의 조율을 거치면서 바뀔 가능성이있지만, 청와대의 제안이 그 골자를 유지한다면 `빅 4'에 대한 현행 인사청문 방식과 같은 `약식 청문회' 모델로 귀착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미국식 인사청문회를 본떠 장관 후보자에 대해 국회 상임위 차원의 청문회를 실시하되 국무총리와 감사원장의 경우처럼 국회에 인준동의권을 주지 않는 방식이다. 이 구상이 법제화된다면 소관 상임위가 국무위원 후보자를 상대로 청문을 실시한 뒤 적격 여부에 대한 의견을 담은 경과보고서를 채택해 대통령에게 전달하게 된다. 대통령이 국회의 의견에 따를지 여부는 헌법상 인사권자인 대통령이 판단할 몫이지만, 청문회 과정에서 언론 등 여론의 정밀 검증과 맞물리면서 자연스럽게 구속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全각료 인사청문 가능할까 청와대의 제안에 대해 한나라당 등 야권이 환영하고 있어 인사청문회 개정을 위한 입법 논의가 급류를 탈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여야 모두 인사시스템에 대한 제도개선 필요성에는 공감하고 있어 이르면당장 내달 임시국회에서 개정안이 통과될 가능성도 커 보인다. 한나라당 강재섭(姜在涉) 원내대표는 상임운영위원회의에서 "인사청문 공직자대상을 확대해 국무위원도 청문회 대상이 되도록 하는 법을 통과시킬 것"이라고 말했고, 맹형규(孟亨奎) 정책위의장은 "4월 임시국회에서 모든 장관이 인사청문회를거치도록 하는 법안을 통과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 한나라당 유정복 의원은 지난 11일 법제처와 국가보훈처 등을 제외한 각부처 장관을 인사청문회 대상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내용의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또 같은 당 박재완 의원은 24일 공정거래위원장.금감위원장.부패방지위원장.인권위원장.방송위원장.한국은행 총재 등 7명에 대해서도 인사청문회를 거치도록 하는법안을 발의했으나, 국무위원에 대한 인사청문 확대 문제가 선결과제란 점에서 당장도입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여당의 경우 일부에서 대통령의 인사권을 고리로 한 야당의 정쟁 도구화를 우려하는 시각이 있지만, 청와대가 도입방침을 공식적으로 표명한데다 인사검증 시비에대한 여론이 좋지 않기 때문에 반대할 명분이 부족해 보인다. 따라서 전 국무위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는 예상되는 부작용을 최소화하는선에서 도입될 가능성이 높다는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인사권 침해 등 논란의 소지는 없나 인사청문회 대상의 전 국무위원 확대 논의가 본격 진행되면 다양한 논란이 일 전망이다. 크게 보면 ▲현행 법체계와의 합치성 및 대통령 인사권 침해 ▲청문결과 구속력 ▲청문회 정쟁화 등을 둘러싼 설왕설래 등 세가지다. 특히 일각에서는 국무위원들을 인사청문 대상에 포함시키는 것을 놓고 `위헌 가 능성'을 거론하기도 한다. 현행 헌법에 따르면 국무총리는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돼 있으나 국무위원의 경우에는 국무총리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돼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무위원 임명과 관련해 국회에 새로운 `권한'을 부여하기 위해서는 인사청문 대상을 규정하고 있는 국회법을 개정할 것이 아니라 헌법을 개정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이는 대통령의 고유권한인 국무위원에 대한 임명권을 침해하는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 실제 열린우리당 오영식(吳泳食) 공보담당 원내부대표는 "원내 지도부로서는 현행 법체계와 합치되는지 여부와 대통령 인사권이 침해될 소지가 있는지를 신중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신중론'을 폈다. 이와 함께 국회의 인사청문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일 지에 대해 다양한 의견이 개진될 수도 있다. 청와대는 일단 국정원장 등 `빅4'와 동일하게 인사청문을 받되 국회로 하여금 인준은 받지 않도록 한다는 큰 방향을 정해놓고 있다. 즉 법적으로는 청문결과에 구애받지 않겠다는 것이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인사청문 결과가 법적 구속력을 가질 경우 대통령의 인사권을 침해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점에서 위헌 가능성이 있다"고 말해 이런 관측을 뒷받침했다. 결국 국무위원들을 대상으로 한 인사청문 결과는 `법적 구속력'이 아닌 `정치적 구속력'을 띄게 될 가능성이 높은 셈이다. 하지만 이는 청문 결과를 둘러싼 정치권이 무분별한 정쟁을 양산할 공산도 배제할 수 없다. 지난 2003년 고영구(高泳耉) 국정원장에 대한 청문회가 대표적인 예이다. 당시 국회는 청문결과 `부적절' 의견을 낸 반면 노 대통령이 고 원장을 임명, 정국이 급속히 얼어붙은 전례가 있다. 또한 인사청문회 자체가 정치권의 `정쟁의 수단'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가령 인사청문회 일정 자체 등에 대한 의도적 지연이 이뤄질 경우 이는 고스란히 정부 행정의 부담으로 넘겨지게 된다. 나아가 논의 진행과 함께 청와대로 비난에 직면할 소지가 다분하다. 추후 있을 수 있는 국무위원에 대한 인사검증 책임을 국회와 나눠갖기 위한 것 아니냐는 주장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한 청와대 관계자는 "인사청문회의 전 국무위원 확대 문제는 어떻게 보면 제도의 문제라기 보다는 이를 바라보는 인식, 문화의 문제일 수 있다"며 "제도적으로 안착하는 것도 우리 정치문화의 성숙도에 달려있다"고 말했다. jah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