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23일 그 어느 때보다강한 어조로 독도 문제 등 한일관계에 대한 분명한 입장과 원칙을 천명했다. 지난 17일 국가안보회의(NSC) 상임위원장인 정동영(鄭東泳) 통일부장관을 통해발표한 `대일(對日) 신독트린'의 수위를 훨씬 뛰어넘는 초강경 발언들을 쏟아냈다. 노 대통령은 이날 `최근 한일관계와 관련하여 국민 여러분에게 드리는 글'을 통해 "각박한 외교전쟁도 있을 수 있을 것", "국수주의자들의 침략적 의도를 결코 용납해선 안된다"는 등의 극단적 표현을 불사했다. 전례없이 "지난날 침략을 정당화하고 대한민국의 광복을 부인하고 있다"거나 "일본 집권세력과 중앙정부의 방조아래 이뤄지고 있다"는 단정적인 표현도 동원했다. 지난 1995년 10월 "일본이 식민지배시절 한국에 좋은 일을 많이 했다"는 일각료망언에 김영삼(金泳三) 전대통령이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고 반응했던 이후 가장 강경한 기조라는 지적이다. 특히 노 대통령이 그동안 극도의 자제력을 보여온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에 대해 "일 총리의 신사참배는 이전에 일본 지도자들이 한 반성과 사과의 진실성을 훼손하는 일"이라고 직격탄을 날린 것은 우리정부의 향후 대일 강경외교를 시사한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아울러 정동영 장관의 대일 신독트린 발표에 대해 "국내용"이라고 평가절하한데대한 경고의 의미도 담고 있는 듯하다. 무엇보다 이날 노 대통령이 밝힌 메시지의 핵심은 "침략과 지배의 역사를 정당화하고 또다시 패권주의를 관철하려는 일본의 의도를 더이상 좌시하지 않겠다"는 표현으로 요약된다. 지난 98년 체결된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에 의거, 미래지향적 양국관계를 위해때로는 침묵하고 때로는 자제해 왔지만 독도 망동과 교과서 왜곡, 일본 총리의 신사참배 등 패권주의적 작태를 보이는 일본측에 더이상 기대할 게 없다는 판단에 따른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사실상 `조용한 외교'의 포기 선언이며 앞으로 양국간 극단적인 외교적 분쟁도 불사하겠다는 단호한 의지의 표현이라는 관측도 있다. 노 대통령은 집권후 동북아 시대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북핵문제 해결을 위해 일본과의 협력강화가 중요한 변수로 떠오르면서 정부는 미온적 대응이라는 비판을 무릅쓰고 `과거사 해결은 일본 스스로'라는 원칙을 고수, 양국간 관계 강화에 정성을쏟아왔다. 그러나 최근 일본의 급격한 우경화와 의도적인 독도 분쟁 촉발, 조직적인 교과서 왜곡 움직임은 우리 정부의 `선의'를 왜곡함으로써 공동 파트너십의 근간을 흔들어온게 사실이다. 노 대통령이 이날 대국민 글을 통해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미래가 달린 문제에 정부가 단호히 대응, 시정을 요구하지 않을 수 없다"고 단호한 의지를 피력한 것도 따지고 보면 일본에 대한 통첩의 의미도 있다. 노 대통령의 이같은 의지 천명은 그러나 동북아와 전세계 파워게임이라는 좀더큰 그림과 구도를 상정한 발언일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독도 영유권 분쟁을 둘러싼 한일갈등, 북핵문제로 촉발된 미일동맹 강화, 대만문제를 둘러싼 미.중간 대립구도, 일본의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 노력 등 급변하는 국제정치의 역학구도속에서 자주노선을 통한 동북아 균형자 역할을 담당하겠다는 원대한 뜻을 드러낸게 아니냐는 해석이다. 앞서 노 대통령이 전날 육군3사 졸업식에서 "우리는 이제 한반도 뿐만 아니라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한 균형자 역할을 해나갈 것"이라며 "따질 것은 따지고 협력할 것은 협력하면서 주권국가로서의 권한과 책임을 다할 것"이라고 밝힌 것은 이런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또한 노 대통령이 이날 "일본이 보통의 국가를 넘어서 아시아와 세계의 질서를 주도하는 국가가 되려 한다면 역사의 대의에 부합하게 처신하고 확고한 평화국가로서 국제사회의 신뢰를 회복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 점은 눈여겨볼 대목이다. 심지어 노 대통령은 "국제사회도 일본으로 하여금 인류의 양심과 국제사회의 도리에 맞게 행동하도록 촉구할 의무가 있다"면서 "우리는 국제사회에 이 당연한 도리를 설득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명확한 표현은 자제했지만 일본의 진실한 반성과 노력이 없을 경우 일본의 유엔안보리 진출이 쉽지는 않을 것이며, 경우에 따라서는 우리가 행동에 나설 수도 있음을 시사한 측면도 없지 않다. 노 대통령은 그러나 이런 정치적 문제와 문화.경제적 교류와 협력은 별개 차원에서 진행.유지시키겠다는 뜻을 분명히했다. 김만수(金晩洙) 청와대 대변인도 간담회에서 "독도 문제 등은 그것대로 하고,교류.협력 등 기존 일정 중단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게 노 대통령의 뜻"이라고 밝혔다. 결국 노 대통령은 일 극우단체 `새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새역모)이 만든2005년 개정판 역사왜곡 교과서에 대한 문부성의 검정을 앞두고 일본 지성의 자각과 맹성을 다시한번 촉구하면서 앞으로 성의있는 조치가 없을 경우 극단적인 외교전도불사하겠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한 것이라는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cbr@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