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성 없는 외교전쟁'이 시작된 것인가. 노무현 대통령이 최근 한·일관계 문제와 관련,전면에 나섰다. 지난 17일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를 통해 발표된 정부 차원의 '대일 신독트린' 발표에 이어 노 대통령은 23일 '대국민 담화' 성격의 글을 통해 더 강경한 입장을 천명했다. 노 대통령이 독도 문제 및 교과서 왜곡 등 최근 현안과 관련,직접 목소리를 낸 것은 지난 3·1절 행사 때 "과거의 진실을 규명해 사과하고 배상하고 화해해야 한다"고 언급한 이래 처음이다. 4∼5일 동안 직접 문장을 가다듬었다는 노 대통령의 대국민 메시지에는 최근 일본 극우보수 세력들의 준동에 대한 '격노'가 구석구석 배어 있다. 또 그동안 수차례 회동으로 상당한 친분관계를 유지해 온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에 대한 섭섭함과 배신감도 느낄 수 있는 내용이었다. 1백년 전의 러·일 전쟁을 직접 언급하면서 "일본이 한반도를 완전히 차지하기 위해 일으킨 한반도 침략전쟁"이라는 언급에서는 노 대통령의 인식 수준이 일반 국민들의 분노와 크게 다르지 않음이 드러났다. 또 "감정적으로 강경 대응을 않고 전략을 가지고 신중하게 그러나 적극적으로 대응해 나가겠다. 멀리 내다보고 꾸준히 대응하겠다"고 강조했다. 일본이 '과거 역사'를 왜곡시키는 직·간접적인 행위를 하는 한 양국간 갈등이 장기화될 것임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외교 전문가들은 "일본이 독도 문제를 완전히 포기하고 유엔 안보리 진출에 한국의 지지를 얻어내는 등의 '빅딜'이 성사되지 않는 한 최근의 갈등 구조는 장기화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견해를 냈다. 또 "일본의 지도자들이 양국간 발전을 위한 자국내 분위기 조성에 좀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것"이라는 해법도 제시했다. 노 대통령은 "한·일관계의 미래를 위해 걱정스러운 마음을 억누르고 하고 싶은 말을 참아왔다"며 "그러나 국민들이 느끼는 노여움과 답답함을 조금이라도 풀어드리기 위해 글을 썼다"고 밝혔다. 격앙된 국내 여론에도 불구하고 침묵하고 있던 노 대통령이 정면 대응에 나섬에 따라 앞으로 경제협력과 문화교류 등 한·일간 교류 사업 전반에 적지 않은 파장이 예상된다. 김만수 청와대 대변인은 "독도 문제와 역사교과서 바로잡기 등과 별도로 경제·문화 교류는 예정대로 적극적으로 협력한다"고 강조하면서도 "일정부분 부담이 있을 수 있을 것이며 다만 극복할 수 있는 수준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노 대통령도 "경제·사회·문화 교류가 위축되고 그것이 우리 경제를 어렵게 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생길 수 있지만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좋을 것"이라며 "이제 우리도 역량이 있고 꼭 감당해야 할 부담이라면 의연하게 감당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허원순 기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