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균(丁世均) 원내대표 체제의 출범을 계기로 열린우리당의 실용주의 행보가 한층 가속화되고 있다. 지난해 개혁우위의 정책기조에 밀려 논의 자체가 조심스러웠던 증권관련 집단소송제와 출자총액제한제도 등 재벌관련 제도가 다시 검토대상에 오르는 등 정책 전반에 걸쳐 실용주의 색채가 선명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24일 오후 이해찬(李海瓚) 총리 주재로 열린 고위 당정간담회는 여당의 정책좌표가 실용주의에 정조준하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 자리였다. 여당의 신임 원내지도부와 정부 각료들간 상견례를 겸한 간담회에서 당정은 여야간은 물론 여권 내부에서도 목소리가 엇갈리고 있는 3대 경제법안을 2월 임시국회에서 반드시 처리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증권관련 집단소송법 개정안, 경제자유구역 및 제주국제도시 외국 교육기관 설립운영 특별법 제정안, 한국투자공사(KIC)법 제정안이 그것. 이 가운데 집단소송법 개정안은 과거 분식회계를 집단소송 대상에서 2년간 제외해달라는 재계의 청원을 기초로 마련된 법안으로, 현실론과 원칙론이 첨예하게 맞서고 있는 `뜨거운 감자'로 볼 수 있다. 작년말 개정 여부를 둘러싸고 재계와 시민단체는 물론 정부 부처간, 상임위간입장이 극명하게 갈린데 이어 급기야는 당정이 `2년 유예'안을 마련했다가 소관 상임위인 법사위 여당 의원들의 제동으로 무산된 바 있다. 당정이 이 법안을 첫머리로 앞세워 적극적 처리의사를 표명한 것은, 재계의 요구를 수용함으로써 올해 정부가 추진하려는 종합투자계획 등 경기활성화 프로젝트에 필수적인 대기업들의 협조를 이끌어내기 위한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재계의 `숙원'이라고 할 수 있는 출자총액제한 제도에 대해 원혜영(元惠榮) 정책위 의장이 취임 첫날부터 원칙견지를 전제하면서도 부분적 완화 가능성을 시사한것은 여당의 실용주의 노선을 가감없이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원 의장은 25일 오전 SBS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도 "원칙과 유효성이 지켜지는가운데 현실적이고 합리적으로 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을 거듭 밝혔다. 임채정(林采正) 의장도 이날 오전 집행위원회에서 출자총액제한제도와 관련, "공정한 경쟁체제와 투명성이 확보되면 불필요한 제도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며 "대상 축소 등은 현실적으로 검토해볼 만한 사항"이라고 말했다. 우리당이 이날 오전 개최한 `비전 2005 위원회' 전체회의는 정책방향을 경제살리기와 실용주의 코드에 맞춰 통합 재조정하는 자리가 될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이 같은 실용주의 행보에 마뜩치 않아 하는 당내 분위기도 엄존하고 있어 앞으로 관련 입법논의가 매끄럽지 못할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정무위 소속의 한 의원은 출총제 완화와 관련, "예외규정만 잔뜩 늘려놓은 출총제를 다시 완화한다는 것은 제도자체를 무력화하는 것"이라고 지적했고, 법사위 관계자는 증권 집단소송법 개정에 대해 "다시 검토를 하겠지만 재계의 요구대로 법 적용을 유예하기에는 납득하기 어려운 대목이 많다"고 부정적 견해를 보였다. (서울=연합뉴스) 노효동기자 rhd@yonhap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