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해 보혁논쟁과 세대간 갈등의 한복판에 있었던 국가보안법 개폐 논의가 결국 매듭을 짓지 못한 채 해를 넘기게 됐다. 여야는 30일 밤 김원기(金元基) 국회의장 주선으로 열린 원내대표회담에서 말도많고 탈도 많았던 국보법 개폐문제를 내년 2월로 유보하는 선에서 `봉합', 국보법논쟁 제2막의 무대를 예비해 놓았다. 어떤 형태로 귀착될지는 예단할 수 없지만, 진보진영에서는 냉전시대의 청산할유물로 냉소받고, 보수진영으로부터는 국가정체성의 증좌로 인식돼 온 국보법은 새로운 남북시대의 전개와 국민정서의 변화에 맞춰 현재의 틀과 내용에 큰 변화를 겪게 될 것임은 틀림없어 보인다. 특히 여야가 이날 막바지 협상에서 개정과 폐지의 중간지대인 `대체입법'에서공통분모를 찾았다는 점에서, 2월 임시국회에서 이뤄질 국보법 논의의 `입구'는 대체입법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형법에 대한 특별법의 지위를 지닌 국보법 56년의 역사는 형법보다도 오래된 것이다. 1948년 군내 좌익세력이 주도한 여순반란사건이 발생하자 당시 우리 사회에 광범위하게 분포한 좌익세력의 국가전복 가능성에 위협을 느낀 이승만(李承晩) 정부는국보법 제정을 추진했다. 5년 후인 1953년 형법을 제정할 당시 내란죄와 외환죄 등 국보법의 관련 규정들이 형법 조문에 포괄적으로 정비됐다. 당시 형법 초안자의 한 사람이었던 김병로 전 대법원장이 "보안법 처벌 대상을처벌하지 못할 형법 조문이 없다"고 발언할 정도였지만, 국보법의 생명에는 별다른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남북대치관계라는 특수한 상황과 국보법이라는 강력한 도구로 국민을 통제하려했던 정권의 요구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라는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진보당 조봉암 사건을 비롯해 공권력에 의한 대표적인 인권탄압 사례로 꼽히는인혁당, 민청학련 사건 등이 모두 국보법에 의해 처벌된 케이스였다. 정권이 바뀌는 동안 국보법의 조항은 끊임없이 보강됐다. 이승만 정부는 6.25 전쟁 이전에 2차례 법 개정을 통해 국보법 위반자에 대한법정최고형을 사형으로 상향조정하고, 적용범위도 확대했다. 또한 국보법 사범에 대한 재판을 단심제로 하는 개악도 이뤄졌다. 4.19혁명 이후 민주당 정권에서 이뤄진 4차 개정에서는 국보법의 대표적인 반(反) 인권조항으로 지적되는 불고지죄가 도입됐다. 박정희(朴正熙) 정부는 반공법과 중앙정보부법 등의 제정을 통해 국보법의 위력을 배가시켰고, 전두환(全斗煥) 정부는 권위주의 체제에 대한 반대를 국보법을 이용해 진압하려 했다. 80년대 후반을 지나 노태우(盧泰愚), 김영삼(金泳三) 정부가 탄생하면서 국내외적으로 국보법 폐지여론이 본격적으로 제기됐다. 특히 지난 90년 헌법재판소가 국보법 7조 찬양고무죄에 대해 내린 `국가의 민주적 기본질서에 대해 현존하고 명백한 위협을 가하지 않는 한 처벌해서는 안된다'는결정은 국보법 7차 개정의 계기가 됐다. 91년 5월 민자당은 찬양고무와 회합통신 등의 처벌 요건에 `국가의 존립, 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정을 알면서'라는 부분을 추가해 국보법의 남용을 최대한 제한했다. 그러나 국보법 폐지주장은 더욱 확대됐다. 지난 92년 유엔 인권이사회는 국보법이 인권신장의 걸림돌이므로 점진적으로 폐지하라고 권고했고, 98년에는 국보법 7조가 국제 인권규약에 규정된 표연의 자유를 위반한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그러나 국보법의 생명은 그대로 유지됐다. 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은 "인권을 침해하지 않는 방향으로 국가보안법을 고치겠다"고 선언했지만 국보법 개정은 이뤄지지 않았다. 정부의 대북포용정책에도 불구하고 통일전선전술과 선전차원의 평화공세를 병행하는 이중적 대남전략을 지속하는 북한 정권에 대한 국민의 불안감이 완전하게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노무현(盧武鉉) 대통령도 "국보법은 박물관에 보내야 한다"는 말로 국보법 폐지론에 힘을 실어줬지만 국민 여론을 등에 업은 한나라당의 반대에 부딪혔다. 곡절 끝에 이날 여야 원내대표회담에서 국보법은 `국가안전보장특별법'으로 명칭을 변경하는 대체입법의 목전까지 갔으나, 폐지를 강력히 주장했던 열린우리당 강경파들에 의해 역설적이게도 생명이 연장됐다. 국보법은 그 내용보다는 상징성 때문에 논리보다는 정서에 좌우되는 측면이 강하다는 점에서 양극단을 오가는 개.폐논쟁으로는 접점찾기가 여전히 쉬워보이지 않은 점을 감안할 때 대체입법이 문제해결의 `출구'쪽에 가까워 보인다. (서울=연합뉴스) 고일환기자 koma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