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상장·등록기업들의 부채비율이 세계 최저 수준인 것은 한마디로 '과소투자' 때문이다. 지난 90년대 과잉투자가 외환위기의 직접적인 원인이 됐다면,현재의 경기침체 장기화 우려는 기업들의 투자 저조에 원인이 있는 것이다. 국내 기업들의 재무제표상 수치로 나타나는 재무구조만 놓고 보면 세계 어느 기업에 견줘도 손색이 없지만,정작 미래 성장성 면에선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투자부진→중소기업 가동률 저하→고용악화→내수침체→경제활력 저하'라는 한국식 불황의 고리를 끊지 않고선 빠른 경기회복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낮은 부채비율 이젠 걱정거리 한국은행이 23일 내놓은 '3·4분기 기업경영분석 결과'를 보면 국내 상장·등록기업들의 부채비율은 2001년말 2백19.5%에서 3년도 채 안돼 1백% 미만으로 내려갔다. 특히 제조업 부채비율은 88.9%에 불과해 사업을 하는 데 '남의 돈'을 '내 돈'보다 10% 이상 덜 쓰는 상황이 됐다. 수출호조로 20%대 매출 증가세를 누리면서도 돈을 버는 족족 빚 갚는 데 주력한 결과다. 그러다 보니 재무구조가 개선될수록 투자관련 지표는 바닥을 길 수밖에 없다. 기업의 설비투자 수준을 나타내는 유형자산 증가율은 2·4분기 1.1%에서 3·4분기 0.5%로 떨어졌다. 투자를 안해도 너무 안한다는 얘기다. 특히 제조업체는 총자산이 2.4% 늘었지만 유형자산 증가율은 그 절반(1.2%)에 불과했다. 그마나 제조업 유형자산 증가도 상대적으로 산업 후방효과가 적은 반도체 전기전자 등 일부 IT(정보기술)업종에서 이뤄졌다고 한은은 지적했다. ◆수익성은 되레 악화 이처럼 겉으로 보이는 재무구조는 개선됐지만 기업의 내실을 가늠하는 수익성은 점차 악화되고 있다. 원자재값 급등으로 매출원가가 가파르게 상승했기 때문이다. 조사대상 기업들의 매출액 경상이익률은 1·4분기 12.4%,2·4분기 10.2%에 이어 3·4분기엔 9.9%로 떨어졌다. 특히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LG전자 포스코 SK㈜의 경상이익률 역시 같은 기간 20.3%,18.8%,16.7%로 내리막길을 걸었다. 5대기업을 제외한 나머지 기업의 경상이익률은 이미 7.5%까지 떨어진 상태다. 수익성 분포에서도 경상이익률이 20% 이상인 우량기업 비중은 7.7%로 전분기(9.5%)보다 1.8%포인트 떨어진 반면 경상이익 적자기업 비중은 26.9%에서 29.5%로 높아졌다. 변기석 한은 경제통계국장은 "전반적으로 기업들의 외형은 커졌으나 수익성은 계속 나빠지고,투자가 여전히 부진한 가운데 재무구조만 개선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고 평가했다. 김용준 기자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