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대치정국의 돌파구를 마련할 것이라는 기대감 속에서 21일 열린 여야 지도부 `4자회담'은 초반부터 팽팽한 신경전이 벌어졌다. 열린우리당 이부영(李富榮) 의장과 천정배(千正培) 원내대표, 한나라당 박근혜(朴槿惠) 대표와 김덕룡(金德龍)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10시 정각 국회 본청 2층 귀빈식당에서 회동했다. 특히 여야의 당 대표와 원내대표가 자리를 함께 하는 `4자 회담' 형식이 사상최초인데다, 이부영 의장과 박근혜 대표가 공식석상에서 협상파트너로 대좌하기는처음이어서 주목을 끌었다. 먼저 회의장에 도착한 우리당 이 의장과 천 원내대표는 이어 입장한 박 대표와김 원내대표에게 "어서 오십시오"라는 인사말을 건네며 반갑게 맞았다. 이어 이 의장과 박 대표가 악수한 상태로 4명이 함께 나란히 사진기자들 앞에서포즈를 취했고 이어 원탁테이블에 둘러 앉았다. 원탁테이블에는 이 의장과 박 대표가 가운데 앉았고 그 양 옆으로 천 원내대표와 김 원내대표가 각각 자리를 잡았다. 테이블에 착석한 뒤 이 의장은 "회담에 응해줘 고맙다"고 말문을 연 뒤 "국민들이 지켜보고 기대하고 있는 만큼 여야가 좋은 성과를 내도록 하자"며 "야당의 의사를 충분히 경청하고 존중하겠다"고 가벼운 덕담을 건넸다 그러나 박 대표는 의례적인 화답 대신 작심이라도 한 듯 "다수당이 소수당의 의견을 존중해주지 않으면 소수당이 설 자리가 없다. 소수당은 양보할 것이 별로 없다"고 일찌감치 선을 그었다. 박 대표는 이어 "국가보안법 등 4대 법안은 우리 나라의 앞날과 국민들에게 큰영향을 미치는 법"이라며 "시급한 민생법안도 아닌 만큼 충분히 공감대를 갖고 논의해 처리해야 한다"고 4대 법안의 `합의처리' 방침을 강조했다. 그러자 이 의장은 "좋은 의견"이라고 답하고는 "여야 입장을 떠나 국민의 눈을두려워하는 마음으로 협상에 임하자"며 "야당도 여당 입장을 감안해 달라"고 되받았다. 이어 이 의장은 "자세한 얘기는 그만하자. 갈길이 멀다"고 회의를 서두르려고하자 박 대표는 느닷없이 "오늘 회의를 공개적으로 하면 좋지 않겠느냐"고 제의했고이에 당황한 이 의장은 "자세한 회의결과는 추후 공개하자"고 서둘러 진화했다. 그러나 이후에도 양측의 신경전은 계속돼 박 대표와 천 원내대표에도 가벼운 설전이 오갔다. 천 원내대표는 "여야가 생각이 다를 수 있지만 얼마든지 합리적 토론을 거쳐 처리할 수 있다"며 "여당이 많이 양보하겠다"고 말하자 박 대표는 곧바로 "합의처리에대해 부담을 느낄 필요가 없다"고 응수했다. 박 대표는 "친일법도 입장차가 있지만 회의에 회의를 거듭한 끝에 결론을 내지않았느냐"면서 "합의처리를 한다는 것은 충분히 논의하자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어느 순간 일사천리로 처리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그러자 천 원내대표는 "언쟁이 불거져서 회의에 도움이 안될 것 같다"며 주위를정리하고는 회의를 시작했다. 1시간 40여분간 배석자 없이 진행된 오전 회담은 가시적 성과물을 내놓지는 못했지만 여야간 입장차를 좁히는데는 어느정도 성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4대법안 처리 등 핵심쟁점을 둘러싸고 여야간 이견이 완전히 해소되지는 못했지만 회담직후 참석자들이 "도움이 됐다" "충분히 의견이 오갔다"며 비교적 긍정적 반응을 보여, 서로 타협할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우리당 이부영(李富榮) 의장은 회담이 끝난 직후 밝은 표정으로 회의장소를 떠나면서 기자들에게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 의장은 특히 "서로 나라와 국민을 걱정한다는 것을 알게 됐고, 대화와 타협을 통해 국민에게 선물을 줘야겠다는 절박한 심경도 갖게 됐다"면서 "총선 이후 여러달 갈등과 분열 일으켜왔는데, 이렇게 갈 수 없다는 인식도 함께 했다"고 말했다. 이 의장은 그러면서 "대표회담이 더 일찍 열렸으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고 말해,이번 회담이 서로간의 `불신'을 해소하는데 나름대로 역할을 했음을 시사했다. 천정배(千正培) 원내대표는 한걸음 더 나아가 "상호간 입장을 이해하고 차이가 있더라도 실질적으로 타협할 가능성이 생기는 것 같다"면서 "매우 유용한 틀인 것 같다"고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한나라당 박근혜(朴槿惠) 대표도 회의 직후 담담한 표정으로 "아직 결론이 난것은 없다"고 전제하면서도 "국가보안법을 비롯해 4대법안에 대해 여야가 충분히 의견을 나눴다"고 말했다. 양당 지도부는 오후 3시30분 회담을 재개하기에 앞서 각기 당내 의사결정기구를 통해 협상 진행상황을 점검하고 대책을 논의했다. 오전 회의가 종료된 뒤 이 의장과 천 원내대표는 홍재형(洪在馨) 정책위의장을 비롯해 김희선(金希宣) 의원 등 상임중앙위원과 함께 국회 의장실에서 도시락으로 오찬을 함께 하며 오후 회의 대책을 숙의했다. 이 의장은 기자들과 만나 "4대 입법과 투자관련 3개 법안에 대해 서로 입장을 이야기하고 이해하는 정도였지만, 서로 입장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며 "회담이 좀 더 일찍 열렸으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며 만족감을 표시했다. 천 원내대표도 "여야 대표가 회동하니 도움이 된다"며 "차이가 있더라도 실질적으로 타협 가능성이 있는 것 같다"고 기대했다. 천 원내대표는 오찬 후 4대 입법의 연내처리를 주장하며 농성에 돌입한 당내 강경파의 농성장에 찾아 안부인사를 했다. 여당 핵심관계자는 "오후 회의에서는 구체적인 절충안을 논의하게 될 것"이라며 "국보법의 처리 시기를 언제로 결정하느냐가 핵심 쟁점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여당 지도부는 당초 오후 3시30분 회의를 재개키로 한 합의에 따라 회의 시작 5분 전 귀빈식장에 입장해 한나라당 지도부를 기다렸다. 이 의장은 기자들에게 "만약 협상이 타결되면 `박 대표 드디어 타결'이란 제목으로 기사를 써달라"고 주문, 오전 회의에서 주로 박 대표가 발언권을 갖고 야당의 입장을 적극 개진했음을 시사했다. 천 원내대표는 한나라당 지도부의 입장이 늦어지자 열차가 연착될 경우 요금을 일부 환불해주는 제도를 언급하면서 "15분 늦을때마다 법안을 하나씩 양보하라고 하겠다"는 농담을 건네기도 했다. 천 원내대표는 회의개최 예정시간에서 20여분이 지난 시각에 `한나라당 회의가 있으니 오후 회의를 4시30분으로 연기해달라'는 김덕룡 원내대표의 전화 요청을 받고 이를 받아들였다. 박 대표와 김 원내대표는 이한구(李漢久) 정책위의장과의 회의 때문에 오후 회의를 늦춰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당 일각에서는 야당 지도부가 오후 회의 직전 야당내 강경파로 분류되는 이정책위의장과 따로 만났다는 사실을 전해 듣고 "야당이 강경한 자세로 급변하는 것이 아니냐"고 우려하는 모습도 보였다. (서울=연합뉴스) 노효동 류성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