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 `4대 입법' 문제를 쟁점으로 두고 벌여온 국회 정상화 협상이 지루한 감정싸움 속에 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여야는 20일에도 협상에서 별다른 진척을 이루지 못한 채 `협상시한 최후통첩'과 `협조불가 외길선택'이라는 배수진을 친 채 대립했다. 양당 모두 협상의 전권을 지도부에 일임했다고는 하지만, 지도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어 협상의 걸림돌 제거가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與 `협의처리' vs 野 `합의처리' 협상을 근본적으로 어렵게 하는 문제는 4대 입법의 처리방식에 있다. 한나라당은 4대 입법에 대해 `합의처리'를 주장하는 데 반해 우리당은 `협의처리'가 전제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여당이 말하는 협의처리는 국회법에 따라 "합의가 안되면 표결로 하자"는 것과다름 없다. 이에 따라 여당은 민주주의의 절차상 기본 원칙이라는 다수결 원리를 강조하면서 처리시점을 못박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철저하게 법의 논리를 중시하는셈이다. 반면 한나라당의 합의처리 요구는 대의정치의 근본 원리인 여론에 바탕을 두고있다. 특히 4대 법안의 핵심 쟁점인 국가보안법 문제에 대해 개정 내지 유지를 바라는 의견이 폐지를 원하는 의견보다 높게 나타나거나 엇비슷한 여론조사 결과도 한나라당이 목소리를 높이는 배경이 되고 있다. ◇상호 불신과 의회 현실 협상에 임하는 양측의 시각차에는 상호 불신감이 짙게 깔려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한나라당은 국보법 처리와 관련해 원탁회의 같은 별도기구를 구성해 충분하게 토론하고 합의를 도출해내자고 제안했지만, 이에 여당은 `지연전술'이라고 의구심을 나타내면서 법사위 등 표결이 보장된 국회 틀속 논의를 요구하고 있다. 여당이 주장하는 `시간끌기'의 사실 여부를 떠나 한나라당의 합의처리 요구에도일리가 없지 않다. 공정거래법 개정안만 해도 여야가 `토론 후 표결'이란 협의처리원칙에 합의했지만 금융의결권 등 핵심 쟁점에 대한 협의 과정에서 한나라당과 재계의 의견은 거의 반영되지 않았다. 여당 또한 합의처리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현실적 측면이 있다. 양당만 참여하는원탁회의로 갈 경우 잠재적 원군인 민주노동당과 민주당이 "밀실 야합"이라고 반발할 게 불보듯 뻔한 데다 다수당이 소수당과 사사건건 합의해줘야 하는 나쁜 선례가17대 국회 내내 지속될 수 있다는 게 여당의 우려다. ◇지도부 정치력 부재 양측의 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지면서 `단골 메뉴'로 등장한 것이 지도력 부재론이다. 여당측은 "원내대표 회담에서 의견접근을 봐도 한나라당 박근혜(朴槿惠) 대표에 의해 묵살된다"고 하고, 한나라당측은 거꾸로 "천정배(千正培) 원내대표가 386등 재야 출신 강경파들에 치여 소신 없이 이리저리 끌려다닌다"고 불만을 표시한다. 그러면서 양측은 "우리 내부에는 이견이 없다. 저쪽이 문제"라고 손가락질 하고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먼저 여당의 경우 4대 입법 협상을 지도부에 일임했지만재야.운동권 출신 의원들이 국보법 연내폐지 거리행진을 하고, 재야파가 별도 모임을 갖고 지도부를 압박하는 형국이다. 특히 장영달(張永達) 염동연(廉東淵) 의원 등내년 전대 출마를 결심한 일부 중진들은 당지도부에 대해 "지도력이 없다"고 공개적으로 직격탄을 날리기도 했다. 한나라당 역시 박 대표와 김 원내대표 간에 여당을 대하는 자세에서부터 차이가감지되고 있다는 관측이 적지 않다. 대야 기조에 대해 박 대표는 강경, 김 원내대표는 온건 기류라는 것이다. 정치권 관계자는 "이철우 의원 파문과 국보법 개정 진통에서 보듯 대구.경북 중심의 보수강경파의 논리에 당지도부가 휘둘리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해법 없나 국보법을 연내처리하지 않겠다던 천 원내대표는 20일 "한나라당의 연내처리 유보제안은 결단코 받아들일 수 없다"며 강경으로 돌아섰다. 이에 대해 "4대법안의 합의처리를 약속하면 즉시 등원하겠다"던 박근혜 대표는 "여당이 4대법안을 연내 강행처리하겠다고 하니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상황"이라고 경고했다. 이처럼 양측이 지난 3월 대통령 탄핵소추 사태에 버금하는 대격돌을 불사하겠다는 태세를 보이고 있지만 일말의 희망까지 완전히 접기는 아직 이르다는 관측이 많다. 대화와 타협을 중시하는 김원기(金元基) 국회의장이 소신을 버리지 않고 있는것도 이런 관측을 뒷받침한다. 김 의장은 특히 국보법 문제에 대해 "법사위 차원을떠난 문제"라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어 국보법 처리는 내년초로 넘기는 대신 한나라당이 나머지 3대 법안과 민생경제 법안 처리에 최대한 협조하는 것으로 절충점이 모아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결국 `공'은 과반수 집권여당에 있는 셈이다. 한나라당측은 이날도 "여당은 먹고 사는 문제가 중요한지 이념과 명분이 중요한지 양자택일하라"고 압박했다. (서울=연합뉴스) 김재현 김병수기자 jahn@yna.co.kr bingso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