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시장경제 사수론' 발언으로 뉴스의 중심에 서있는 이헌재 부총리 겸 재경부장관이 돌연 입을 닫고 침묵에 빠져들었다.

이 부총리는 22일 오전 경제장관간담회를 주재하는 등 평소와 다름없이 공식일정을 소화했지만 언론의 관심이 집중됐던 정례브리핑은 취소했다.

이 부총리는 김성진 공보관을 통해 "특별히 언급할 만한 새로운 정책이슈가 없어 정례브리핑을 하지않는다"고 밝혔다.

출입기자단은 이 부총리의 정례브리핑 취소와 관련 "언론과 출입처(재경부)간의 사약정을 부총리가 파기한 것"이라며 기자회견에 응해줄 것을 거듭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 부총리의 갑작스런 브리핑 취소는 뉴스의 중심에서 잠시 비켜서 '냉각기'를 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그동안 정권의 진보세력에 대해 할 말을 다한만큼 확전은 하지않겠다는 의미로 보인다.

이 부총리는 지난 15일 여성 경총 강연에서 386세대의 경제무지론을 설파한 이후 '국민은행 자문료 파문', '사의표명설', '시장경제 사수론' 등을 거치면서 정권의 핵심인 386세대와 대립각을 세워왔다.

이 부총리는 국민은행 자문료 파문에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돈 문제와 관련 결벽에 가까울 정도로 '깨끗함'에 집착했던 이 부총리로서는 '아닌 밤중에 홍두깨'였던 셈이다.

이 부총리는 감사원이나 금감원, 청와대 사정라인에서 문제가 없다고 결론을 낸사안이 언론에 흘러나온 이후 자신의 경제정책에 불만을 가진 일부 세력이 명백한의도를 갖고 '언론 플레이'를 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지우지않고 있다.

이 부총리는 아파트 분양가 공개, 고위공직자 주식백지신탁, 과도한 노조활동의방임, 반기업 정서, 언론과의 불필요한 긴장관계 등 정부내 진보세력의 입장에 대해시장경제에 반하는 것이라며 반대해왔다.

이 부총리는 지난 2월 취임 이후 가라앉는 경제를 살리기 위해 의욕적으로 각종정책을 내놨으나 정부 또는 국회내 진보세력의 '반 시장경제적 마인드'에 막혀 제대로 추진되지않고 있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급기야 "이 나라가 시장경제를 제대로할 수 있을지 의심이 든다'는 발언까지 서슴지않았다.

이 부총리가 이처럼 시장경제 사수론을 들먹이며 격하게 반응한 것은 '자문료파문'이 불거지면서 구체적 성격을 띠기 시작한 자신에 대한 '음해'에 강하게 대응하지않을 경우 정책추진의 입지를 잃게될 것이라는 절박감을 느꼈기 때문이 아니겠느냐는 재경부 안팎의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하지만 이 부총리는 대립각을 더 세울 경우 정부내 보수와 진보세력간 노선.이념 갈등을 부추기고 금융시장이나 국민에게 불필요한 불안감을 조장해 정책수행을어렵게 할 수 있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관측된다.

386세대 경제무능론과 자문료 파문으로 촉발된 일련의 사태를 거치면서 이 부총리는 시장경제 수호자로서의 자신의 이미지를 확실하게 각인시켰다. 스스로 의도했든 안했든 '이헌재를 몰아내는 것은 시장경제를 포기하는 것'이라는 등식을 세워 보호막을 쳤다.

벌써 야당이 이 부총리를 엄호하기 시작했고 여론도 이 부총리 시각에동조하는 분위기가 우세하다.

이렇게되면 이 부총리의 경제철학이나 정책방향에 반대하는 세력의 입지는 좁아질 수밖에 없다.

이 부총리가 잃은 것도 있다.

소신만 앞세우는 부담스런 관료로 치부되면서 정권의 신임에서 멀어지고 정책결정에서 소외될 가능성이 있다.스스로 떠안아야할 경제난의 책임을 반시장주의적 환경 탓으로 전가한다는 비판도 제기될 수 있다.

이 부총리는 이번 주말부터 여름 휴가에 들어간다.가족과 제주로 떠나 29일까지 '충분한' 휴식을 취할 것으로 알려졌다. 취임 이후 5개월여간 쌓인 긴장과 피로를 털어내고 자신에게 집중된 여론의 관심권에서도 벗어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휴가뒤 이 부총리는 최근 부각된 '싸움꾼'의 이미지를 지우고 경제에 전념하는모습을 보일 전망이다.

결국 이 부총리의 입지는 정치가 아닌 경제에 있기 때문이다.

(서울=연합뉴스)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