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바키아의 수도 브라티슬라바에서 70km가량 떨어진 갈란타시(市). 끝없이 이어지는 짙푸른 밀밭과 그림같은 몇 개의 풍차를 지난 뒤의 고즈넉한 풍경 속에 삼성전자 슬로바키아 생산법인(SESK)이 자리잡고 있다. 관광객의 눈에는 평화로운 동유럽의 전원일지 모르나 미쿨라스 주린다 슬로바키아 총리의 표현대로라면 한때 '희망없는 땅'(2003년 7월 삼성전자 생산법인 방문시)으로 불렸던 미개척지였던 것도 사실이다. 삼성전자는 바로 이곳에서 '유럽 최대의 디지털미디어 메이커'를 꿈꾸고 있다. 인건비가 싸고 숙련된 근로자들이 풍부한 데다 지난 5월 슬로바키아의 유럽연합(EU) 가입으로 서유럽에 비해 결코 뒤지지 않는 비즈니스 환경을 갖추고 있어서다. 지난 2002년 11월에 현지에 첫 진출했던 SESK는 이달부터 제2공장을 본격 가동하면서 플라즈마 디스플레이패널(PDP) 레이저 프린터 등 부가가치가 높은 제품들을 양산하기 시작했다. 이로써 SESK는 PDP, LCD 모니터, LCD TV, 레이저 프린터 등을 생산하는 복합전자 단지로 발돋움하게 됐다고 삼성측은 설명했다. 특히 동구권의 EU가입으로 통관절차가 종전의 4∼5일에서 이틀 정도 빨라졌으며 북아프리카 러시아 등의 디지털 미디어 제품 수요에도 발빠르게 대응할 수 있게 됐다. 삼성은 이 공장을 유럽 전체를 아우르는 제품 총괄공급기지로 육성한다는 방침 아래 연초 스페인과 영국 생산설비를 슬로바키아로 이전하는 승부수를 던진 상태다. 삼성전자는 이같은 설비이전과 슬로바키아 공장 증축을 지원하기 위해 이달 들어 한꺼번에 2백명이나 되는 본사 엔지니어들을 슬로바키아에 급파하기도 했다. SESK의 조규담 상무는 "제2공장 가동으로 올해 매출목표를 지난해의 다섯배 수준인 11억달러로 책정했다"며 "매년 30% 이상의 매출증가율과 10% 이상의 영업이익률을 낼 것"이라고 말했다. 예정대로 올해 매출 11억달러를 올리면 SESK는 슬로바키아 전체에서 매출 5위권 기업으로 부상하게 된다. 이 법인은 현재 1천4백명을 고용하고 있으며 연말까지 고용인원을 1천9백명 수준으로 늘릴 예정이다. 단기간에 그같은 실적 향상이 가능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종찬 상무보는 "글쎄요… 제품들이 워낙 잘 팔리고 있어 가끔 우리도 믿기 어려울 때가 많아요"라고 대답했다. SESK의 장래를 밝게 점칠 수 있는 또 다른 이유는 그동안 투입된 2천만달러 상당의 초기 투자비를 연내 회수할 수 있을 정도로 채산성이 뛰어나다는 점이다. 진출 첫해부터 이익을 내기 시작했던 SESK는 올해도 2천만달러 이상의 이익을 거둘 것으로 보인다. 갈란타(슬로바키아)=조일훈 기자 jih@hankyung.com